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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변산 의상봉(부안) .... 2022.07.24

by 마루금 2022. 7. 24.

산행날씨 : 23.4~26.8℃, 흐림과 약한 비 반복

산행코스 : 청림마을~새재~뱀사골~삼각봉(272.9m)~포갠바위~부사의 방~원효굴~구시골~새재~청림마을

산행거리 : 7.46km

산행시간 : 5시간 56분

산행인원 : 자유팀 5명

능가산 의상봉(부안).gpx
0.04MB

 

 

 

 

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와 하서면 백련리 경계에 위치한 의상봉을 다녀왔다. 의상봉은 변산의 최고봉이다. 의상봉 동남쪽 절벽에 진표율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오는 '불사의 방'과 '원효굴'을 찾아서 돌아보는 것이 이번 산행의 핵심이었으며, 간헐적으로 내린 비로 인해 우중산행으로 진행되었다. 

 

 

 

교통편은 지인의 차량을 이용, 청림 마을에 주차를 해두고 산행 시작

 

 

 

 

새재

 

불교 유적지인 '불사의 방'과 '원효굴'로 가기 위해서는 새재에서 부득이 금줄을 넘어 비탐지로 진입해야 한다.

 

계곡 삼거리에서 뱀사골로 좌틀 

 

뱀사골에서 올려다본 삼각봉

 

꽝꽝나무 군락지가 있다는데 ??

 

삼각봉 좌측 편 급비탈로 계곡치기를 진행

 

능선으로 올라서 삼각봉으로 진행

 

 

삼각봉(272.9m)

 

삼각봉에서 유턴

 

 

부안호(1996년 12월 완공)

 

 

뒤돌아본 삼각봉

 

삼각봉 동영상

 

 

'포갠 바위'라 불리는 의상봉 능선의 명물

 

 

 

전방에 의상봉이 있으나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의상봉(義湘峯/ 495.7m)

변산(邊山)은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 불렸고,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의상이라는 명칭은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가 이곳에 의상사라는 절을 세웠다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고 전해지는데 산 동쪽 기슭에 의상암 터가 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안에 “의상암(義湘庵)은 신라의 승려 의상이 살던 곳이다." 김극기(金克己, 1150~1204)의 시에 ‘기묘한 일만 겹 바위 높은 하늘에 비껴 있어 위로 구름 끝까지 올라가니 길이 비로소 끊어졌다. 홀연히 의상대사의 여운 있음이 기쁘고, 하늘에 닿은 옛 잣나무 어둠 속 바람에 읊조린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 허진동(許震童, 1525~1610)이 의상봉에 올라 지은 시에는 마천대(摩天臺)라는 다른 지명도 등장한다. 지형도에 기상봉으로 표기된 것은 조선지형도 부안에 기재된 의상봉(倚上峯)에서 ‘의지할 의(倚)’ 자를 ‘험악할 기(崎)’ 자로 잘못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의상봉 정상은 군사시설 있어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다.

 

불사의 방으로 하강 지점의 소나무

 

▼ 불사의 방은 능선에서 30여 m 아래의 절벽에 위치해 있다. 자일을 붙잡고 수직벽을 하강해야 하는데 아래쪽은 약간 오버행 끼가 있어 힘이 빠지면 자칫 줄을 놓칠 수가 있으므로 안전을 위해 확보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기존의  밧줄이 설치돼 있으나 믿음이 가질 않아서 준비해 간 자일을 따로 설치하여 아래로 내려섰다. 

 

 

아래위가 모두 천 길 만 길 낭떠러지다. 산죽밭 밴드를 따라 부사의 방으로 가는 좁은 길이 나있다.

 

 

 

건축물이 설치되었던 흔적

 

바위 벽에 아직도 남아있는 쇠못 자국

 

▼ 불사의 방

진표율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의상봉 동남쪽 절벽에 위치한 불사의 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불사의 방장(不思議方丈)은 신라 때 승려 진표가 살던 곳으로 100척 높이의 나무 사다리가 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면 곧 방장에 이를 수 있고, 그 아래는 모두 무시무시한 골짜기이며, 쇠줄로 그 집을 잡아당겨서 바위에 못질하였다. 세상에서는 바다의 용이 만든 것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사의 방'을 구경하고 나서는 내려왔던 절벽에 설치해논 자일을 붙잡고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한다.

 

원효굴 입구를 지나쳐 묘지까지 왔다가 원효굴로 가기 위해 다시 뒤로 빠꾸 

 

원효굴

 

 

원효굴에서 유턴하여 전주이씨 묘를 지나간다.

 

짧은 너덜지대

 

얼굴만 빼꼼히 드러나는 산죽밭을 지나서 322.2봉 직전의 안부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을 찾지 못해 잠시 헤매었다.

 

구시골 계곡

 

폭포 1 상류

 

폭포 1에 자일을 설치해서 하강

 

폭포 1

 

 

 

폭포 2

 

다시 되돌아 나온 새재

 

 

원효와 진표, 진묵 등 불가의 큰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비교적 근세에는 증산교의 강일순, 원불교의 소태산 등이 월명암에서 득도, 사상의 뼈대를 세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길지임이 분명하고, 심지어는 정감록 등에서도 이곳 변산을 생거부안이라 하여 길지로 내 세우고 있으니 곳곳에 명당이 산재하는 듯,  산자락 여기저기 괜찮은 곳이라 여겨지는 곳엔 어김없이 묘가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 번에 걸쳐 내외변산을 돌아보지만 절대로 싫증 나지 않고, 늘 새롭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만큼 살만한 곳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 취월당 유람록에서 발췌 >

 

 

 

원점산행으로 마쳤다.

참가:천둥,장고문,불국사,아누리,마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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