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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서장대, 호국사, 창렬사, 북장대 .... 2005.08.01 서장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호) 진주성 서문의 지휘소이다. 여지도서(與池圖書)에 보면 회룡루(回龍樓)로 나오는데 규모는 작았으나 촉석루와 같이 다락집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서장대는 1934년 독지가 서상필씨가 증건한 것이다. 호국사(전통사찰 제70호) 고려시대 창건하여 내성사로 불리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의 근거지로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국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란 이름으로 재건 되었다. 창렬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호) 임진왜란 당시 계사년(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선조40년(1607년)에 건립된 사액(賜額) 사당이다. 고종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충민사에 모셔져있던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신위와 삼장사등.. 2005. 8. 9.
진주성 3.1운동 기념비 .... 2005.08.01 강변산책로 박물관 입구의 잔듸밭. 성곽에서 바라본 진주시내 전경.. 3.1운동 기념비.. 임진왜란 당시의 총통.. 2005. 8. 9.
진주성 의암, 의기사 .... 2005.08.01 의암 (경상남도 기념물 235호) 위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이라 불리다가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후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하여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의기사(논개사당)(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7호)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으로, 영조16년(1740년)에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창건 하였으며, 지금의 의기사는 의기창렬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재건한 것이다. 쌍충사적비(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3호) 임진왜란의 의병을 모아 싸우다 순국한 재말장군과 정유재란때 전사한 그의 조카 재홍록장군의 충의를 새긴 비석이다. 2005. 8. 9.
진주성(촉석루) .... 2005.08.01 촉석루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8호)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 제일의 명승이다. 전시에는 장졸을 지휘하던 지휘소로 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고려 고종(1241년) 창건된 이래 수차례 중건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10년(1618년)에 이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하여 1948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다시 불탔으며,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진주고적보건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증건 하였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짝지붕 누대로 촉석루란 이름은 돌이 강 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하여 붙인 이름이며,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 부르기도 하였다. 2005. 8. 9.
진주성(촉석문) .... 2005.08.01 진주성(晋州城) 사적 제118호 진주성관리사무소 055-749-2480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하여 삼국시대부터 조성한 성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고려말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종광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직후에는 성의 중앙에 남북으로 내성을 쌓았다. 선조 25년(1592년) 10월 왜군 2만여 명이 침략해오자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3800여 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 합쳐 물리쳤으니 이것이 임진왜란 3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이듬해 6월에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해 옴에 7만 민, 관, 군이 이에 맞서 싸우다 모두 순국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972년 촉석문을 복원하였고, 1975년에는 .. 2005. 8. 9.
진주 남강에서 .... 2005.08.01 흐르는 남강의 맑은 물위에 해가 지면 반짝반짝 별이 흐르고 흐르는 남강의 맑은 물위에 해가 지면 밝은 달이 떨어지고요 흐르는 남강의 맑은 물결은 해가 지면 별님 달님 싣고갑니다 이 시는 최계락 시인이 진주중학교 3학년 때인 1947년에 발표한 것이다. 최계락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진주의 시인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강이 바라보이는 신안동 녹지공원에 세운 시비는 진주의 유일한 최계락 시인의 문학현장인 셈이다. 2005. 8. 9.
불곡산 슬랩......2005.8/7 10시에 의정부역에서 만나기로 ~ 나는 코펠과 버너를 준비하라는 초목의 지시로 대략 20년 넘게 묵은 골동품으로 준비했다. 9시 20분에 의정부역에 도착하여 EPI가스를 구입하러 의정부역 동부광장을 헤메며 돌아다녔는데 단 한군데도 파는 곳이 없었다. 오늘 초목이 삼겹살을 가져 온댔는데 버너가 작동이 되지 않으면 어찌 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어쨌던 가스를 준비해야 했다. 지하상가를 헤메다가 서부광장으로 건넜다. 지하에서 서부광장으로 나와 24시 편의점을 들르니 고맙게도 그게 있었다. EPI가스를 구입하고, 의정부역사로 올라서니 효경이 반가운 인사를 한다. 효경한테 폰이 울리는데 서부광장에 일행들이 도착해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정대장과 초목, 능강이 반갑게 맞이한다. 초목이 폰으로 청풍의 위치를 확인, .. 2005. 8. 8.
