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와 마니산
죽지랑의 일화
신라 초기에 술종(述宗)이라는 행정관이 삭주 도독사(朔州 都督使)가 되어서 임지로 가게 되었다. 때마침 삼한에 병란이 일어 그는 기병 3천의 호송을 받으며, 죽지령(지금의 죽령)을 넘게 되었다. 고개에 이르니 한 거사가 고갯길을 닦고 있어 이를 칭찬하니, 거사도 역시 술종의 혁혁함을 좋게 여겨 마음이 통해 친한 사이가 되었다.
술종이 임지에 도착한지 한 달쯤 되던 날 밤의 꿈에 죽지령에서 만났던 거사가 방으로 들어 오는것을 보았는데, 역시 그의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다. 거사의 신변에 어떤 일이 있을 듯 싶어 사람을 보내어 알아 보니 거사가 죽은지 며칠이 되었다는 것이다. 날수를 따져 보니 거사가 죽은 날이 바로 아내와 같은 꿈을 꾸던 날이었다. 술종은 군사들을 보내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거사를 장사 지내고, 돌미륵 하나를 세웠다. 술종의 아내는 그 날부터 태기가 있어 달이 찬 후에 아들을 낳았다. 술종은 이 아이가 틀림없이 그 거사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여기고, 그를 만났던 죽지령의 지명을 따서 죽지(竹旨)라고 이름 지었다. 죽지는 자라서 화랑이 되고, 벼슬에 나아가 김유신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문왕 등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 시켰다.
제32대 효소왕 때 죽만랑(竹曼郞)의 낭도로 있던 득오(得烏)는 그의 늙어감을 아쉬워하며 노래를 지으니, 이것이 '간 봄 그리매 . . .로 시작되는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이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효소왕'조에 나온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술종', '죽지령', '죽지(랑), '죽만'(랑) 등의 한자 종(宗), 지(旨) 등이 모두 '마로'와 관련되기에, '마로'와 관련된 이 글의 글머리로 삼은 것이다.
'마로'는 '높음'을 뜻해
(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적색 처리 하였슴)
한자가 보편화하지 않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사물의 이름이건 사람의 이름이건 당시의 우리말을 바탕으로 한 고유명사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을 제대로 옮겨 적을 우리글이 없어 후세에 한자로 옷이 입혀진 채 역사책에 올라야 했다.
'발간뉘'(밝은누리)의 박혁거세(朴赫居世)가 그렇고, '누리'의 유리(儒理/琉璃), 노례(弩禮),유례(儒禮)가 그렇다. 또 '누리밝'의 유리명(琉璃明), 누리하의 시려개(始閭개), 녯더해(옛터)의 석탈해(昔脫解), '웃치'의 을지(乙支) 등 한글이 당시부터 있었다면 그대로 전해 올 순우리말 이름들이 모두 취음/의역에 의해 기록되어 이 분야 학자들의 유추가 없이는 그 뜻을 알기가 몹시 어렵게 돼 버린 것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술종은 '삶마라(술마로=수리마로)의 한자 표기인데, 신라 초/중기의 인물 중에는 이처럼 '마라'를 '종'(宗)으로 취한 것이 많다. '마라'는 주로 '마로'로 불린 듯한데, 당시에는 이말이 '으뜸' 또는 '높음'의 뜻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인칭접미사처럼 붙어왔다. 이 경우 '마로'는 앞의 '술종'처럼 '종'(宗)으로 많아 취해졌다.
'찰마라'(첫마로)의 원종(原宗: 법흥왕), '싯마라'(싯마로)의 삼맥종(三麥宗 = 深麥宗: 진흥왕)을 비롯하여 황종(荒宗: 진흥왕 때), 이종(伊宗: 지증왕 때), 근종(近宗: 일성왕 때), 윤종(允宗:내해왕 때), 선종(宣宗: 성덕왕 때), 영종(永宗: 효종왕 때),만종(萬宗: 경덕왕 때), 양종(亮宗:헌덕왕때), 수종(秀宗: 헌덕왕 때) 등이 모두 그 예이다. '마라'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마로, 마루, 마리,모로, 모루. 모로 등 여러 갈래로 달리 불리면서 조금씩 뜻의 분화현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마루'(꼭대기: 산마루, 등성마루, 고개마루 등), '머리'(頭), '뫼'(산), '마리'(頭,首: 동물의 마리수를 셀 때의 단위)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 말들은 원래 '말'이라는 한 뿌리 말에서 파생 분화하여 친척 무리를 이룬 것이다. '마루'(廳:청,抹樓: 말루)도 신라 때에 높은 곳에서 나라를 다스렸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고, 지방사투리의 '마룻소'(아주 큰 소)의 마루도 '말'과 관련이 있다.
