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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뫼이름들~

속리산(俗離山)의 지명 - 1편

by 마루금 2006. 6. 9.

 

 

속리산의  지명 

 

동햇가에 둑을 쌓으며 남으로 달리던 뫼줄기는 삼척 근방에서 갑자기 서편으로 큰 팔을 벌렸다. 벌린 팔이 조금씩 밑으로 쳐지면서 남서로 향한다. 이 팔은 한반도의 남부를 둘로 가르면서사잇가라(新羅)의 옛땅과 머리가라(百濟)의 옛 땅이 여기서 갈라졌었노라고 줄을 긋는다. 웃방과 아랫방 사이의 작은 벽인 양, 이 뫼 줄기는 한반도의 허리 안에서 아늑한 두 방을 만든다. 이 줄기는 불쑥불쑥 봉우리를 솟구고, 그 봉우리 사이에 길마꼴의 마루를 이루어 작은 길을 열어주면서 동서로 전라, 경상의 커다란 두 개의 삶터울을 만들었다. 태백산부터 시작되는 이 뫼 줄기는 먼저 소백산에 닿고, 그 남서쪽에 대재(竹嶺)를 열어주고나서는 문수봉과 주흘산으로 잇는다. 그 기슭에 이름도 유명한 새재(鳥嶺), 조금 그 남쪽으로 이화령을 열어주더니, 유명한 선유동계곡을 펼치고 나서 속리산으로 달린다.

 

많은 봉우리를 뭉쳐 제2의 금강을 만들어 놓고 난 이 뫼줄기는 다시 그 맥을 남으로 뻗쳐 백화산, 추풍령을 거치고, 꼬불꼬불 영호남의 갈림줄을 만들면서 그 등성과 기슭에 무주 구천동, 덕유산,육십령 등, 명승지를 이루게 하고, 다시 또 남으로 달려 팔량치라는 고개를 하나 틔어준채 두루산(지리산)에서 작품을 거의 마무리 짓는다. 이렇듯 소백산의 뫼줄기는 한반도를 잘랐다. 이 뫼줄기에서 가장 우람하고, 볼만한 명승지가 그 가운데에 있으니 이제 우리가 더듬어 볼 속리산이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 사이에 있는 이 속리산은 상주 관내에 그 뫼덩이의 3분의 2정도가 있는데도 대체로 '보은 속리산'으로 불리움은 어쩐 일인가! 그것은 서을을 중심으로 하여 생각할 때, 교통면에서 보은을 거치는 것이 상주를 거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고 빠르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보은 방면에 법주사라는 큰 절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백산맥이 한반도 남부의 가온이라면 이 뫼줄기의 가온에 자리한 속리산이야말로 가온속의 가온이다.

 

그러기에 이 산의 북쪽에서 한가람의, 서쪽에서 백강(금강)의 남동쪽에서 낙동강의 본 줄기를만들어 한반도 곳곳 너른 뚜루를 촉촉히 적실 물울 나눠주고 있지 않은가!  '보은 속리산 . . . 이렇게 불러도 경상도 쪽에서는 서운해할 이 없다. 신체의 대부분을 품에 안은 본바닥 상주 땅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니가지라구마. 내사 속리산이 아니라도 많은 걸 가지고 놀 수 있는기라"  시인 고은(高銀)선생은 이런 상주의 덕이 해동의 명산 속리를 후박하게 양도하고 만 것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다. 어떻든 속리산은 충청도만의 것도, 경상도만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관광지이다. 이제 우리 모두의 산인 이 산 일대의 땅이름들을 더듬어  이 곳의 옛 내음을 잠시나마 맡고자 한다.

 


1.속리산이란 이름

위연한 뫼부리와 조용한 계곡은 한 많은 속세를 떠나 불도를 닦는데 알맞은 곳이라 하여 '세속을 멀리 떠난 산' 이란 뜻에서 '속리산'(俗離山)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많은 산들이불교적인 이름으로, 즉 원래 순수한 우리말로 되어 있었던 '가라'나 '부루' '두루' 같은  산들이 거의가 '가야' '비로' '두류'(또는 지리)등으로 바뀌었는데, '속리'가  우리말에서 취음된 흔적은 지금으로선 찿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이름은 한자와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 붙여졌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많은 산들이 그러하듯 이 산도 딴 이름을 갖고 있다.

