본문 바로가기
살과 설악산(雪岳山) - 1편 '살'과 설악산 수월봉의 전설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바닷가에 수월봉(水月峰)이라는 구릉 비슷한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의 절벽은 깍아지른 듯 운치있는 정경을 드러내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이 산 근처에 수월이라는 소녀가 남동생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이 들어 두 남매가 백방으로 약초를 구하러 다니던 중 지금의 수월봉 절벽 사이에 자생하고 있는 오갈피라는 풀이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두 남매는 수월봉 절벽으로 갔다. 그러나 절벽이 너무 험해 내려갈 수가 없었다. 수월이는 남동생을 절벽에 업드려 있게 하고, 그 남동생의 손을 힘있게 잡은 다음 한 발자국씩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니 오갈피가.. 2006. 7. 25.
한밝과 태백산(太白山) - 3편 부루에 대한 또 다른 해석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부족국가 새대에 있었던 고구려의 '새밝'(東盟: 동맹) 행사나 신라 중기부터 있어 온 '팔관회(八關會)등은 모두 부루 신앙의 원천이라고 한다. 신라시대의 화랑들은 이 부루신앙을 간직하고, 전국의 명산대천을 순례했는데, 그들의 발길이 자주 닿은 명산 중에 '밝'에 연유하는 '백'자 지명이 많이 붙었다고 한다. 따라서 '비로봉의 '비로'도 '밝' 무리의 지명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로'를 승려가 불교 경전속에 있는, '부루'와 비슷한 발음의 것을 찿아 붙였다는 것이다. 범어로 Vairocana, 부처의 진신(眞身)을 나타내는 칭호인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은 산스크리트어로 '태양'.. 2006. 7. 19.
한밝과 태백산(太白山) - 2편 '한'의 말 뿌리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한'의 뜻을 설명해 가려다가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졌지만, 여기서 '한여울', '한밭' 등의 한'의 말뿌리를 잠시 캐어 볼까 한다. 먼저 다음 말들을 비교하여 그 공통점을 생각해 보면 '한'의어원을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 해 > 해(日) - 핸 > 흰(白) 블 > 불(火) - 발근 > 붉은(赤), 밝은(明), 바른(正) 픝ㅅ > 풀(草) - 프른 > 푸른(靑) 감 > 감(閉) - 감은 > 검은(黑) 믈 > 물(水) - 믉은 > 묽은(稀) 둠(圓) - 둥근(圓) 알 샌(새로 밝은) 어떤 상태를 관형적으로 나타낼 때, 어떠한 이라는 연체형.. 2006. 7. 19.
한밝과 태백산(太白山) - 1편 한탄해서 한탄강 이라는데 . . . '한탄강'이라 하는 강이 있다. 임진강의 한 갈래로, 강원도 평창군과 함경남도 안변군과의 사이에있는 추가령(楸哥嶺. 550m)에서부터 시작, 추가령지구대를 따라 흘러내려 경기도 연천 부근에서 재인폭포로 마무리하고, 본류에 흘러드는 제법 큰 물줄기인데, 길이가 136km나 된다. 이름을 음 그대로 들으면 무슨 큰 한탄(恨歎)이 굽이굽이 서렸기에 한탄강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이 강에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 온다. 후삼국시대, 태봉의 궁예는 남쪽으로 내려가 후백제와 싸우고, 수도인 철원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이 강을 건너다가 강가의 돌들이 모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것을 보고는 다음과 같은 한탄을 했다고 한다. "아! 돌들이 모두 좀먹고 늙었구나, 내 몸도 이제 저 돌.. 2006. 7. 19.
밝음과 박달재 - 3편 수호신 산을 '밝'으로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밝'은 산 이름에 '백'(白)이나 '박'(朴)으로 주로 들어가 있음을 보았다. 위에 든 산이름 외에도 백운대(白雲臺: 서울 북한산), 백양산(白楊山: 부산), 백석봉(白石峰: 충북 진천), 백모덕(白茅德: 함남 개마고원), 백마산(白馬山: 충북 음성), 백사봉(白沙峰: 함북 회령), 박골령(朴骨嶺: 낭림산맥 남부), 박달봉(朴達峰: 경기 포천이동), 박리산(朴李山: 평북 국경근처), 배산(盃山: 경남 남동부), 백봉(白峰: 경기 미금 동쪽), 백설산(白雪山: 함흥시 북쪽), 백암산(白庵山: 금강산 서쪽), 백우산(白羽山: 강원 홍천 내촌면), 백적산(白積山: 강원 평창 진부), 백하산(.. 2006. 7. 14.
