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공유/뫼이름들~

풍수와 산이름 - 1편

by 마루금 2006. 10. 26.

 

 

속세를 떠난다고 해서 '俗離'라니

소백산맥은 한반도 남부를 남서방향으로 크게 가로질러 영/호남을 구분지어 놓았는데, 이 산맥의 여러 산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산이 태백산, 속리산, 지리산이다. 그런데 이 중 속리산(俗離山)은 불교적 지명으로 붙여져있어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나 여겨지게 한다.

 

법주사가 창건된지 233년만인 784년(신라 선덕왕 5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김제 고을의 금산사(金山寺)로부터 이곳에 이르자,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다. 이를 본농부들이 '짐승도 회심이 저리 존엄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하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를 따라 이 산으로 입산수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때부터 사람들이 '속세를 떠난다'는 뜻에서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것이 문헌이나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속리산의 이름 유래이다. 속리산은 그 산이름 자체에서뿐만 아니라 이 산의 여러 봉우리에서도 신앙적 요소를 찿아볼 수 있다. 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이 그러하고, 비로봉(毘盧峰), 관음봉(觀音峰) 등이 그렇다. 속리산은 우리나라 8경의 하나로,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 또는 제2금강)이라고도 불러왔다. 또 구봉산(九峰山), 지명산(智明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弟山), 자하산(紫霞山), 광명산(光明山), 이지메 등의 다른 이름을 갖고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속리'라는 이름을 보고 한자 그대로 풀어 '세속을 떠나'라는 지명풀이에 머물러는 안될 것이다.  '세속을 떠나'의 뜻을 한자로 나타낸다면 조어난 관행상으로 '이속'(離俗)이어야 더 옳을 것인데, 왜 '속리'가 되었느냐 하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승려나 풍수가들이 만든 지명도 많아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산이름들을 살펴보면서 순 우리말에서 출발한 이름들이 한자로 붙여지는 과정에서 뜻의 혼동을  가져오게 만든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특히 음역(音譯)에서 그러한 경우가 많은데, 큰 산,신성한 산의 뜻인 '감뫼'(검뫼)가 검산(劍山), 감악산(紺岳山)이 된 것이라든지, 밝은 산, 양지쪽의 산의 뜻인 '밝달'이 박달산(朴達山), 백산(白山)으로 된 것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무릇 모든 땅이름이 거의 다 그렇치만, 산이름도 처음부터 특별히 어떤 이름이 정해져있던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그대로 산(山)이나 꼭대기의 뜻인 '달', '두리', '술', '수리', '부리', '모로', '모루', '마루', '마리','자', '재' 등으로 불려 왔을 것이었다.

 

지금과 같이 어떤 큰 생활 영역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던 오랜 옛날에는 자기 집, 자기 마을 주위만 알면 그만이어서,  '무슨 산'이라는 이름의 필요성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다. 따라서 산이라는 말 자체가 그대로 이름처럼 씌었고, 부득이 어떤 산을 따로 지칭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큰산', '작은산', '앞산', '뒷산', '동산', '남산' 식으로 불렀던 것이다.

 

이렇게 오랬동안 불려왔던 관계로 전국의 수많은 산들이 몇 개의 아주 큰 산, 잘 알려진 명산을 빼놓고는 모두 비슷비슷한 이름이었고, 결국 지금까지도 같은 산이름이 무척 많이 남아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생활권의 확장, 고장과 고장 사이의 교류/왕래에 따라 서로 같거나 비슷한 산이름이 조금씩 구분지어 불려지기 시작했고, 더우기 지명의 한자화에 따라 같은 산이름을 두고도 표기를 각각 달리하는 방법을 써서 이름의 다양화를 꾀하였다. 그래서 '한밝'이 태백(太白), 대박(大朴), 함박(咸朴), 함백(咸白) 등으로 되고, '감뫼'(검뫼)가 신산(神山), 가마산(可馬山), 검산(劍山), 웅산(熊山), 흑산(黑山) 등으로 되었다.

 

순 우리말 산이름을 한자로 바꿔 붙일 때, 우리 조상들은 가급적 뜻이 좋은 한자를 취하였다. 특히 불교가 성해지고, 풍수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산이름을 붙임에 있어 산과 관련이 많은 승려나 풍수지리 학자들이 산이름을 그러한 쪽으로 이끌어 간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속리'를 한자풀이의 차원이 아닌, 우리말의 유추 차원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속리는 '수리'의 차음?

한자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에서 쓰고 있지만, 잘 알다시피 이 글자의 각 자가 가진 뜻을 각 나라가 공통하되, 읽는 법이 다른 것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天'이란 한자 하나만 보더라도 중국 음으로는 '텐'이요, 우리 음으로는 '천'이며, 일본 음으로는 '덴'인 것이다.

