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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천마산~견두산(구례)...........2019.03.24

by 마루금 2019. 3. 25.

산행날씨 : -3.9 ~ 12.1℃  맑음

산행코스 : 고산터널~천마산(658.2m)~상무봉(639.8m)~망루터~견두산(803.6m)~계척봉(775.1m)-자귀나무쉼터~밤재~산수유 시목지(계척마을)

행거리 : 14.4km

산행시간 : 4시간 15분

산행인원 : 산악회따라 (자유팀 4명) 

천마산~견두산(구례).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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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봄꽃 만끽을 위해 산행지를 남쪽으로 잡았다. 대상은 전라남도 구례의 천마산(天馬山) & 견두산(犬頭山)이다. 지리산 만복대에서 갈라져나온 견두지맥 산줄기로서 구례 쪽의 산 아랫자락에는 산수유 마을로 유명한 시랑, 현천, 연관, 원동, 계척 등의 마을이 포진해 있다. 산수유 꽃이 만개할 때면, 산행을 마치고 나서 노랗게 물든 마을 풍경을 한껏 감상할 수 있으며,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에는 붉게 물든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은 고산터널 입구에서 시작하여 천마산과 견두산을 거쳐 밤재로 내려서는 것으로 마치고, 밤재에서 산수유 마을까지는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서 이어갔다.

 

이동통신 중계탑이 설치된 천마산 정상 ~

▼ 천마산(天馬山/ 653.8m) ~
둔사리 고산터널 부근에 있으며, 남원시 수지면 유암리,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구례군 산동면 둔사리 등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천마가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형국'인 天馬時風(천마시풍)이란 명당이 산 중턱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전한다. 정상에 설치된 전망테크에서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할 수 있으며, 새해 해맞이 조망이 좋아서 해맞이 터 표지석이 제단 위에 놓여있다. 

 

지리산 서북릉 ~

천마산에서

부터 밤재까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가르는 도계를 따르게 된다

 

서리내재 ~

서리내재 공터(헬기장?) ~

상무봉(639.8m) ~

망루터 ~
이정표에 망루터라 표기돼 있다. 5평 남짓한 땅에 무릎 높이의 돌이 각형석축으로 담처럼 쌓여 있다. 돌담 둘레는 어림잡아 10여m. 망루터 가운데 볼록 튀어나온 바위에 천안 전씨 유허(天安全氏遺墟)라는 붉은 글씨가 적혀있다. 망루터 입구에는 세거무은동(世居霧蔭洞)이라 음각돼 있다. 구례군 마을 유래사에 조선 선조 때 천안 사람 전수현 내외가 왜란을 피하려고 둔산치에 성을 쌓고 살았단다. 이 일대는 안개가 끼면 10일 이상 사람을 분간 못할 정도로 자욱했다. 그래서 이곳을 '안개 속에 숨었다'고 하여 '무은동(霧隱洞)'이라 불렀다. 산 아래 하무마을도 '아래 안개마을'이란 뜻이다.

 

둔사재 ~

수지유암리 갈림길 ~

헬기장 ~

견두산이 목전에 ~

견두산(犬頭山/ 774m) ~
산동면 계천리와 남원시 수지면 고평리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산의 동쪽에서 발원한 하천이 대두천에 합류한 후 서시천이 된다. 옛날에는 범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호두산(虎頭山/ 범머리산)이라고 하였는데,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일이 많아, 남원읍내에 호석을 세우고, 견두산으로 개명한 후 호환이 없어졌다는 유래가 있다. 또한, 산봉우리가 개머리와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유래도 전한다.'한국의 산지'에 의하면 견두산은 견수산(犬首山)으로도 기록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남원)에 "견수산(犬首山)은 부의 남쪽 45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후 동여비고(전라도), 용성지, 대동여지도(18첩 4면), 조선환여승람 등의 지리지와 고지도에도 견수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여지도서(남원지도), 1872년지방지도, 조선지형도(구례) 등에 견두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견수산과 견두산을 혼용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산 아랫마을인 연관에 연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견두산 정상의 묘 ~