밝음과 박달재 - 2편 '밝' 계통의 산 이름들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그렇다면 이러한 인명, 지명 등에서 많이 쓰인 '밝'은 산이름에 어떻게 나타나 있을까? 우리나라의 산들 중 대개 명산이거나 큰 산들에 '백'(白)자나 '박'(朴)자가 들어간 것이 많은데, 이들의 대부분이 '밝'에서 연유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우선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白頭山:일명 太白山)을 비롯하여, 장백산(長白山), 소백산(小白山), 함백산(咸白山), 박달산(朴達山), 백산(白山), 북수백산(北水白山), 간백산(間白山), 동백산(東白山), 백사봉(白沙峰), 백운산(白雲山), 박산(朴山) 등 이 계통의 이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밝'은 한자로 취음될 때 주로 '백'(白.. 2006. 7. 14.
밝음과 박달재 - 1편 동명(東明)은 '새밝'의 뜻 삼국지의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마을 남녀들이 밤에 모여 노래와 놀이를 즐기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중행사'(國中行事)를 벌였는데, 그 이름을 '동맹'(東盟)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에도 "10월에 제천의식을 갖는데, 밤에 남녀가 모여 창악(唱樂)을 하였고, 귀신/영성/사직에 제사하기를 즐겼는데, 그 이름을 '동맹'이라 하더라"고 하였다. 상고시대 부족들의 종교와 예술생활을 종합한 제정일치(祭政一致)의 한 본보기인 이 제천의식은 고려시대에 계승되어 팔관회(八關會)의 의식이 되었다. 동맹은 '동명'(東明) 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하고, 그들의 시조인 주몽신(朱夢神), 즉 동명신.. 2006. 7. 14.
도드람산의 유례 도드람산의 유례 옛날 이 산 근처 마을에 병든 홀어머니를 극진히 섬기는 효자가 살고 있었다. 효자는 정성을 다해어머니를 간호했으나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위독해 갔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시주를 청하러갔다가 효자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도드람산에서만 자라는 석이버섯을 따서 어머니에게 드리면 병이 나을 것 이라고 했다. 효자는 석이버섯을 따기위해 도드람산으로 올라갔다. 밧줄에 몸을 묶고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가 바위틈을 더듬으며 버섯을 따고 있는데, 어디선가 산돼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줄 모르는 짐승이기에 이상하게 여긴 효자가 절벽을 올라가 보니 산돼지는 간곳이 없고, 효자의 몸을 매달았던 밧줄이 바위 모서리에 긁혀서 끊어져가고 있었다. 효자의 지극한 효심을 가상하게 여긴 신령님이 산돼지를 보내 효자의 .. 2006. 7. 11.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4편 오대산 근처의 땅이름들 양양군의 서면, 홍천군의 내면, 평창군의 진부면과 강릉의 연곡면에 걸친 오대산 일대에는 많은 마을, 고개, 바위 등이 있으나 잊기에 아까운 사라져가는 우리말 이름들만 몇 골라 소개하고자 한다. 1) 문지방 같아 '지방너미'(양양 서면 갈천리) 마을 입구에 뻗어내린 산줄기가 문지방처럼 생겼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근처 '용숫골'(龍沼一 ;용소일)이란 마을 남쪽 산기슭에는 호랑이가 머리를 든 모양의 '호랑이 바위'가 있다. 2) 산과 논이 많아 '논엣골'(양양 서면 論化里 ;논화리) 산과 논이 많아 '논엣골' 또는 '노네골'이라 하는데, 이 근처에서 가재가 많다는 '가잿골'(가좌동)과 원집이 있었다는 '원댕이' 라는 마을이 있고, 올라보면 한계령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망령재'라는 고.. 2006. 7. 7.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3편 오대산 근처의 내 1) 소나무가 많아 '솔내'(松川 ;송천, 連谷川 ;연곡리) 강릉 연곡면 삼산리의 동대산에서 시작되는 이 물줄기는 북동쪽으로 흘러 무릉동에 이르러 '솔내' (松川)라는 이름을 갖는데. 