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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뫼이름들~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4편

by 마루금 2006. 7. 7.

 

 

오대산 근처의 땅이름들   

양양군의 서면, 홍천군의 내면, 평창군의 진부면과 강릉의 연곡면에 걸친 오대산 일대에는 많은 마을, 고개, 바위 등이 있으나 잊기에 아까운 사라져가는 우리말 이름들만 몇 골라 소개하고자 한다.

 

 

1) 문지방 같아 '지방너미'(양양 서면 갈천리)

마을 입구에 뻗어내린 산줄기가 문지방처럼 생겼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근처 '용숫골'(龍沼一  ;용소일)이란 마을 남쪽 산기슭에는 호랑이가 머리를 든 모양의 '호랑이 바위'가 있다.

 

2) 산과 논이 많아 '논엣골'(양양 서면 論化里 ;논화리)
산과 논이 많아 '논엣골' 또는 '노네골'이라 하는데, 이 근처에서 가재가 많다는 '가잿골'(가좌동) 원집이 있었다는 '원댕이' 라는 마을이 있고, 올라보면 한계령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망령재'라는 고개도 있다.

 

3) '안마을'과 '안고개'(양양 서면 內峴 ;내현)

이 근처에는 '안'(內)과 관련된 땅이름이 여럿 보인다. 정족산 밑 안쪽에 있는 '안마을' 외에도 그 쪽의 '안터'라는 골짜기가 있고, 안마을 뒤에는 또 '안고개'(內峴)라는 고개도 있다. 지금의 내현리(內峴里)라는 행정지명은 '안고개'에서 나온 것이다.
 
4) 되놈들이 도망했다는 '되너미'(양양 서면 凡阜里 ;범부리)

범부리에서 용천리로 가는 고개로, 고려 32대 고종4년(1217)에 거란족 침입 당시, 고려장수 김취려가 원주,제천에서 크게 이기고, 평창의 보리실과 박달재, 대관령에서 거의 전멸시켰는데, 일부 살아남은 거란병들이 이 곳을 넘어 '되놈들이 넘었다'는 뜻으로 이 이름이 붙었다. (*서울의 돈암동도 되놈들이 넘었다는 뜻의 '되너미'에서 취음된 것이다) 박달재는 매내미(馬山里 ;마산리)에서 인제군 기린면으로 가는 큰재인데, 한자명으로는 '단목령'  (檀木嶺 ;단목령)이라 한다. 차항리에는 거란병들이 쫓길 때 쉬어갔다는 '거래지'(글안재 :車來地 ; 거래지)라는 큰 마을이 있다.

 

5) 들 아래쪽이라해서 '아랫드루'(양양 서면 北坪里 ;북평리)

북쪽에 들이 있어 '북드루'(북들)이라고도 하고, 들 아래쪽이 되어 '아랫드루'라고도 한다. '드루' '뜨루'는 '들'(坪 ;평)이라는 뜻의 강원도 사투리인데, 이러한 지명이 오대산 근처에도 많이 깔려있다. 양양군 서면의 '웃드루'(上坪 ;상평), 건너뜨루, 앞뜨루(南坪 ;남평)와 평창군 진부면의 '말뜨루'(馬坪 ;마평), 새밋드루(問坪 ;문평), 구석뜨루(九石坪 ;구석평) 등이 그러한 예이다.

 

6) '호랑바우'가 변한 '용바우'(양양 서면 上坪里 ;상평리)

안말 서쪽 산의 바위로 호랑이가 새끼를 치고 살아 '호랑바위'이던 것을 대략 1930년경에 '용바우'로 고쳤다. 근처 '건넌말' 동쪽 개울앞 산기슭에는 '노적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원래 맷돌 모양이라해서 '맷돌바위' 란 이름을 가졌었다.

 

7) 어우른 내라는 뜻의 '어룬깨'(양양 서면 松川 ;송천)

송천 남동쪽에 있는 내인데, 뒷내와 송애내가 여기서 합한다고(어우른다고)해서 붙은 이름이다.

 

8) 까막소 위쪽이라서 '물윗구미'(양양 서면 上水里 ;상수리)

까막소 윗쪽의 마을이라해서 '물윗구미'(上水里)라 했다. '까막소'라는 이름은 소(沼)의 물이 깊어 까맣게 보여 붙은 이름인데, 지금은 없어지고 길이 되었다.