BAC암장...2005.8/6 휴가철인 관계로 일요일 공지에 참가자가 없어 산행을 토요일로 변경하였다. 암장 근처 야영지에 이르자 마침 이 암장을 개척한 바위모임에서 야영계획 중 이었다. 올해 5월부터 개척하여 아직 미개척된 코스가 많다. 코스가 모두 완료되면 30개 이상의 등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한다. 좋은 곳을 개척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 바위모임 클럽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오늘의 등반을 무사히 마친다. 2005. 8. 8.
BAC암장...2005.7/30 석수역에서 10시에 한우리팀과 함께 출발, 총 9명이다. 1번국도 횡단보도를 건너 마을도로에 진입, 밭 사잇길을 지나 삼성산 숲길로 들어선다. 가파른 길을 10분쯤 오르니 약수터가 나오고,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주 능선으로 붙어 진행한다. 평탄한 길을 10분쯤 가면 쉼터의자 2개가 놓인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숲사이로 암장이 보인다. 삼거리에서 우측 좁은길로 3분쯤 진행하다가 내리막 직전의 좌측 희미한 길로 90도 꺽어 조금 오르면 암장에 도착하게 된다. 총 7개의 코스를 올랐다. 좌측부터 비, 악, ? , 5월 어느날, 일어나, 진지, 독립봉 ?, 난이도는 대략 5.10a~d 정도로 보였다. 등반을 마치고, 하산 후 석수역 치킨집에서 가벼운 뒤푸리하던 도중에 큰형님 빈자리님께서 북한산 염초~만경대 릿.. 2005. 7. 31.
BAC암장(봉주)...2005.7/30 2005. 7. 31.
문수산 문수골암장(자스민)...2005.7/24 2005. 7. 25.
문수산 문수골암장(감자)...2005.7/24 2005. 7. 25.
문수산 문수골암장(봉주,봉남)...2005.7/24 2005. 7. 25.
문수산 문수골암장.......2005.7/24 송내 남부역에서 9시30분에 7명이 모여 차량2대로 출발한다. 외곽고속도로~김포강변도로~강화대교 건너기 바로 전의 성동검문소에서 우측길로 빠져 문수골로 향한다. 저수지를 지나 해병부대 정문에 주차를 하고, 유격장을 통과, 문수사로가는 길을 따라 오른다. 문수사 이르기 직전 우측으로 암장이 보이고, 여기에 자리를 잡는다. 지난 겨울 문수산 하산길에서 보았던 암장의 모습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 때 없었던 이끼가 잔뜩 끼어 있고, 게다가 바위면이 촉촉하게 젖어있어 등반하는데 심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아마 암장 개척 후 관리에 소홀했던 것같다. 코스는 모두 3개였다. 좌측코스는 정대장이 선등으로 조심스럽게 올랐고, 우측은 자스민이 선등으로 붙었다. 우측 코스는 첫 번째 볼트에서 두 번째 불트로 오르는.. 2005. 7. 25.
이민재 박사.. 李 敏 載 "산은 명예를 위한 대상일 수 없어" 이민재 박사, 학자이며, 산악인이었다. 지루하지 않은 시기에 산뜻한 세대교체를 실천으로 가르쳤다. 푸른 기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은발의 퇴역' 이박사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인 관계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재씨는 식물학을 전공한 이학박사였다. 자유당 시절의 장기집권을 했던 '이박사'가 아니다. 제6대로서 한국산악회 회장직을 단 한 번 역임했을 뿐이다. 71~ 73년까지,연임을 귄하는 주위의 요청과 뭔가를 더 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을 떨쳐버렸다. 장기집권 한 이승만 박사처럼 되기 싫어서 . . . 이박사는 82년에 강원대학 총장직을 정년퇴직했다. 45년 서울대 약대교수로 첫 발을 내디딘 후 줄곧 몸담아 온 교육계를 35년만에 떠난 셈, .. 2005. 7. 23.
