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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뫼이름들~

할미와 노고산(老姑山)

by 마루금 2006. 11. 3.

 

 

'할미'와  노고산       

 

할미 관계 산이름 많다.

할아비, 할미(老姑)와 관련이 있을 듯한 산, 언덕 이름이 무척 많다. 노고산(老姑山), 노고단(老姑壇), 노룡봉(老龍峰), 노승산(老僧山), 노인덕(老人德), 노인봉(老人峰),노인산(老人山), 노인치(老人峙), 노자산(老子山), 두로봉(頭老峰) 등 노(老)자를 취한 것이 있는가 하면, 고미성(姑味城), 고사산(姑射山), 고성산(姑城山), 고암산(姑岩山), 고조산(姑鳥山)등 할미고(姑)자를 붙인 것이 있고, 한미성(漢渼城), 활산(活山, 할뫼=할미)처럼 '할미'의 음을 한자로 취음-취자한 것도 있다.

 

이 중에는 할미와 관련이 있어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할미와 전혀 관련 없이 붙여진 것도 있다. 그런데 지방의 도지(道誌)나 군지(郡誌)를 보면, 산 전체의 모양이나 봉우리가 할머니와 같아서 그렇다거나,  할머니가 쌓은 성이 있어서 그렇다거나,  할머니와 관련있는  전설이 있어 그렇다거나 하는 식으로 대개 할머니와 관련지어 이름 유래를 설명해 놓고 있다. 충북 청원군 부용면 등곡리의 노고성(老姑城)도 할머니와 관련한 전설을 안고 있다.

 

 

노고성(老姑城)의 한 전설

옛날에 이계산(里界山) 밑에 힘이 센 사람들만 있는 장사 가족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뿐 아니라 여자인 시어머니와 며느리까지 힘이 매우 세어 힘으로 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다 해내는 능력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나쁜 일에 힘을 많이 썼던 탓에 산신의 노여움을 사서 그 힘을 몽땅 빼앗기고, 그로 인해 홧병이 나서 두 사람 모두 죽었다. 이제 집에는 남편 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남았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는 불화가 잦았다. 그것이 어찌나 심했던지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불편을 크게 끼칠 지경이었다. 언쟁이 늘 끊이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싸움을 그치게 하기 위해 두 사람을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가 제수를 차려 놓고, 산신께 산제를 올리며, 해결 방안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였다.

 

이 때 산신이 나타나 그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중 어느 누구 하나가 집을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서로 집을 나갈 수 없다고 버티자 내기를 해서 지는 쪽이 스스로 집을 나가기로 하였다. 시합이 정해졌다. 시어머니는 노고산에 돌로 성을 쌓고, 며느리는 널빤지를 써서 문주산을 허물어 평지로 만든 후 물길을 내어 논밭을 많들어 놓기였다. 그리고 기한은 백 날로 정하였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는 가죽 앞치마에 돌을 날라 성을 쌓기 시작했고, 며느리는 박달산에서 박달나무를 베어 널빤지를 만들어 문주산의 흙을 파내려 평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한이 거의 되어 산신이 그 결과를 보니 며느리의 일이 많이 늦어 시어머니가 이길 것 같았다. 산신은 은근히 며느리에게 동정이 갔다. 기한이 되는 마지막 날째이었다. 아침에 보니 시어머니는 성돌 다섯 개만 놓으면 끝나게 돼 있었고, 며느리는 평지는 이룩했는데, 빗물을 끌어들일 큰 일이 남아 질 것이 확실했다.

 

산신은 시어머니가 돌을 나르는 가죽 앞치마의 실밥을 타 개어 놓고, 옻나무를 닿게 하여 앞치마를 꽤매는 시간과 몸에 옻이 올라 가려워서 긁는 시간을 더 허비하게 하였다. 시어머니는 그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일 완성 전에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결국 이 시합에서 며느리가 이겨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헤어져 진천 땅에 들어가 성을 쌓아 여생을 마쳤는데, 이렇게 해서 청원군 노고성(老姑城) 또는 노고산성란 이름의 산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앞치마를 만들 때 가위를 놓았던 자리에 가위 흔적이 있다고 하며, 시어머니가 옷이 오른 곳을 '옻나무골'(현도면 상산리)이라 하고, 며느리가 널판지를 만들기 위해 박달나무를 베어 온 산이 '박산(朴山: 연기군 동면 내관리), 널판지를 만든 곳이 '너더리'(內板), 아버지의 죽음에 아들이 목을 메어 죽은 곳을 '저목골'(현도면 상삼리)이라 하였다고 한다.할머니와 관련된 전설 지명은 무척 많다. 지명 전설은 인근의 지명들까지 함께 관련지어 한 이야기 안에 묶어 내용을 엮는 특징도 갖는다.

