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북 최고 지도자가 백두산에 함께 올랐다 .... 2018.09.20 '9.19 평양공동선언' 다음날인 20일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함께 올랐다. 남한 국민들에겐 막혀 있는 북측 길을 이용했다. 공군2호기로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서 삼지연 공항에 도착, 차량으로 삼지연 공항을 출발해서 백두산 남쪽 최정상인 장군봉에 도착, 장군봉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 천지에 도착,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사진이 남북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2018. 9. 20.
에베레스트서 기적 생환한 美산악인, 계단서 떨어져 사망 ~ 1996년 에베레스트에서 극적으로 살아 남았던 유명 여성 등반가 샬럿 폭스(Charlotte Fox)가 지난 5월24일 집안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콜로라도 주 텔류라이드(Telluride, Colorado)에 살고 있던 그녀는 향년 61세, 지난 5월31일에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언론이 일제히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녀의 죽음이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이유는 폭스가 에베레스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기적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사연은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녀는 총 10명의 등반대와 함께 에베레스트에 올라 악전고투 끝에 정상에 올랐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하산할 때 였다. 극한의 눈보라 속에 갇히면서 산 속에 그대로 조난당한 것. 이 사고로 .. 2018. 6. 5.
북한산 백운산장 존폐위기 1992년 화재 이후 백운산장 증축 과정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영구씨에게 20년 유예를 조건으로 기부채납 약정을 요구했고, 유예기간이 올해 만료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 5월 유예기간이 끝난 만큼 산장을 국가시설로 귀속하겠다고 통보하고, 이씨에게는 퇴거를 요구했다. 산악단체(백운산장 보존대책 위원회)는 "국내 1호의 민간 산장으로서 상징성 높은 백운산장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며 산악인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백운산장 기원 1924년; 봄에 이해문(이영구씨의 조부)씨가 지금의 산장 터 뒤 백운암 움막에 둥지를 틀면서 시작되었다. 1927년; 한일 재계인사 109명이 백운대까지의 등산로 개설을 목적으로 찬조금 750원을 모금해 중국인 석공들이 3개월의 공사 끝에 계단과 쇠 난간을 설치했다. 경성일.. 2017. 7. 7.
산새 / 오영효 님 오영효 ~ 예전 함께 산행했던 선배다. 북한산 곳곳을 더듬으면서 언젠가는 인수봉도 함께 올랐다. 지난 월요일(10월 27일) 저녁에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해서 오랜만에 만났더니 시집을 한 권 주신다. 제목은 '박꽃', 올해 등단해서 곧바로 시집을 출간한 것인데, 이전부터 글을 쭈~욱 쓰시던 분이라 저장했던 자료들이 많았을 것으로 본다. 별명으로 산새라 불렀다. 차분하고, 부드럽고, 조용조용하신 분, 언젠가 시집을 낼 거라 했는데, 결국 그 꿈을 이룬 것 ... 산악인+시인+화가다.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는 줄은 이번에 알았다. 인수봉 첫 등반으로 머리 올려 준 것을 내내 고마워하며 감격해하시던 선배, 꽤 흐른 세월인데 이젠 잊을 때도 되었 건만 ~ 그 보답으로 이번 출간한 시집에 시 한 수를 올려주셨다. .. 2014. 10. 31.
에베레스트 첫 무산소 등정자 / 페터 하벨러(Peter Habeler) 페터 하벨러(Peter Habeler) ~ 1989년 10월 14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닷새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10월 17일 슬라이드 쇼를 열었고, 국내 산악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 때 라인홀트 메스너와 단짝을 이루었던 그는 고향에서 등산학교를 운영하다가 1880년대 중반쯤 들어 다시 히말라야 등반에 나서게 되었다. 그와 메스너는 또 하나의 큰 일을 저질렀다. 1978년 다른 8천m 급이라면 몰라도 에베레스트만큼은 무산소 등반이 불가능하다고 의학계에서 내린 그 단정을 깨버리고, 에베레스트에 오른 것이었다. 8천m 급에서 최초로 알파인 스타일을 구사해 히든피크(8,068m)를 메스너와 함께 5일 만에 등정한 기록은 당시로서는 전 세계 산악계의 찬사를 독차지할 만한 것이었다. 당시 시대를.. 2013. 11. 30.