산 무서운 줄 알아야지! 洪 鍾 仁 산 무서운 줄 알아야지 !! 한국산악회 회장을 20년동안 맡았던 홍종인씨" 산은 건너 뛰는게 아니고 한계단씩 오르는거야. 사람은 뮛보다 겸허해야 해."산행의 윤리를 강조하는 그는 박사들을 야단치는 "홍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홍종인씨는 한국산악회 회장직을 1947년부터 67년까지 무려 20년씩이나 역임했다. 홍회장은 "홍박"이라는 딴 이름으로 더욱 유명 했다. 즉 홍박사라는 애기다. 박사학위는 없었지만 세상 박사들을 모두 박살 (?)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박사라는 주위의 설명이다. 연유가 어쨌건 홍회장은 '홍박'스럽게 당당한 목소리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왔다. 오래된 애기지만 TV에서 묘기대행진같은 한독교류회의 암벽등반시범을 본 홍회장은 "그게 뭐야, 너무 분주하쟎아?" 원숭이짓하던 서독.. 2005. 7. 21.
하늘은 끝내 우리를 거부했다........2005.7/17 "시인 신동엽길..." 지난달 19일 한 차례 시도했다가 등반팀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돌아섰던 적이 있고, 이어 7월17일을 두 번째 등반계획의 스케줄로 잡았다. 도선사주차장 매표소에서 8시에 7명이 모여 8시30분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하루재를 지나고 위문을 넘어 백운대의 거대한 남서벽으로 내려선다. 약수암 위의 신동엽길이 시작되는 공터에 도착하니 9시30분이다. 하늘엔 구릅이 깔려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비가 올 것같지는 않았다. 사진: 좌측벽이 백운대남서벽 이다. 각자 장비를 착용하고, 등반순서를 정한 후 선등으로 정대장이 바위에 붙기 시작했다. 첫 피치를 시작하자 안개이슬같은 물방울이 얼굴을 스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굵어져 한 방울 두 방울씩 수직으로 머리를 때리기 시작한다. 선등자가 첫 피.. 2005. 7. 18.
토왕폭의 초등은 1977년 1월12일 크로니 산악회에 의해서 초등이 이루어 졌다. 76년 토왕폭은 지칫 日本人에게 그 첫 순결을 낼 뻔 했다, 구곡폭포를 처음 오른 산시로씨가 가와사끼, 고히로등 5명의 동료를 끌고와 토왕폭 하단을 2월7일부터 2박 3일동안(등반에는 14시간 소요)에 완등 한 후 상단의 3분의1까지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어쩐일인지 돌아섰다. 만약 그들이 성공했다면 한국산악계는 씻지 못할 한을 토왕폭에 남겼을 것이다. 제 계집을 남에게 빼앗기는 못난 한을...때문에 77년 토왕폭 사나이들의 눈빛은 더욱더 번쩍였다. 비감한 기운까지 돌며, 77년의 토왕폭은 출사표를 던진 山사나이들의 광장이 되었다. 77년 1월은 토왕폭의 잔칫날이었다. 이 폭포가 생긴이래 가장 많은 산꾼들이 토왕골로 몰려 .. 2005. 7. 13.
파랑새봉 등반 .... 2005.07.10 파랑새봉 직벽오름.. 크랙 끝나고, 슬랩을 넘어서는 곳이 크럭스 지점으로 꽤 까다롭다. 전원 연속으로 두 번 이상씩 올랐다. 2005. 7. 11.