이 내는 동쪽으로 꺾여 연곡면 중앙부를 뚫고, 앞뚜루(南坪 ;남평)을 지난다. 이 내가 지나는 삼산리의 두두랭이 남서쪽에는 '솔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곳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한다. 2) 뒤쪽으로 흐른다해서 '뒷가래'(뒷강: 後川 ;후천, 後江 ;후강) 양양군 서면 약수산에서 시작하여 북으로 흘러 황이, 서림, 영덕, 공수사리를 거쳐 송천리에서, 서쪽에서 오는 송애내를 합하고, 위뜨르(上坪 ;상평)에서 꺾여 동쪽으로 흘러 남대천으로 들어간다. '뒷가래'란 이름은 그 흐르는 지경이 주로 남대천 뒤쪽이 된.. 2006. 7. 7.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2편 오대산 근처의 봉우리들 오대산 근처는 온통 뫼 봉우리들이 깔린 곳이어서 많은 봉우리 이름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원래 우리 말로 불리었던 산이나 봉우리 이름을 몇만 추려 소개한다. 1) 가마솥 같은 '가마배기'(雲溪峯 ;운계봉) 강릉 신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31m인데, 모양이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 같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2) 둥근 봉우리의 '두롱봉'(두로봉,斗里峯 ;두리봉) 강릉 삼산리의 가마소 남서쪽에 있는 산인데, 오대산 줄기로 높이 1023m로 봉우리가 둥글다. 3) 할아비봉(祖峰 ;조봉)과 할미봉(老姑峯 ;노시봉) 할아비봉은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황이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1183m이다. 이 할아비봉과 마주 보는 자리에 할미봉이 있다. 4) 칼처럼 생긴 '칼산'(劍山 ; 검산) .. 2006. 7. 7.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1편 태백의 뫼줄기에 올망졸망 솟아댄 저 봉우리들, 자연의 전시장인 양 높고 낮은 바위 뫼, 흙뫼들이 손잡고 줄을 서서 한반도의 동쪽 울타리를 만들었다. 풍악의 부루마루(비로봉)가 주위의 일만 이천 딸림봉들과 함께 가을을 맞으면 이 모습 저 모습 빗깔로 한껏 몸치장을 하는데, 설뫼(雪岳; 설악)가 지지 않을세라 붉고 노란 빛깔을 뿌리며, 역시 가을 내용을 풍기고, 이어서 그 빛깔, 그 내용이 오대와 태백의 한뫼들에 전해져 예맥의 가슬 잔치로 마무리한다. 남쪽은 오대산인데, 흙산이면서 천바위, 만구렁이 겹겹으로 막혀져있다. 가장 위에는 다섯 축대가 있어 경치가 훌륭하고 축대마다 암자 하나씩 있다. 그 중 한 곳에는 부처의 사리를 갈무리 하였다. 상당(上黨) 부원군 한무외(韓無畏)가 여기에서 선도(仙道)를 깨치고.. 2006. 7. 7.
지리산(智異山)의 지명 두루와 지리산 지리산에 얽힌 전설 지리산의 여신 마야고(麻耶姑)는 남신 반야(般若)를 사모하여 그리운 반야의 옷 한 벌을 고이 지어 만나서 전해줄 기회를 찿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잘 닿지 않아 마음을 태웠다. 달 밝은어느 날 밤, 마야고는 지리산 중턱에 않아 반야의 옷을 품에 안고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꿈에도 그리던 반야가 자기쪽으로 손짓하며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마야고는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의 물결 속으로 반야의 옷을 든 채 달려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무엇을 잡을 듯이 허위적거렸는데, 이상하게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리운 반야는 보이지않고, 쇠별꽃들만 달빛 아래서 바람에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쇠별꽃의 흐느적거림을 반야가 걸어오는 것으로 착각한 것을 알게 된 .. 2006. 6. 28.