 

 

큰 산의 뜻이 '할미산'으로까지 
그러나 이름에 '할미'의 뜻을 내포했다고 해서 '할미' 전설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거나 할미와 어떤 면
으로든 관련이 있으라고 무조건 추측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말에 '큰', '넓은'의 의미로 '한'이란 말이 많이 씌어 왔다. '한숨', '한길', '한가위' 등의 '한'이 모두 크다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 땅이름에서는 이 '한'이 많이 씌어 왔슴을 알 수 있다.
 
* 큰 밭, 넓은 밭  : 한밭(大田)
* 큰 내, 넓은 내  : 한내(漢川 /大川 /汗乃 /寒溪)
* 큰(넓은) 마을   : 한말(漢村 /大村)
* 큰(넓은) 여울   : 한여울(漢灘 /大灘)
* 큰(넓은) 다리   : 한다리(閑橋 /大橋)
* 큰(깊은) 골짜기: 閑谷 /大谷
* 큰(높은) 뫼     : 한뫼(漢渼 / 漢山 /大美)

 

뫼가 크면 한뫼요, 작으면 솔뫼(살미)이다. 그런데 '한뫼'는 시대에 따라 말하는 이의 발음 습관에 따라 꼭 한뫼일 수가 없다. '한메'(한매), '한미'일 수도 있고, '할메'(할매), '할미'의 발음까지도 갈 수가 있다. 큰 산의 뜻인 한메, 한미, 할메, 할미 등은 묘하게도 할머니의 준말인 할미와 같거나 비슷하여 이것이 한자식 지명으로 바뀌면서 노고(老姑)가 되고, 마고(麻姑)로도 된 예가 많다.

 

할미의 본디말인 할머니도 원래는 '한어머니'였다. 한어머니는 크다는 뜻의 '한'이 어머니라는 말 앞에붙어 의미상으로는  원래 '큰 어머니'였다. 백모(伯母)라는 뜻의 큰어머니가 아니라, 집안의 웃어른 어머니로서의 '큰 어머니) 였던 것이다. ---

 

특히 우리 고대(古代)의 모계사회에서는 할머니(한어머니)는 집안의 중심 어른이랄 수 있었다. '할아버지'도 큰아버지(伯父가 아닌)란 뜻의 한아버지의 변한 말이다. '한'은 높은, 웃(上)의 뜻을 가진말로 영어로의 (grand father)나 (grand mother)와도 잘 대응되는 조어 구조인 것이다.

 

한(어)머니가 할머니로 변한 것과 같이 한뫼가 할뫼(할미)로 변하는 것은 발음변화의 관행상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름 없이 불리던 많은 산들 중에 큰 산이라 하여 한뫼, 한미 등으로 불린 것이 많았을 것이고,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어느 것은 대산(大山)도 되고, 한산(漢山/韓山)도 됐을 것이고, 또 어떤 것은 대미(大美)도 되고, 한미(漢美)도 되고, 할미로 되었다가 노고로 되었을 것이다.

 

 

산을 풍요를 낳는 어머니로 여겨

산이름 중에 할미와 관련한 산이름들이 많아진 또 하나의 이유로는 산이 오랜 옛날부터 인간에게 생산과 풍요를 가져 준다는 이른바 '영원의 어머니'로서 의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여신의 교합에서 엳어지는 산물이 물질적 부의 바탕을 마련해 준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다신교에서는 산을 원래 여신산이라 했다. 지금도 더러 산신각 안에서 백발의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옆에 호랑이를 꿇어 않히고, 또 부인 몇을 등 뒤에 거느린 그 산신상은 부권사회가 형성된 후에 이루어진 흔적들이다.

 

티베트 쪽에서는 에베레스트를 '초모롱마' 즉 '영원한 여신의 산'이란 뜻으로 부른다. 지리산 산신은 성모대왕(聖母大王)이고, 속리산은 대자재왕(大自在王)인데 모두 여신들이다. 민속적 전승에 따르면 성모대왕은 백무촌(百巫村) 법우화상(法祐和尙)의 아내가 된다. 대자재왕에게는 속리산 기슭의 법주사 대중들이 이른 봄에 나무로 깎아 만든 남근을 둘러 메고 지신을 밟으면서 치밀어 올리는 시늉의 굿판을 벌임으로서 혼배(婚配)를 시켰는데 이러한 민간 신앙의 행사는 모두 여신의 교합으로 이 일대에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글/지명연구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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