 

그런데  '天'은 우리의 옛 자전에 '하늘 틴'하는 식으로  '틴'으로 된 것이 많으니, 세 나라가 이 글자의 거의 같은 음으로 읽어 왔슴을 알 수가 있다. 한자의 발생지가 중국이고 보면, 우리가 현재 쓰고있는 한자의 음은 처음에는 중국 본래의 음에 가까웠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한자로 기록된 삼국시대의 옛 지명을 우리말로 유추해 보면 이 추측은 더욱 굳어진다. 따라서 음역이 확실한 어느 한 지명을 가지고, 우리 본래의 음으로 유추할 때, 지금의 우리식 한자 음에 맞추기보다는 음역이 되었을 당시의 발음 상황을 고려해야 더욱 확실한 우리 본래의 땅이름을 찿아낼 수가 있다.

 

속리를 음역된 지명으로 보고, 이를 옛날식 우리음을 따라 유추해보면 결국 '수리'가 된다. '속'(俗)은 중국 음으로는 '쉬'이고, 우리의 옛 음으로는 '수'이니, 속리는 '쉬리', '수리'이거나, 아니면  이에 근사한 어떤 음일 것이다. '수리'는 '꼭대기'를 뜻하는 옛말로서, 오늘날의 머리의 '정수리'도 바로 이 말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수리'를 음역으로 한 산이름에는 수리산(修理산: 경기 안양), 소래산(蘇萊山: 경기 시흥), 소리산(所伊山: 강원 이천 *대동여지도), 소의산(所衣山: 경기 가평 *대동여지도), 소라산(所羅山: 황해 평산 *대동여지도) 등이 있다. 차산(車山), 차령(車嶺), 취령(鷲嶺) 등도 모두 '수리'를 수레(車)나 수리(鷲)로 보고 한자로 취한 것이다.
   


고려 태조 탄생을 신성시한 송악 설화

이처럼 산이름은 단순히 산, 꼭대기, 봉우리의 뜻이던 것이 한자로 음역/의역되는 과정에서 붙이는이의 취향과 그 당시의 사회 사정, 신앙, 풍습 등에 따라 다른 뜻의 이름처럼 되어버린 것이 많다.

 

지명의 한자화는 불교가 성하던 통일 신라시대에 특히 많이 이루어져 꽤 많은 이름들이 불교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고,  풍수사상이 퍼지면서 풍수적 지명으로 흐르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와선 풍수신앙이 크게 성행, 원래 있던 땅이름을 없애버리고 아예 풍수 지명으로 새로 바꿔 붙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고려의 학자 김관의(金寬毅)가 쓴 <편년통록(編年通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려 왕실의 시조 호경(虎景)이라는 이가 백두산으로부터 유력(遊歷)하여 부소산(扶蘇山: 송악산)의 왼쪽 골짜기에서 산신(山神)이 되었다. 그는 옛 아내를 잊지 못하여 강충(康忠)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 뒤 신라 풍수가인 감천팔원(監千八元)이라는 이가 부소압군(扶蘇押郡: 지금의 개성 남서쪽)에 와서 부소산의 형세를 살핀 다음, 강충에게 '만약 고을을 산남(山南)에 옮기고 소나무를 널리 심어 산의 바위들을 드러내지 않게 한다면 삼한(三韓)을 통합할 사람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강충은 군민들과 함께 산 남쪽에 옮겨 살면서 소나무를 널리 심고, 고을 이름을 송악(松岳)이라 하였다. 그는 드디어 이 고을의 상사찬(上沙粲)이 되었다"

 

또 다른 기록인 왕창근(王昌瑾)의 <경문(鏡文)>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어느해 뱀해(巳年)에 두 용이 서로 다른 쪽을 보고, 소나무에 몸을 숨겼기 때문에 고을 이름을 송악이라 했다.

 

송악이 정말로 이런 연유에서 붙여진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풍수와 관련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고려 태조를 신성시하려고, 꾸며 낸 설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소입', '부소산'의 부소가 풋소, 즉 소나무의 옛말이므로 송악은 같은 뜻으로 된, 이 지명의 후속 이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학자들 중에는 개성의 옛이름  '부소', '송악'을 백제 땅 부여의 부소산과 같은 계통으로 '밝'에 연원을 둔 것으로 보기도 한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728x90
728x90

'정보*공유 > 뫼이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미와 노고산(老姑山)  (0) 2006.11.03
풍수와 산이름 - 2편  (0) 2006.10.27
아차산(峨嵯山) - 2편  (0) 2006.10.22
아차산(峨嵯山) - 1편  (0) 2006.10.20
산이름 외의 용(龍)과 관련 한 지명들..  (0) 2006.10.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