이미륵(李彌勒) ... 그는 누구인가? 故 이미륵(李彌勒) 박사 소설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독일에서 교수와 작가 생활을 했던 한국인이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로 유럽에 한국을 소개했고, 1930년~40년대에 알프스 산군에서 등산 활동을 했다. 일제 치하 조선인으로서 유럽에서 활동한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그 몇 되지 않은 인물 중 한 사람이 등산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있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더군다나 등산의 메카라는 알프스에서 등산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주로 카르멘델, 빌더카이저 등지에서 등산 활동을 했다고 한다. 1899년 3월 8일 황해도(현 황해남도) 해주 출생, 한국전쟁을 앞둔 1950년 3월 20일에 5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본명은 이의경(李儀景), 1남 3녀 가운데 1.. 2011. 12. 7.
한국 산악계의 태산준령 .... 김정태 언제나 등산현장에 있던 '문무겸전의 산악인 어릴 때 외아들 응석받이로 자랐다. 별난 것을 좋아해서 소년단에 넋을 팔고 다녔고, 훈련 가는 산과 들에 나가기를 좋아했다. 1976년 한국산악회에서 발행한 문고판 에서 김정태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길을 드나들지 못할만큼 겁보였고, 말까지 더듬으며, 무척 수줍어 하던 아이 김정태가 우중충한 흉가집을 놀이터로 받아들이고, 말도 더듬지 않게 되고, 수줍은 끼도 없어지게 된 계기는 당시 살던 대구의 동네산 '아지랑이산'에서였다. 유치원시절 동네 개구장이들과 올랐다가 해가 지도록 못다 내려온 산에는 울다못해 방망이질 하는 가슴으로 뒹굴다시피 내려선 후, 어린 김정태는 겁 속에 숨어있는 일종의 쾌감을 일찌감치 느꼈다. 그의 산에 대한 기억은 이.. 2010. 7. 21.
설악산 눈사태(2010.03.10) 지난주 시등제에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후배 1명이 설악산에서 실종됐다고 한다. 지난 3월1일 발생한 설악 마등령의 눈사태로 조난돼 아직 찿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난자 3명중 1명만 구조되고, 1명 사망, 1명은 실종이라는데 . . . . 실종자 '주성환' 그의 별명은 '아제' 진정한 산사나이였다. 암벽으로 단련되고, 워킹으로 단련된 내공이 강한 산악인이다. 북한산 노적봉에 아제길이 있고, 수락산 코끼리바위와 삼성산 BAC 암장 등을 개척했던 사람이다.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던 그 ~ 산에서 만나면 언제나 산을 애기했고, 산에서 종지부를 찍고 싶다 했던 그 ~ 1주일도 넘게 지난 현재까지 시신을 찿지 못해서 실종이라면 사망이나 다름 없을 것이니 ~ 여전히 그칠 줄 모르는 설.. 2010. 3. 10.
토왕폭의 조난사건(1985년 2월21일) 아래 글은 '월간 山' 1985년 4월호에 게재된 내용이다. 1985년 명절인 구정 뒷날 발생한 조난사건으로 당시 온 매스콤을 떠들석하게 했다. 마루금과 한 때 등반을 같이 했던 후배 한 명이 그 사고현장에 있어서, 그래서 내겐 더 기억에 남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고 현장에서 야영했던 후배는 부산 솔뫼산악회 소속의 '표상길'이다. 1982년 가산디지탈단지의 금성사(현 LG)에 근무할 당시 직장동료로 처음 그와 만났다. 이후 83년까지 2년간 그 후배와 함께 서울 근교 암벽을 두루 찿아 다니며, 등반으로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와의 등반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 1983년 4월3일 인수봉 대조난사건이 있었던 날, 그를 포함해서 4명이 인수봉을 올랐다. 그날 급작스런 폭설로 우리 일행도 사고.. 2010. 2. 17.
예지 쿠쿠츠카 예지 쿠쿠츠카 그는 누구인가 ~ 라이홀트 메스너에 이어 세계 2번째로 8,000m 거봉 14좌를 모두 오른 사람이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 클라이머였던 그는 1989년 10월24일 로체 남벽 등반중 추락,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10년 전 처음 그가 올랐던 8,000m봉이어서 당시 세계 산악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다. 쿠쿠츠카(Kukuczka)는 1989년 10월23일 파트너인 폴로보스키(Pawlowsky)와 함께 로체 남벽 8,300m 지점에서 비박을 했다. 다음날 그들은 새벽 3시 30분에 정상공격을 시작해서 정상으로 이어지기 직전의 8,350m 지점에 도착했으나, 쿠쿠츠가가 슬립하는 순간 자일이 튕겨 끊어지면서 140m를 추락, 사망했다. 10월25일자 카트만두 신문(The Rising Nepa.. 2010. 2. 9.