자기 부인을 부를 때 쓰는 마누라는 원래 오랜 옛날에 노비가 상전을 부를 때 쓰던 말인 마라하의 변한 말로, 궁중에서 상감마노라, 곤전마노라 식으로 임금이나 왕비를 아주 높여 부르던 말이었던 것이다. 마라하의 '하'는 '선열하'(선열이시여) 식의 높임말 부름토(존칭호격조사)이다.
우리말의 평상적인 음 변천 과정에 따르면 '말'의 갈래는 대충 다음과 같이 된다.
말 마리 (頭/首)
마로 마루 (宗)
몰 모로 모루
모리 모이 뫼(山) 머리(頭)
물 무루 (*만주어의 mulu : 山)
무레 (*일본어의 mule : 山)
일본으로도 건너간 우리말 '마로'
'말'에 연유하는 말은 만주나 일본에도 있다. 만주어에는 '산'의 뜻인 '마'(ma), '무루'(mulu)가 있고,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헤기시노무레(후支山), 고시노무레(古沙山), 누수리노무레(怒愛利之山:노애이지산), 니사리노무레(任叔利山) 등, 역시 '산' 뜻인 '무레'가 있다. '무레'는 백제의 말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산이름뿐 아니라, 일본에는 역시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무로'가 '높고 성서러움'을 뜻하여 궁(宮)이나 신사(神社), 큰 방을 가르키는 말이 되었고, 고관/문인들의 이름(또는 야명)에도 아베노 니카마로(阿位仲麻宮), 우시와카마루(牛若丸:우약환)와 같이 마로, 마루가 붙여졌다.
'마로'의 뜻을 취한 한자식 이름들
'마로'는 신라 때에 한자로 '부'(夫)가 되기도 했다. 신라 때의 이종(伊宗)은 '이사부'(異斯夫)로도 나오는데, '이은(계승한) 어른'의 뜻인 '닛(아래)마라'이고, 황종(荒宗)으로도 나오는 '거칠부'(居柒夫)는 '거칠(용감한) 어른'의 뜻인 '거찰마라' 이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아음부(阿音夫:조분왕 때), 양부(良夫: 미추왕 때), 비조부(比助夫: 법흥왕 때), 노부(奴夫: 진흥왕 때), 등이나 진흥왕 순수비에 보이는 죽부(竹夫), 심맥부(心麥夫), 비지부(比旨夫) 등의 부(夫)도 모두 '마로'를 취한 이름들이다. 부(夫)는 하늘천(天)자 위에 점(')을 하나 올려 놓은 꼴로, '하늘보다 높음'을 나타내고 있다. '지'(旨)도 '마로'의 의역으로 땅이름에 많이 보인다.
고 양주동 박사는 죽지령(竹旨嶺)과 죽지랑(竹旨郞)의 '죽지'는 '대말'이고, 모죽지랑가를 지은 득오의 직속 화랑인 죽만랑(竹曼郞)도 역시 '말' 무리 지명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 된 이름이라고 했다.
대말+郞=대말郞 >대맛랑 >대만랑 >죽(竹)만랑 >竹曼郞
유사나 서기에 나오는 벌지지(伐知旨)와 북구지(北龜旨)도 각각 '발디마라'(벌치마로)와 '뒷거블마로'(뒷검마로)로 유추하고 있다. 신라의 박제상(朴堤上)은 '밝터말'로, '상'자의 의역이 되었다. 또 강수(强首: 쇠말)처럼 '수'(首)자를 취하기도 했고, 가야 김수로왕의 '수로'(首露)처럼 '머리'의 한자인 '수'(首)와 '마로'를 함께 취한 경우도 있다.
'마로'는 삼국시대에 인명, 관명 등에서 한자로 마리(摩離), 마루(馬婁), 마립(麻立), 막리(莫離)등으로 기사(記寫)되었다. 신라의 왕호 중에 마립간은 '마라간'(으뜸 어른의 뜻)이고, 고구려 벼슬 중의 막리지는 '마라차'(높은 이의 뜻)이다. 고구려의 인명이나 관명 중에 '웃치', '마라차'등 '치'가 많이 들어간 것을 보면 당시에는 이것이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붙이는 접미사였던 것같다. 지금도 '벼슬아치'. '장사아치' 등 '사람'의 뜻으로 '치'가 쓰이고 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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