 

9) 농이 굴러 '농구릿재'(양양 서면 五加里 ;오가리)

가래피에서 노내골로 가는 고개인데, 전에 길이 몹시 좁아 농을 싣고 오다가 농이 걸려 굴러 떨어졌다는 농바위가 있다.

 

10) 늘 흐려 '흐림골'(양양 서면 흘림골)

오색약수 남서쪽 약 4키로미터 지점에 있는 골짜기, 지대가 높고 골이 깊어  늘 안개가 끼고 날이 흐려있는 것 같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11) 섬처럼 된 들판 '섬버덩'(양양 서면 島坪 ;마평, 龍泉里 ;용천리) 

용천리 앞 남대천 한 가운데 섬처럼 되어있는 들이다. '버덩'은 '벌'(坪 ;평)의 뜻을 갖는 강원도 사투리인데, 오대산 근처만 해도 강릉 연곡의 '절터버덩', 병수버덩, 건너버덩, 홍천의 붉은덕버덩,  들미버덩, 양양 서면의 앞버덩 등 여러 곳의 지명으로 남아있다.

 

12) 장승이 있었던 '장승이'(양양 서면 長承里 ;장승리)

장승이 있던 곳은 이런 지명이 많이 붙는다. 이 누리 곳곳에는 '장승배기'라는 토박이 땅이름이 많으며, 그것의 한자 취음인 장생포, 장생리, 장성리 등의 지명이 잇다.

 

13) 주막이 있어 '아리랑고개'(양양 서면)

양짓말에서 서신리로 넘는 고개로, 장승리에서 광산이 생겨 이 고개에 주막이 생겼는데, 이 주막에서 아리랑 노래 소리가 자주 흘러나와 이 이름이 붙은 것이다.

 

14) 넓은 원집이 있어 '늘원이'(홍천 내면 廣院里 ;광원리)

본래 강릉 내일리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에 넓은 원집이 있었다해서 '늘원이'(널원이: 廣院)라 하였다고 한다.

 

15) 단종의 외조부 기리는 '귄대감비'(홍천 내면)

조선 5대 문중의 왕비 현덕왕후의 아버지이자 단종의 외조부인 화산(花山)부원군 권전(權專)의  비이다. 단종이 승하하자 세상을 피해 이 곳의 실론으로 온 후,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다 실론 산중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사슴에 놀라 말이 칡넝쿨에 걸려 넘어지자 말에서 떨어져 앓다가 죽었는데, 이 일이 있은 후에 이 근처 산에는 지금까지도 칡이 없다고 한다. 자운리에는 권대감이 수레를 타고 넘어다녔다는 '수레너미고개'(車踰峙 ;차유치)가 있다.

 

16) 바위가 일어섰다해서 '일어서기'(홍천 내면 起於石里 ;기어석리)

바위가 일어서 있는 것 같이 보인다해서 붙은 이름인데, 한자이름을 기어석(起於石)으로 붙인 것이 우습다. 즉 일어서기의 '일어'를 기어(起於)로, '서기'를 석(石)으로 한 점이다.

 

17) 두 냇물이 합하는 '나래아치'(홍천 내면 美山里 ;미산리)

두 냇물이 합치는 곳에 있는 마을인데, '치'나 '아치'는 이 근처 마을이름 끝에 많이 붙여지고 있다. 같은리에 '빈지아치'와  '심바치'가 있는데, 심바치는 여기서 '심'(삼)을 많이 봤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율전리(栗田里)에도 '밤바리'가 있고, 방내리(坊內里)에는 큰 들을 안고있는 '자기아치'가 있다.

 

18) 아늑한 뫼울타리 '우리울'(홍천 내면 栗田里 ;율전리) 

산이 사방으로 둘려있어서 울타리를 쳐 놓은 것 같아 붙은 이름이다. '울'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에 많이 붙는 이름이다.

 

19) 복숭아 씨를 버려 '도룻재'(평창 진부면 路洞里 ;노동리)

고밋골(곰엣골: 熊洞  ;웅동,  古木洞 ;고목동)에서 서쪽 봉평면 덕거리로 넘는 재인데, 지나던 사람이 복숭아를 먹고 버린 씨가 나중에 복사나무 숲을 이루었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20)김 도사가 살아 '도삿골'(평창 진부면 都事里 ;도사리)

김도사(金都事)라는 사람이 살아 '도사골'이 되었다. '큰도사리' 서쪽에는 이조 때 도사 벼슬을 한김씨 집의 터가 있다.