 

2. 속리산의 딴 이름 '구봉산'

칡넝쿨, 할미꽃, 모기가 없어 '삼무'(三無)의 산으로 유명한 속리산은 천황봉을 주봉으로 하여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관음봉등 9개의 봉우리가 충청도 쪽으로 활처럼 휘어져있다고 해서 구봉산(九峰山) 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구봉산의 '구봉'이란 음이 '굽은'에서 나온 설이라고도 한다. 즉 산봉우리의 이어짐이 활처럼 굽은 형태로 보은땅을 울타리치고 있어 '굽은산'이라던 것을 한자의 표기에서 취음을 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우리나라의 산들 중에는 이 주장처럼 굽은(曲)에서 연유된 듯한 '구을산', '구운봉', '고불산'. '구불산'등의 음을 가진 산이 더러 보인다. 구봉산은 전북의 진안, 황해도의 곡산, 강원도의 영월땅에도 있다. 이 속리산은 오랫옛날에 '광명산' 또는 '이지산'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경치가 아름다와 '소금강' 또는 '제2금강'이라는 별명까지 있다는 사실은 익히들 알고 있다.

 

3. 속리산의 여러 봉우리

1) 천황봉(天皇峰)

법주사의 동쪽 약 5.7Km 지점에 솟은 봉우리로 해발 1057m의 속리산 최고봉이다. 속리산의 여러 봉우리 중 가장 남쪽에 있는데, 매우 웅장하고 수려하며, 동으로는 낙동강 상류, 남으로는 금강 상류, 북으로는 한강 상류와 접해있어 이른바 '삼파수'(三派水)와 맞붙어 있다.

 

2) 비로봉(毘盧峰)

천항봉의 북쪽이자 문장대의 남동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속리산의 가장 북쪽 봉우리인 '묘봉'도 '비루봉'이란 딴이름을 가졌는데, 이러한 '비로' '비루' 등의 이름은 '부루'에서 나온 것임이 확실하다.

 

3)입석대(立石臺)와 경업대(慶業臺)

법주사에서 북동쪽으로 약 5Km의 거리에 있는 입석대는 높이 10m의 큰 자연석으로 비 모양을한 바위 봉우리여서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돌 밑에 철편(鐵片)이 받쳐 있는 것으로 보아 인공적인 듯 하며, 전설에 의하면 백마산성의 용장 충신공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일곱 해 동안의 수도끝에 세운 것이라 한다. 입석대에서 동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는 경업대(慶業臺)는 임경업 장군이 독보대사(獨步大師)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하던 곳이다. 역시 전체가 바위로 되었는데, 절벽과 받침돌로 이어져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

 

4) 문장대(文藏臺)

해발 1033m로 속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데, 입석대의 북쪽에 있다. 여러 바위가 한덩어리가 되어 높이 솟아 대(臺)를 이루었는데,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운장대(雲藏臺)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대의 꼭대기에는 약 50명이 않을 수 있는 빈 터가 있어 속리산의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또 여기엔 돌이 패여서 샘이 되었는데,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물이 넘치지 않으며, 그 물은 세 갈래로 갈라져서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 남쪽으로 흘러 금강, 서쪽으로 흘러 한강이 되었다. 세종대왕이 이 곳에 올랐을 때 설치 했다고하는 등산용 철초의 흔적이 있어 사실을 짐작케 하며, 지금은 쇠다리가 놓여있어 오르기가 안전하다. 세조가 여기에 올라보고, 흥에겨워 시회(詩會)를 베풀었다 하는데, 문장대(文藏臺)란 이름도 여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5)관음봉(觀音峰)

문장대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해발 985m이다. '관음봉'이란 이름은 바위가 관음보살처럼 생겼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6) 묘봉(妙峰)

관음봉에서 상주와 보은 경계의 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2.5Km쯤 간 자리에 있는 봉우리로, 해발 873m이며, 속리산 봉우리 무리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 '비루봉'이라고도 하는데, 이 산봉우리의 서쪽은 보은 산외면, 북쪽은 상주 화북면, 남쪽은 보은군 내속리면이 된다.                                                                         


글/지명연구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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