파랑새 릿지 .... 2005.07.10 " 파랑새를 찿으러 ..." 오늘 우리는 파랑새를 보지 못했다. 아니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파랑새를 보았다. 등반을 하면서 세상의 모든 오욕을 버리고, 나의 가슴에 불타는 정열과 희열을 가득 채우며, 자연과 함께 호흡한 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성황당 입구에서 하차하여 능선을 끼고 오르다가 왠지 물이 그리워 다시 계곡으로 빠져든다. 장마철이라 계곡의 수량은 매우 풍부하고, 물소리가 여느 때보다 더 크게 들린다. 첫째 폭포를 지나고, 이어 둘째 폭포에 이른다. 약간 오버행끼가 있는데서 떨어지는 폭포수에 물마사지를 받으면 아주 끝내줄 것 같다. 계곡과 암반을 따라 오르다가 평소에 식수를 채우던 곳에 도달, 잠시 쉰 후 출발한다. 위 협곡의 검푸른 깊은 소를 시원스레 구경하.. 2005. 7. 11.
8000m를 우리나라 최초로 오른 사람은 한국의 진정한 등산가 崔秀男 그는 1971년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8000m를 넘어섰다. 71년 3월, 박철암 대장을 비롯한 강호기, 장문삼, 권영배, 김인길, 김운영, 박상열, 하세득, 양승혁, 김초영씨 등 한국 로체 샤르 등반대가 출국했다. 3월5일 루크라 비행장(2700m)에 내린 대원들은 로체 샤르를 향해 캐라반하였다. 4800m 츄쿵 부근에서 그동안 고산증세를 참아오던 권영배 대원이 말 한 마디 못하고 의식을잃어 버렸다. 그 바람에 등반대는 풍지박산이 되기 시작했다. 경험부족으로 인해 당시까지만해도 우리 산악계는 고산병에 대한 상식마저 없었다. 연장자가 오히려 적응이 쉽다는 것과 건강한 사람일수록 빨리 그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고산증세는 체질의 약세를 애기하는 것은 아니며.. 2005. 7. 4.
女性山岳人...박은정 山으로의 일편단심 그 무한한 世界 女性 山岳人 부모님이 생명보험 들어주시고 . . .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산을 오르는 경쟁을 포기한다면 경쟁자가 많은 사회생활을 어찌 감당할 수가 있을까하고 말이다. 암산을 묵묵히 오르는 순례자처럼 그 어려운 고행을 통해서 얻는 나의 정신 세계는 내가 사회생활을 해낼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인관계에서 의미없이 깨어지는 신뢰도, 기대도 다 감당해 낼 수 있고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얻은 힘이라고 확신한다. 맨 먼저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좋다. 서서히 산과 친해지면서 맨 마지막으로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산악인의 끈기와 집념을 배워야 된다고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산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과 자신을 갖기 시작할 때쯤 주위에서는 .. 2005. 7. 2.
백야 청청 ~ 지금은 비록 손님이지만 앞으로 왕건이로 등극하게 될 걸출한 인물입니다. 2005. 6. 28.
옛날의 봉주가 아니여~ ..........2005.6/26 나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올청이쩍 기억이 안날지도 모르것습니다~ ㅎㅎ 2005. 6. 28.
감자 튀긴 날 ..........2005.6/26 분명,,, 예전의 감자가 아니다, 불량감자라 했는네,,, 아무래도 불량이란 말은 삭제 해야겠다. 2005. 6. 28.
환상적인 몸동작 ..........2005.6/26 바란스정 ~ 그의 몸 놀림은 언제나 예술이다. 부드럽고 깔끔하게 처리되는 그의 섬세한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아무렇게나 찍어대는 사진이라도 그의 몸에서는 멋진 폼이 우러나온다. 같은 코스를 올라도 분명 그의 동작은 그 모양이 다른 사람과는 틀리다. 나는 함께 등반 하면서 그의 아름다운 행위예술에 취하는 즐거움이 있다 사진: 워밍업 타임으로 오전.... 사진 : 약간 짠돌에서 ..... 사진: 점심 후 막걸리 한 잔째 .... 사진: 두 잔??...ㅎㅎ 사진: 이 코스를 연속으로 세번씩이나 오르고.... 2005. 6. 28.