라인홀트 메스너 히말리야의 8천m 자이안트급 14좌를 세계 최초로 오른 사나이다. 1970년 6월에 레이스를 시작, 1986년 10월16일에 모두 완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세기의 철인으로 일반인에게는 칭송을 받았던 한편, 일부 산악인들로 부터는 비난 받기도 했던 이탈리아의 등산가 '라인홀트 메스너' (당시 나이 42세)는 로체(8,516m)를 마지막으로 올라 사상 최초로 8,000m급 14좌 거봉을 모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14개 자이안트 봉우리 중에서 세계 제4위와 5위인 로체(8,516m)와 마칼루(8,463m)의 두 봉우리를 제외한 12개 봉을 오른 기록으로'8,000m급 등정 레이스'에서 폴란드의 '쿠쿠츠카'(당시 37세, 10개봉 등정), 서독의 '미하엘'(당시 52세, 8개봉 등정), 스위스의 '에르하.. 2007. 11. 30.
8000m 14거봉 완등자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8000m 14거봉 완등자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세 사람은 히말라야 8,000m급 14개 거봉 완등을 이루어냈고, 한국은 이로서 14좌 완등자를 3명이나 배출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됐다. 등정 기록 엄 홍 길 1988 가을 에베레스트 1993 가을 초오유 1993 가을 시샤팡마 1995 봄 마칼루 1995 여름 브로드피크 1995 가을 로체 1996 봄 다울라기리 1996 가을 마나슬루 1997 여름 가셔브룸 1봉 1997 여름 가셔브룸 2봉 1999 봄 안나푸르나 1999 여름 낭가파르밧 2000 봄 캉첸중가 2000 여름 K2 박 영 석 1993 봄 에베레스트 1994 가을 초오유 1996 봄 안나푸르나 1997 봄 다울라기리 1997 여름 가셔브룸1봉 1997 여름 가셔브룸 2봉 1997 가을.. 2005. 8. 25.
이민재 박사.. 李 敏 載 "산은 명예를 위한 대상일 수 없어" 이민재 박사, 학자이며, 산악인이었다. 지루하지 않은 시기에 산뜻한 세대교체를 실천으로 가르쳤다. 푸른 기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은발의 퇴역' 이박사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인 관계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재씨는 식물학을 전공한 이학박사였다. 자유당 시절의 장기집권을 했던 '이박사'가 아니다. 제6대로서 한국산악회 회장직을 단 한 번 역임했을 뿐이다. 71~ 73년까지,연임을 귄하는 주위의 요청과 뭔가를 더 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을 떨쳐버렸다. 장기집권 한 이승만 박사처럼 되기 싫어서 . . . 이박사는 82년에 강원대학 총장직을 정년퇴직했다. 45년 서울대 약대교수로 첫 발을 내디딘 후 줄곧 몸담아 온 교육계를 35년만에 떠난 셈, .. 2005. 7. 23.
산 무서운 줄 알아야지! 洪 鍾 仁 산 무서운 줄 알아야지 !! 한국산악회 회장을 20년동안 맡았던 홍종인씨" 산은 건너 뛰는게 아니고 한계단씩 오르는거야. 사람은 뮛보다 겸허해야 해."산행의 윤리를 강조하는 그는 박사들을 야단치는 "홍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홍종인씨는 한국산악회 회장직을 1947년부터 67년까지 무려 20년씩이나 역임했다. 홍회장은 "홍박"이라는 딴 이름으로 더욱 유명 했다. 즉 홍박사라는 애기다. 박사학위는 없었지만 세상 박사들을 모두 박살 (?)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박사라는 주위의 설명이다. 연유가 어쨌건 홍회장은 '홍박'스럽게 당당한 목소리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왔다. 오래된 애기지만 TV에서 묘기대행진같은 한독교류회의 암벽등반시범을 본 홍회장은 "그게 뭐야, 너무 분주하쟎아?" 원숭이짓하던 서독.. 2005. 7. 21.