속리산(俗離山)의 지명 - 2편 속리산 동쪽 일대의 땅 이름들 1) 선돌(入石里)에서 윗신섬이(上五里)까지 이 길은 상주의 화북면을 종단으로 하는 산길 이다. 즉 서쪽의 속리산 기슭과 동쪽의 청화산, 도장산 바탈 사이의 냇줄기를 따라 뻗은 길인데, 장암리에서 서쪽 기슭을 파고들면 속리산 정상을 오를 수 있다. 먼저 입석리의 동네 이름부터 알아보자. '입석리'라는 이름은 '선돌'이라는 바위 이름에서 나왔다. 입석리 남쪽에는 바위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이 곳의 전설로는 옛날 어느 장사가 이돌을 걸망으로 메고 오다가 세워 놓았다는 것이어서, 이 곳의 마을 이름까지 '선돌' 또는 '선돌배기'가 된 것이다. 근처의 옥량폭포 서쪽 위에는 '보굴암'(寶窟庵)이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 단종의 충신인 김종서의 손자가 이 곳에서 피신하여 살다가, 뜻.. 2006. 6. 10.
속리산(俗離山)의 지명 - 1편 속리산의 지명 동햇가에 둑을 쌓으며 남으로 달리던 뫼줄기는 삼척 근방에서 갑자기 서편으로 큰 팔을 벌렸다. 벌린 팔이 조금씩 밑으로 쳐지면서 남서로 향한다. 이 팔은 한반도의 남부를 둘로 가르면서사잇가라(新羅)의 옛땅과 머리가라(百濟)의 옛 땅이 여기서 갈라졌었노라고 줄을 긋는다. 웃방과 아랫방 사이의 작은 벽인 양, 이 뫼 줄기는 한반도의 허리 안에서 아늑한 두 방을 만든다. 이 줄기는 불쑥불쑥 봉우리를 솟구고, 그 봉우리 사이에 길마꼴의 마루를 이루어 작은 길을 열어주면서 동서로 전라, 경상의 커다란 두 개의 삶터울을 만들었다. 태백산부터 시작되는 이 뫼 줄기는 먼저 소백산에 닿고, 그 남서쪽에 대재(竹嶺)를 열어주고나서는 문수봉과 주흘산으로 잇는다. 그 기슭에 이름도 유명한 새재(鳥嶺), 조금 그 .. 2006. 6. 9.
북한산(北漢山)의 지명 - 2편 북한산의 봉우리 이름 1.백운대(白雲臺) 일명 '백운봉'이라고도 하며, 북한산의 최고봉이다. 높이 836미터로 날씨가 맑은 날은 인천 앞바다의 섬이 보이는 정도이다. 아래 굴 속에 솟아 흐르는 약수물은 '백운수' 또는'만수'라 하였다. 2.인수봉(仁壽峰) 북한산의 제 2봉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이 봉우리를 일컬어 '인수제일봉'이라 했다. 백운봉 동쪽에 자리하여 대포알을 똑바로 세워놓은 것 같은 큰 바위 하나로 우뚝 솟은 이 봉우리는 산신과 산악 숭배가 풍수 도참 사상으로까지 발전한 조선시대에 와서는 북한산의 어느 봉우리보다 관심을 끌어 이름 자체도 '인수'(仁壽)인 것이다. 이 봉우리가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형국이라 하여, 풍수지리면에서 좋치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인왕산 서쪽의 길마재(鞍山)를 '무악'(母岳.. 2006. 6. 4.