 

21)기생 청심이 죽은 '청심바위'(평창 진부면 馬坪里 ;마평리)

인락원 동쪽 산에 있는 바위로 절벽을 이루고, 그 밑에는 오대천의 맑은 물이 흘러 경치가 아름답다. 강릉 기생 청심(淸心)이 강릉 박씨를 사랑하다가, 박씨가 승진하여 서울로 올라가며, 이 곳까지 따라와서 부득이 작별한 후, 그 정을 못이겨  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 옆에 청심대가 있다.

 

22) 오대천의 물목이라해서 '물목'(평창 진부면 水項里 ;수항리)

원래 강릉 진부면의 지역으로, 오대천의 물목이 되어 '물목'(水項 ;수항)이라 하였다.

 

23) 용마 죽은 '말구릿재'(평창 진부면 龍田里 ;용전리)

용전 서편의 재로 지형이 몹시 가파르다. 옛날 속사리 연못에서 나온 용마가 주인의 피살됨을 슬퍼하여 이 고개에서 떨어져 죽었다 한다. 임진란 10여 년 전에 속사리에 살았던 정(丁)씨가 중의 말을 듣고 '장군대좌형'(將軍大坐型)인 이자리에 그 아버지를 묻은 3년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용맹이 뛰어나 장래의 화를 염려하여 죽였더니, 별안간 용못에서 용마가 나와 뛰어다니며 슬피 울다가 말구릿재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투구봉 밑에는 '장군묘'라는 이름의 정씨의 무덤이 있었다.   

 

24) 가리왕이 피난온 '대궐터' (평창 진부면 長田里 ;장전리)

부족국가 시대에 '맥'의 가리왕이 '예'의 침입으로 여기에 대궐을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25) 개울이 작아 '잔내울'(평창 진부면 尺川里 ;척천리)

잔(小) 개울이 있어 '잔내울'이던 것이 변해서 '자내울'이더니, 엉뚱하게도 한자명으로는 '척천'  (尺川)이 돼버렸다. 근처에 위장병에 좋다는 '방아다리' 약수가 있고, 지형이 활처럼 생긴 '활산모기'라는 마을이 있다.

 

26)개가 잠자는 모습의 '개자니'(평창 도암면 병내리)

'병안'(병풍골: 屛內里 ;병내리)이란 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로, 개가 잠자는 형국의 지형으로 되어 '개자니'(狗宿里 ;구숙리)이다. 이 마을에서 북쪽으로 넘는 긴 고개는 '진고개'(長峴 ;장현, 泥峴   ;니현)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왔다.

 

27) 거문고사랑의 '거문골'과 '애닛골'(평창군 도암면 鳳山里 ;봉산리)

'봉두고니'(鳳山里 ;봉산리.  두루봉 밑에 있어서 붙은 이름)  남쪽 골짜기에는  '애닛골'(愛連谷 ;  애련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1880년경 고성군수의 애첩인 애련이가 살았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 그 남동쪽 마을은 '거문골'인데, 애련이 이 곳에서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는 것이다.

 

28) 율곡이 바둑둔 '바둑돌'(薄石 ;박석.  강릉 연곡면 삼산리)

소금강 어귀의  골짜기인 무릉계에서 약 100미터 되는 물가의 바위로, 조선시대에 율곡 선생이 바둑두어 놀다갔다고 한다. 근처에 신라 마의태자가 와 있었다는 '아미산성이 있다.

 

29)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골'(강릉 연곡면 柳等里 ;유등리)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골'(버들이: 柳洞 ;유동)이라 하였다. 이 마을 북서 1키로미터 뒤는 산인데, 산 안에 백운사(白雲寺)라는 절이 있다.

 

30) 들려 있는 것 같은 '든바우'(擧岩 ;거암: 강릉 연곡면 퇴곡리)

'토일'(退谷 ;퇴곡) 북서쪽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이 이름은 마을 어귀에 있는 큰 바위가 비스듬히 솟아있어서 들려있는 듯이 보인다해서 나온 이름이다.


옛님들의 훈훈한 얼이 담긴 우리의 땅이름들이 죽어간다. '부루마루'가 '비로봉'(毘盧峰)이 되고, '솔내'가 '송천'(松川)이 되며,'물목'이 '수항'(水項)이 되고, '버들골'이 유등리(柳等里)가 된채 진짜 우리 것이 가려진 이 땅의 땅이름들. . .  어찌 여기 훓은 땅이름들 뿐이랴~ 강원도 어느 한 지역만 해도 엄청난 우리말 이름들이 한자 덤불에 뭍혀 거의 모두 죽어갔다.


글/지명연구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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