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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산사람들~

이미륵(李彌勒) ... 그는 누구인가?

by 마루금 2011. 12. 7.

故 이미륵(李彌勒) 박사

 

소설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독일에서 교수와 작가 생활을 했던 한국인이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로 유럽에 한국을 소개했고, 1930년~40년대에 알프스 산군에서 등산 활동을 했다.

 

일제 치하 조선인으로서 유럽에서 활동한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그 몇 되지 않은 인물 중 한 사람이 등산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있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더군다나 등산의 메카라는 알프스에서 등산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주로 카르멘델, 빌더카이저 등지에서 등산 활동을 했다고 한다.  

 

1899년 3월 8일 황해도(현 황해남도) 해주 출생, 한국전쟁을 앞둔 1950년 3월 20일에 5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본명은 이의경(李儀景), 1남 3녀 가운데 1남으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으며, 옛 풍습에 따라 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중 3.1 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검거를 피하여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 뷔르츠부르크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뮌헨 대학에서 동물학, 철학 등을 전공하였다. 1928년에 졸업을 한 뒤, 잡지 투고, 기여 및 번역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각고의 집필 끝에 완성한 '압록강은 흐른다'는 그의 역작으로서 1946년 출판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떤 잡지에는 '올해 독일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책이 외국인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바로 이미륵이다'라고 썼다. 독일 문학계에도 알려져 교과서에 실렸다. 1948년부터 뮌헨대학 동양학부에서 중국과 일본 고전, 한국어 등을 가르쳤다.

 

그는 망명 뒤 죽을 때까지 한국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1963년에 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표창 이름이 바뀌어졌다.

 

 

 

아래는 그의 여인 '마야'에게 보냈던 편지 일부를 옮겨보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태양시에 따르면 겨우 6시)경에 출발하여 카이저탈 계곡을 천천히 올라갔다. 참으로 좋은 날씨였어. 짙푸른 하늘과 부드러운 아침바람! 처음 비탈을 오를 때 나는 심계증(心悸症)을 느꼈으나 용감하게 슈트립젠요흐까지 올라갔다. 우리는 단 두 번에 걸쳐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오후 3시경에 치솟은 암벽의 산등성이에 도달하였다. (2년 전에 우리는 오후 7시에 이 상부에 겨우 도착했었다). 우리는 서로 놀랄만한 나의 산행에 대하여 기쁨을 나누며, 맛좋은 커피가 든 깡통을 서로 주고 받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후 4시경에는 날씨가 변덕을 부려 비가 올 것 같다고 베른하르트는 말했다. 1시간 후면 비가 내릴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오늘 안으로 린네를 통과하고, 그루텐 산장으로 건너가야만 했다. 오, 마야! 나는 몹시 지친 나머지 정말 발을 앞으로 내디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위험한 협곡을 가로지르며, 5시간을 감히 더 올라가야만 한다는 말인가! 나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러자 이때 나의 패기가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는 끝까지 린네를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까스로 모퉁이를 돌고 프레딕트슈틀과 프라이슈방크 사이에 있는 암장의 너덜지대를 보는 순간, 사방은 흐리고 추웠다. 그리고 빗방울이 하나 둘 우리들 어깨 위에 떨어졌다. 어이쿠, 빌어먹을, 아직도 더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나 베른하르트는 기세 등등하게 말하였다. "한 시간이면 비가 온다고 말했잖아!"  그렇다. 물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 무슨 도움을 준다는 건가. 점점 더 추워지고 어두워졌다. 그리고 나는 가엽게도 추웠다. 갈수록 비가 더 심하게 내리는 동안, 나는 한 암괴에서 다른 암괴로 힘겹게 올라갔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렸다. 오, 마야! 그대가 곁에 있었더라면! 암석의 너덜지대를 오르는 동안 숨은 차고 몸은 떨리며, 몹시 애를 먹었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고, 무겁게 깔리고 있었다. 마침내 엘마워 도르에 다다랐을 때, 안개가 너무 짙게 깔리고, 어두워져서 10미터 앞을 거의 바라볼 수 없었다. 이 웅장한 엘마워 도르 위에서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정말 애석하기 그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념으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루텐 산장으로 내려갔다. 이것은 물론 지난해 우리들이 어우러져 황량한 성(城)을 찾았다니며, 많은 협곡을 건너 다니며, 헤매던 아름다운 바로 그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둡고, 추운 나머지 쓸쓸하고, 가련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우리는 엘마우스쪽으로 하산하고. 버스를 타고, 쿠프슈타인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계속 그레켈핀으로 갔었다. 그래, 그렇게 되었던 거야! 그렇지만 이름다웠어. 쿠프슈타인에서 슈트립젠요흐를 거쳐서 그루텐 산장까지 하루 만에 해냈다는 것이 나는 자랑스러워! 그 후 나는 나의 방에서 다시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다. 나는 매주 두 번 뮌헨에 나가서 한문(漢文)을 강의하고 친구들을 방문한다. 리히터 부인과 부루노가 그대에게 진심으로 안부를 전했어!   

 

그대의 미륵, 1941,11,6   


EN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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