북한산(北漢山)의 지명 - 1편 북한산의 원이름은 "부루칸모로" 옛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반도의 심장, 이 땅 온누리에 쉬임없이 힘을 뿌리는 이 곳, 서울의 진산 북한산은 명실공히 이 나라의 首山이요, 中岳이라 할만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인조 때 청나라로 볼모로 끌려가며 읋은 척화신(斥和臣) 김상헌의 한맺힌 시조다. 피를 받고 뼈를 굵혀온 고국을 떠나면서 삼각산과 한강수를 불러 눈물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여기서의 삼각산은 바로 이 땅 모든 산의 일컬음이요, 한강수는 이 땅 모든 강의 부름이다 해도 좋을 것이다. 삼각산은 이조 오백여 년 동안 수도 한성과 함께 기복심한 근세 역사의 서울을 지켜보며 말없이 웃고 울어온 산이.. 2006. 6. 3.
8000m 14거봉 완등자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8000m 14거봉 완등자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세 사람은 히말라야 8,000m급 14개 거봉 완등을 이루어냈고, 한국은 이로서 14좌 완등자를 3명이나 배출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됐다. 등정 기록 엄 홍 길 1988 가을 에베레스트 1993 가을 초오유 1993 가을 시샤팡마 1995 봄 마칼루 1995 여름 브로드피크 1995 가을 로체 1996 봄 다울라기리 1996 가을 마나슬루 1997 여름 가셔브룸 1봉 1997 여름 가셔브룸 2봉 1999 봄 안나푸르나 1999 여름 낭가파르밧 2000 봄 캉첸중가 2000 여름 K2 박 영 석 1993 봄 에베레스트 1994 가을 초오유 1996 봄 안나푸르나 1997 봄 다울라기리 1997 여름 가셔브룸1봉 1997 여름 가셔브룸 2봉 1997 가을.. 2005. 8. 25.
이민재 박사.. 李 敏 載 "산은 명예를 위한 대상일 수 없어" 이민재 박사, 학자이며, 산악인이었다. 지루하지 않은 시기에 산뜻한 세대교체를 실천으로 가르쳤다. 푸른 기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은발의 퇴역' 이박사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인 관계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재씨는 식물학을 전공한 이학박사였다. 자유당 시절의 장기집권을 했던 '이박사'가 아니다. 제6대로서 한국산악회 회장직을 단 한 번 역임했을 뿐이다. 71~ 73년까지,연임을 귄하는 주위의 요청과 뭔가를 더 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을 떨쳐버렸다. 장기집권 한 이승만 박사처럼 되기 싫어서 . . . 이박사는 82년에 강원대학 총장직을 정년퇴직했다. 45년 서울대 약대교수로 첫 발을 내디딘 후 줄곧 몸담아 온 교육계를 35년만에 떠난 셈, .. 2005. 7. 23.
산 무서운 줄 알아야지! 洪 鍾 仁 산 무서운 줄 알아야지 !! 한국산악회 회장을 20년동안 맡았던 홍종인씨" 산은 건너 뛰는게 아니고 한계단씩 오르는거야. 사람은 뮛보다 겸허해야 해."산행의 윤리를 강조하는 그는 박사들을 야단치는 "홍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홍종인씨는 한국산악회 회장직을 1947년부터 67년까지 무려 20년씩이나 역임했다. 홍회장은 "홍박"이라는 딴 이름으로 더욱 유명 했다. 즉 홍박사라는 애기다. 박사학위는 없었지만 세상 박사들을 모두 박살 (?)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박사라는 주위의 설명이다. 연유가 어쨌건 홍회장은 '홍박'스럽게 당당한 목소리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왔다. 오래된 애기지만 TV에서 묘기대행진같은 한독교류회의 암벽등반시범을 본 홍회장은 "그게 뭐야, 너무 분주하쟎아?" 원숭이짓하던 서독.. 2005. 7. 21.
토왕폭의 초등은 1977년 1월12일 크로니 산악회에 의해서 초등이 이루어 졌다. 76년 토왕폭은 지칫 日本人에게 그 첫 순결을 낼 뻔 했다, 구곡폭포를 처음 오른 산시로씨가 가와사끼, 고히로등 5명의 동료를 끌고와 토왕폭 하단을 2월7일부터 2박 3일동안(등반에는 14시간 소요)에 완등 한 후 상단의 3분의1까지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어쩐일인지 돌아섰다. 만약 그들이 성공했다면 한국산악계는 씻지 못할 한을 토왕폭에 남겼을 것이다. 제 계집을 남에게 빼앗기는 못난 한을...때문에 77년 토왕폭 사나이들의 눈빛은 더욱더 번쩍였다. 비감한 기운까지 돌며, 77년의 토왕폭은 출사표를 던진 山사나이들의 광장이 되었다. 77년 1월은 토왕폭의 잔칫날이었다. 이 폭포가 생긴이래 가장 많은 산꾼들이 토왕골로 몰려 .. 2005. 7. 13.