지리산 서북릉 ~

산악회 주최측에서 산행코스 결정에 대한 일관성이 없었다. 까페의 사전 산행공지에는 고산터널에서 밤재까지라는 코스로 게재되었으나 당일 아침에 버스로 이동하면서 차내 안내방송을 통해 코스를 변경한다는 것이다. 코스를 절반으로 줄여 견두산까지만 산행을 진행하고, 현천마을로 하산해서 산수유 마을을 더 돌아보라는 것, 그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던 터였다. 들머리인 고산터널 입구에 도착해서 산행을 시작, 견두산까지 부지런히 올랐다. 견두산 정상에 머무르던 중 마침 가까운 지인께서 시간이 충분하니 밤재로 돌아서 오라고 살짝 귀뜀을 해준다. 이에 마음이 동해 견두산 정상에서 남은 거리 대비 소요시간을 분석해봤다. 하산 약속시간까지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즉석에서 자유팀을 구성, 정통파 인원 4명이 서로 합세하여 밤재로 출발, 본래의 공지 내용대로 완주를 마치고, 무리 없이 정해진 시간 내에 산악회 버스에 올랐다. 

 

역쉬,,, 밤재를 향해 출발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견두산 후면으로 내려서자 견두산 정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멋진 암봉이 나타났다 ~

 

암봉에 올라서 뒤돌아본 견두산 ~

가야할 계척봉 ~

계척봉 정상 ~

계척봉 정상의 삼각점 ~

견두지맥(犬頭支脈) ~
백두대간 상의 지리산 만복대 직전에서 분기하여 동북쪽, 동남쪽 그리고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전남 구례군 구례읍 신월리에서 섬진강으로 그 여맥을 가라앉히는 도상거리 약 36.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만복대를 기점으로 영제봉(1048m), 견두산(774.7m), 상무봉(645m), 천마산(653.8m), 깃대봉(690.8m), 도장봉(635m), 가동봉(497.9m), 형제봉(621.7m), 천왕봉(695.0m), 수양봉(615m), 갈미봉(494.7m), 깃대봉(241.7m), 병방산(163m) 등의 산봉을 거치게 된다. 견두지맥 북쪽과 서쪽에는 앞냇물, 남원천, 요천, 신덕천, 수지천 등이 섬진강으로 흐르며, 지맥 남쪽과 동쪽에는 계월천, 음천, 둔기천, 신도천, 서시천, 백련천 등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헬기장 ~

산하쉼터 ~

남원시 조망 ~

밤재 ~

밤재(栗峙) ~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구례기사 107쪽, 1936년 8월 5일 서춘(徐椿)의 '지리산 통로 구례에서'라는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로부터 밤재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요해(要害)가 둘이니 잔수진(潺水津), 미초율현(未草栗峴)이다.(17집-구례실록 36쪽, 세종실록지리지 기록) 남원 구례 간은 약 백여 리로서 소요시간은 1시간 반이다. 두 지역 간에 큰 재가 있는데, 그 이름을 율치(栗峙, 속칭 밤재)라고 한다. 이 재는 상당히 크고 험준한 재다. 이 재를 오르내리는 자동차도로는 실로 양장구곡(羊腸九曲)이다. 가면 갈수록 커브 또 커브요, 핸들을 조금만 잘못 틀어도 자동차는 곧 탈선하여 천인절벽(千?絶壁)으로 추락될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한 굽이굽이를 돌고 또 돌아서 오르내리되 평지를 질주하는 것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하는 운전수 조종술에는 탄복할 수 밖에 없다. 율치는 상당히 큰 재다. 모르기는 모르되 해발 삼천 척 가량은 역력하지 않을까 싶다. 절정에서 내려다보면 사면 수백 리의 대소 산야가 다 시야에 들어오고, 북으로 교룡상성을 등진 남원읍이 가물가물 내려다보인다. 율치(栗峙)라는 ‘峙’자를 보고 생각나는 말이거니와 이름에 ‘峙’자가 붙은 재는 어디나 상당히 높고 험준한 고개가 아닌가 한다. 이런 의문을 품고 ‘峙’자를 자전에서 찾아보니 준치흘립(竣峙屹立)이라고 주(註)하고, ‘산 오똑할 치’라고 상세히 풀어놓았음을 본다. 이것을 본즉 ‘峙’자는 대개 높고 경사가 급한 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밤재 ~

밤재에서부터 산수유 시목지가 있는 계척마을까지는 지리산둘레길을 따라간다 ~

산수유마을에서 산행 끝 ~

자유팀4명: 천둥, 달콤, 한돌, 마루금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산수유 마을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천마산~견두산(구례).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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