토왕폭의 초등은 1977년 1월12일 크로니 산악회에 의해서 초등이 이루어 졌다. 76년 토왕폭은 지칫 日本人에게 그 첫 순결을 낼 뻔 했다, 구곡폭포를 처음 오른 산시로씨가 가와사끼, 고히로등 5명의 동료를 끌고와 토왕폭 하단을 2월7일부터 2박 3일동안(등반에는 14시간 소요)에 완등 한 후 상단의 3분의1까지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어쩐일인지 돌아섰다. 만약 그들이 성공했다면 한국산악계는 씻지 못할 한을 토왕폭에 남겼을 것이다. 제 계집을 남에게 빼앗기는 못난 한을...때문에 77년 토왕폭 사나이들의 눈빛은 더욱더 번쩍였다. 비감한 기운까지 돌며, 77년의 토왕폭은 출사표를 던진 山사나이들의 광장이 되었다. 77년 1월은 토왕폭의 잔칫날이었다. 이 폭포가 생긴이래 가장 많은 산꾼들이 토왕골로 몰려 .. 2005. 7. 13.
8000m를 우리나라 최초로 오른 사람은 한국의 진정한 등산가 崔秀男 그는 1971년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8000m를 넘어섰다. 71년 3월, 박철암 대장을 비롯한 강호기, 장문삼, 권영배, 김인길, 김운영, 박상열, 하세득, 양승혁, 김초영씨 등 한국 로체 샤르 등반대가 출국했다. 3월5일 루크라 비행장(2700m)에 내린 대원들은 로체 샤르를 향해 캐라반하였다. 4800m 츄쿵 부근에서 그동안 고산증세를 참아오던 권영배 대원이 말 한 마디 못하고 의식을잃어 버렸다. 그 바람에 등반대는 풍지박산이 되기 시작했다. 경험부족으로 인해 당시까지만해도 우리 산악계는 고산병에 대한 상식마저 없었다. 연장자가 오히려 적응이 쉽다는 것과 건강한 사람일수록 빨리 그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고산증세는 체질의 약세를 애기하는 것은 아니며.. 2005. 7. 4.
女性山岳人...박은정 山으로의 일편단심 그 무한한 世界 女性 山岳人 부모님이 생명보험 들어주시고 . . .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산을 오르는 경쟁을 포기한다면 경쟁자가 많은 사회생활을 어찌 감당할 수가 있을까하고 말이다. 암산을 묵묵히 오르는 순례자처럼 그 어려운 고행을 통해서 얻는 나의 정신 세계는 내가 사회생활을 해낼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인관계에서 의미없이 깨어지는 신뢰도, 기대도 다 감당해 낼 수 있고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얻은 힘이라고 확신한다. 맨 먼저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좋다. 서서히 산과 친해지면서 맨 마지막으로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산악인의 끈기와 집념을 배워야 된다고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산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과 자신을 갖기 시작할 때쯤 주위에서는 .. 2005. 7. 2.
나이의 한계에 도전... 파아란 불꽃의 큰형님 耳順의 클라이머 최기덕 . . . . 山 1982.2월호에서 옮긴 글 제가 나이든 산사람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면...하고 웃는 최기덕(60)씨. 주름진 피부는 耳順의 나이를 애기하지만 맑은 눈동자는 소년같다. 어느날 그는 늙은 피부는 벗어버리고 그 맑은 눈동자를 가진 젊은 산소년으로 다시 태어날 것만 같다. 50대에 바위타기 시작 "산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때문에 역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바로 산이라 할 수 있겠지요. 육체의 젊은 절정을 넘기면 그 정신마저 쇠퇴기에 접어 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육체와 젊음의 정신을 맛 보았습니다. 따라서 나의 산은 더욱 젊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는 등산을 30년이나 계속하며 걷기만을 .. 2005. 6. 26.
클라이밍의 달인 식목일에 양양 고성지역에서 산불로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지만 북한산에서 잠수함바위에서 클라이밍의 달인 크리스 샤마(25)와 로랜 리(25)를 만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2003년 피닉스 볼더링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샤마는 세계 최고 난이도(5.15a)의 기록을 가지고 있고, 미국에서 가장 섹시한 20인의 스포츠맨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유명한 클라이머 입니다. 파워풀하고 박진감 넘치는 클라이밍을 선보이는 로랜 리도 여성 클라이머의 대표적인 스타로 자리잡고 있으며 뛰어난 미모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4일 이들은 북한산 백운산장에서 야영, 클라이밍 강연을 하고 5일에는 국내 클라이밍 선수들인 김용기, 김희조 등과 인수봉을 등반하였습니다. 6일과 7일 양일간 팬들과 함께 .. 2005. 4. 6.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