8000m를 우리나라 최초로 오른 사람은 한국의 진정한 등산가 崔秀男 그는 1971년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8000m를 넘어섰다. 71년 3월, 박철암 대장을 비롯한 강호기, 장문삼, 권영배, 김인길, 김운영, 박상열, 하세득, 양승혁, 김초영씨 등 한국 로체 샤르 등반대가 출국했다. 3월5일 루크라 비행장(2700m)에 내린 대원들은 로체 샤르를 향해 캐라반하였다. 4800m 츄쿵 부근에서 그동안 고산증세를 참아오던 권영배 대원이 말 한 마디 못하고 의식을잃어 버렸다. 그 바람에 등반대는 풍지박산이 되기 시작했다. 경험부족으로 인해 당시까지만해도 우리 산악계는 고산병에 대한 상식마저 없었다. 연장자가 오히려 적응이 쉽다는 것과 건강한 사람일수록 빨리 그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고산증세는 체질의 약세를 애기하는 것은 아니며.. 2005. 7. 4.
女性山岳人...박은정 山으로의 일편단심 그 무한한 世界 女性 山岳人 부모님이 생명보험 들어주시고 . . .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산을 오르는 경쟁을 포기한다면 경쟁자가 많은 사회생활을 어찌 감당할 수가 있을까하고 말이다. 암산을 묵묵히 오르는 순례자처럼 그 어려운 고행을 통해서 얻는 나의 정신 세계는 내가 사회생활을 해낼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인관계에서 의미없이 깨어지는 신뢰도, 기대도 다 감당해 낼 수 있고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얻은 힘이라고 확신한다. 맨 먼저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좋다. 서서히 산과 친해지면서 맨 마지막으로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산악인의 끈기와 집념을 배워야 된다고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산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과 자신을 갖기 시작할 때쯤 주위에서는 .. 2005. 7. 2.
나이의 한계에 도전... 파아란 불꽃의 큰형님 耳順의 클라이머 최기덕 . . . . 山 1982.2월호에서 옮긴 글 제가 나이든 산사람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면...하고 웃는 최기덕(60)씨. 주름진 피부는 耳順의 나이를 애기하지만 맑은 눈동자는 소년같다. 어느날 그는 늙은 피부는 벗어버리고 그 맑은 눈동자를 가진 젊은 산소년으로 다시 태어날 것만 같다. 50대에 바위타기 시작 "산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때문에 역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바로 산이라 할 수 있겠지요. 육체의 젊은 절정을 넘기면 그 정신마저 쇠퇴기에 접어 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육체와 젊음의 정신을 맛 보았습니다. 따라서 나의 산은 더욱 젊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는 등산을 30년이나 계속하며 걷기만을 .. 2005. 6. 26.
클라이밍의 달인 식목일에 양양 고성지역에서 산불로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지만 북한산에서 잠수함바위에서 클라이밍의 달인 크리스 샤마(25)와 로랜 리(25)를 만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2003년 피닉스 볼더링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샤마는 세계 최고 난이도(5.15a)의 기록을 가지고 있고, 미국에서 가장 섹시한 20인의 스포츠맨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유명한 클라이머 입니다. 파워풀하고 박진감 넘치는 클라이밍을 선보이는 로랜 리도 여성 클라이머의 대표적인 스타로 자리잡고 있으며 뛰어난 미모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4일 이들은 북한산 백운산장에서 야영, 클라이밍 강연을 하고 5일에는 국내 클라이밍 선수들인 김용기, 김희조 등과 인수봉을 등반하였습니다. 6일과 7일 양일간 팬들과 함께 .. 2005. 4. 6.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