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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산사람들~

토왕폭의 초등은

by 마루금 2005. 7. 13.

1977년 1월12일 크로니 산악회에 의해서 초등이 이루어 졌다.  


76년 토왕폭은 지칫 日本人에게 그 첫 순결을 낼 뻔 했다, 구곡폭포를 처음 오른 산시로씨가 가와사끼, 고히로등 5명의 동료를 끌고와 토왕폭 하단을 2월7일부터 2박 3일동안(등반에는 14시간 소요)에 완등 한 후 상단의 3분의1까지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어쩐일인지 돌아섰다.

 

만약 그들이 성공했다면 한국산악계는 씻지 못할 한을 토왕폭에 남겼을 것이다. 제 계집을 남에게 빼앗기는 못난 한을...때문에 77년 토왕폭 사나이들의 눈빛은 더욱더 번쩍였다. 비감한 기운까지 돌며, 77년의 토왕폭은 출사표를 던진 山사나이들의 광장이 되었다.

 

 

77년 1월은 토왕폭의 잔칫날이었다.

이 폭포가 생긴이래 가장 많은 산꾼들이 토왕골로 몰려 토왕폭을 시집보내는 축제를 마련했다. 

 

유기수씨의 에코클럽, 박영배씨가 이끈 크로니 산악회, 동국대 팀의 오영복, 도창호씨, 그리고 부산합동대의 강창호, 이정희, 권경업, 이종양씨 등 4팀의 산사나이들은 저마다 토왕골에 텐트를 치고, 하늘 높이 걸린 하얀 얼음 기둥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올해는 누군가가 해치울 것 같다는 낌새를 느끼며 . . .   

  

이 4팀 중에 누가 먼저 오를 것인가? 토왕폭은 2팀이 한꺼번에 붙을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어느 팀이든 먼저 붙으면 다른 팀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4팀이 모였다. 곤란한 애기다. 제일 먼저 도착한 팀은 76년 12월29일의 크로니였다.크로니는 다른팀이 없는 상태에서 77년 1월1일 등반을 시작했다.

 

크로니의 이 등반에 가장 당황해 했던 팀은 1월7일에 도착한 동국대팀, 그들은 前해의 하단 초등에 이어 상단도 마무리 짓고자 1년간 전력투구하여 등반대를 꾸렸으나 크로니보다 며칠 늦은 것이었다. 그들은 닭쫓던 뭐모양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코클럽은 1월8일 도착했다. 크로니가 하단을 등반하는 동안 최윤식, 김도성 대원이 우측벽을 등반했다. 크로니가 토왕폭 상단을 진출하자 에코는 하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1월8일의 부산합동대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초등의 기회를 동국대에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 사전에 동대에 등반계획을 알렸고 합의를 보았다. 그들은 동대의 등반이 끝난다음 등반을 시도할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크로니의 등반이 끝날때까지 소토왕골 등지를 돌며 훈련하며, 상황을 관망했다.

 

에코클럽은 크로니가 상단으로 진출할 무렵 하단을 끝내었다. 토왕폭에 유창서, 故 김종철 회원이 등반 시도한 68년 이래, 가장 많은 정열을 쏟아온 에코클럽은 그 열정을 구경만으로는 달랠 길 없어 크로니팀에 합동등반을 제의했다. 1월10일 밤, 토왕폭 중단에 설치된 크로니와 에코의 텐트에서 양팀 우두머리 모임이 있었다. 협상은 깨어졌다. 합동등반은 크로니쪽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밤 에코는 빨간 불빛을 들고 토왕골을 내려가버렸다.

 

합동등반을 제의하고, 그것이 깨어지자 그날 밤으로 내려가버린 에코의 심정과 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크로니의 입장도 모두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토왕폭은 이미 크로니에 의해 그 몸빛만큼이나 흰 웨딩드레스를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 처녀 토왕폭과 사나이 크로니와의 계약은 크로니가 아니고는 누구도 깰수 없는 것이 이미 되어버린 것이었다.그것은 남의 아내에 손댈 수 없는 사회규범과 같은 등반윤리였다. 동국대는 크로니팀의 등반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고 12일 초등이 이루어지자 바로 하산해버렸다. 그리고 부산합동팀은 다른팀이 없는 상태에서 13일 등반을 시작했다.

 

넉살좋은 크로니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77년 1월12일 토왕폭 초등을 이루었다. 칠복이란 놈도 눈독들이던 최진사집 세째딸을 달싹 채간 칠복이 처럼 . . .    


8명의 크로니 산악 회원들은 76년 12월29일 동대문 고속터미날에서 출발했다. 박영배씨를 대장으로 김태성, 남순철, 서정학, 이창재, 이건호, 송병민, 임상섭 대원의 77 크로니 토왕폭등반대 . . .

 

크로니는 76년 1월 정찰등반을 가졌고, 76년을 준비의 해로 보냈다. 그들은 모래내에서 독일 사레와 제품의 바르트훅 과 같은 모형으로 23개를,  또 그것보다 조금 작게 변형시킨 것을 10개 제작하였다.

 

76년 12월31일 하단 빙벽아래  B.C를 설치, 77년 새해 첫날 붙었다. 그들은 동대루트와는 달리 동굴로 들어 가지 않고, 왼쪽을 바로 올라붙는 루트를 택했다. 2일 동대테라스를 거쳐 3일 오후 5시 40분 박영배, 송병민 두 대원이 하단을 끝내었다. 전해의 하단 초등 때보다 시간이 엄청 단축 되었다.

 

4일은 중단의 설전에 전진캠프를 설치, 5일부터 토왕의 더 높은 아성 상단을 공략했다. 비옷과 고무장갑까지 동원하여 낙수 속을 헤쳐 올랐고, 김태성, 이건호 두 대원은 얼음조각에 헬멧이 깨어지는 위기를 넘어 10일에는 3분2 지점의 동굴의 테라스까지 나아갔다.

 

11일 동해바다에 싰긴 아침햇살을 받은 토왕의 이마는 토왕폭 산사나이의 첫 탄생을 제시하려는 듯 토함산 부처 이마의 보석처럼 성스러이 빛났다. 해와 더불어 토왕폭의 가슴에 매달린 두 사나이는 해가 서편 함지덕  머리 너머로 사라질 때 토왕을 넘었다.

 

토왕폭의 사나이는 그렇게 산세계에 나왔다. 77년 1월12일 새벽, 상단을 시작한지 7박8일 만이었다. 상하단 전등반은 12일 만에 이루어진 셈.  크로니는 등반 때 총 70여회의 아이스 하켄을 설치했다.

  

 

 

EN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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