병풍암 ..........2005.6/26 반갑쟎은 장마가 시작 된다고, 일기예보에 극히 민감했던 날이다. 기상청 3시간 예보는 오후12시부터 강수확률 60% ??? 9시 군포역에서 5명의 꾼들 집결, 8번 버스로 이동, 두부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하차, 두부마을, 비포장 임도, 오봉정사, 샘터를 지나 애매한 철망길 숲을 헤쳐가니 병풍암이 나온다. 비 오기 전 본전 뽑겠다고 오전에 모두들 한 코스라도 더 붙어 열심이다. 몇 차례의 등반이 끝나고, 간단하지만 맛난 점심과 걸죽한 막걸리로 배를 즐겁게 한다. 포만감에 적당히 취기가 오르니 기분이 좋은데 잠시 후 저마다 먹은 술 깨겠다고 땀을 빼러 벽을 오른다. 한 코스에 연속으로 두 세번씩 올라 용 깨나 쓰고, 기운을 다 쏟아내는데 땀이 비 오둣 한다. 몇 차례 오르고나니 정신이 맑아온다. 원래 바위 .. 2005. 6. 27.
나이의 한계에 도전... 파아란 불꽃의 큰형님 耳順의 클라이머 최기덕 . . . . 山 1982.2월호에서 옮긴 글 제가 나이든 산사람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면...하고 웃는 최기덕(60)씨. 주름진 피부는 耳順의 나이를 애기하지만 맑은 눈동자는 소년같다. 어느날 그는 늙은 피부는 벗어버리고 그 맑은 눈동자를 가진 젊은 산소년으로 다시 태어날 것만 같다. 50대에 바위타기 시작 "산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때문에 역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바로 산이라 할 수 있겠지요. 육체의 젊은 절정을 넘기면 그 정신마저 쇠퇴기에 접어 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육체와 젊음의 정신을 맛 보았습니다. 따라서 나의 산은 더욱 젊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는 등산을 30년이나 계속하며 걷기만을 .. 2005. 6. 26.
신동엽길을 포기하고 ..........2005.6/19 약수암 도착 ~ 수통에 물을 채울려니 샘터가 바짝 말라 바닥이다. 오늘 날씨가 꽤 더운데 물 부족으로 진하게 고생 할것 같다. 신동엽길 오르기 전 약수암에서 잠시 여유를 부려본다. 사진 : 약수암에서 ... 약수암 볼더에서 가볍게 몸을 푼 후 바로 위의 신동엽길로 이동한다. 앞서 온 팀 수십 명으로 각 피치마다 다닥다닥.. 출발지엔 또 다른팀 십여 명이 대기중, 막간을 이용해 점심 해결, 먹고나니 어제밤 청소년축구 브라질과의 경기로 늦게 잠든 탓에 졸립다. 휴식을 취하며 기다려봐도 두 번째 세 번째 피치에서 버벅대는 초보자들로 등반 진도가 별로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서야 대기하던 앞팀이 첫 피치를 붙기 시작하는데 해가 있는 동안 우리의 등반이 끝날 것 같지 않다. 결국 신동엽길 등반을 취소하고, 우측벽을.. 2005. 6. 21.
티롤리안 브릿지..........2005.6/12 염초암장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각자 서너 번씩의 등반을 더 가진 후 염초릿지로 붙는다. 개구멍 하강지점에서 건너편의 봉우리에 자일을 빨래줄처럼 고정시켜놓고 티롤리안브릿지로 횡단한다. 감자는 오늘 염초능선이 처음 이라는데 혀를 내 두를 정도로 등반에 대한 애착과 집념이 강하다. 사진: 바란스정의 외줄타기로 횡단중.. 사진: 약수암 릿지로 올랐다는 산우 법향을 반갑게 만났고.... 사진: 감자 건너기 준비증... 사진: 1차 통닭구이로 건너기 시도... 사진: 감자의 환한 웃음... 사진: 통닭구이로 왔다가 외줄타기를 시도하겠다고 건너편으로 다시 돌아간 감자.... 사진: 외줄타기 자세로 다시 건너오는 감자... 기어코 성공한다. 사진: 외줄타기 자세로 끝까지 횡단하는 여성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사진.. 200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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