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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성마령~정개산 (정선/평창) ........ 2015.05.17

by 마루금 2015. 5. 17.

산행날씨 : 6.4 ~ 25.1℃,  맑음 

산행코스 : 행매동 ~ 정승구덩이 ~ 행매원(정자/우물) ~ 성마령 ~ 966.3봉 ~ 950.4봉 ~ 912.8봉 ~ 작은성마령~ 977.4봉 ~ 893.1봉 ~ 835.6봉 ~ 818.8봉(비행기재 갈림길) ~ 소디농장 ~ 정개산(849.3m) ~ 평안1교 

산행거리 : GPS거리 12.42Km   

산행시간 : 7시간 8분

산행인원 : 산악회따라 ~


이번 코스는 산행시작 지점인 정선 행매동에서 성마령까지만 등로가 그나마 잘 정비되어 있었고, 그 이후부터 정개산을 거쳐서 미탄면 평안1교를 내려설 때까지 등로는 전혀 형성돼 있지 않았다. 다리는 줄딸기가 줄기차게 휘감아서 무릎 아래는 아예 줄침을 맞으면서 걸었고,푹푹 빠지는 낙엽 속 나뭇가지는 심심하면 발을 걸어서 진로를 방해를 했다. 막대기에 발이 걸려서 몇 번이나 꼬나박았는지 모른다. 앞으로 다이빙해서 쳐박힐뻔 하다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화를 면하기도 부지기수다.그리고 정개산 오르막에서는 땅이 빠딱 일어서서 코가 닿을듯 가팔랐다.정개산 하산길도 보통이 아니었다.초반엔 수직 하강이더니 바닥까지 거의 내려와서는 잡목덤불이 정글을 이루어 끝까지 괴롭혔다.그러나 개척산행 수준으로 비록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남긴 것 하나는 있다. "정승구덩이"를 본 것, 세계 유일의 구뎅이 묘지라는 것,이번 산행 중 최고 수확이었다.     

성마령_정개산(정선_평창).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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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

정선읍 용탄리 행매동 마을까지 승합차로 진입이 가능하지만 버스로는 곤란하다. 유기농 블루베리농장 입구에서 차량 유턴이 가능하며, 여기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이후 성마령까지 임도로 연결되고, 이정표 안내가 확실하다.

 

차단기 앞에서 좌측으로 진행 ~

영구암 ~ 

정승(政承) 구덩이 ~
정선읍 용탄리 행매동 성마령 산중턱에 위치한 직경 약 30m, 깊이 10m쯤 움푹 꺼져 내린 구덩이에 묘가 있다. 
이 묘는 고려말 충신이자 정선아라리의 시원을 낳게 한 칠현 중의 한 사람인 전오륜 할아버지인 정선 전씨 27세 휘(諱) '우화' 공인 정승 전채명의 분묘이다. 그는 당시 이성계에 불복해 심신산중에 은거하고자 손자를 데리고 이곳 정선을 찿아오던 중 노구의 몸을 이끌고 험난한 성마령을 넘으면서 행매동에 잠시 머물려고했지만 결국 병석에 누워 돌아가시고 말았다. 며칠 뒤 맏상주 부인이 허기에 지쳐 길에 쓰러져 있는 한 노승을 목격하고 가난한 살림이지만 아사 직전에 있는 스님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신의 젖을 종기에 짜 담아 노승에게 주었다. 기운을 차린 노승은 때마침 초상이라 보은의 대가로 지금의 묘지를 정해주면서 암반이 나오면 일구지 말고 암반 위에 그대로 안장을 하면 후손들이 높고 귀하게 될 것이며,  만백성의 추앙을 받을 정승도 나올 것이라며,  내가 저 성마령을 넘거든 하관하도록 당부하고 그 곳을 떠났다. 그런데 성미 급한 막내동생이 그 암반을 일구어 내어 그 속에 있던 욍벌(왕 바드레) 세 마리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한 마리는 왕대곡 쪽으로, 한 마리는 변방산 쪽으로, 나머지 한 마리는 성마령 쪽으로 날아가 고개를 넘던 노승을 쏘아 즉사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우화공을 안장한 묘소는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주변이 내려 앉아 웅덩이가 되어버렸고,  묘소 옆에 난데없는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자리하였다.  후손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영구암(靈龜岩)이라 하였고, 이 묘소를 전 정승(全 政承)구덩이라 불렀으며, 장마에도 전혀 물이 고이는 법이 없다고 한다.   
 

세계 유일의 구뎅이 안에 있는 묘 ~

물이 고이면 연못이 될 건데,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물이 고이는 일이 절대 없다고 하니, 도대체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노무 구덩이 밑바닥이 소쿠리로 만들어졌나 ??

 

구뎅이 바깥에 있는 묘 ~

가리왕산으로 연결되는  임도 ~

▼ 행매원(行邁院) ~

일제 때 비행기재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정선의 관문인 성마령을 넘는 길손들을 위한 숙소가 섰던 자리다. 당시 정선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벽파역을 시발점으로 성마령을 넘어 방림, 운교역을 거쳐 원주, 여주, 이천으로 다녀야 했으므로 많은 길손들로 붐볐으며, 행매원은 이들의 안식처이자 유숙처로  지금은 '원터'라는 지명이 전해져 온다.  지금 이 성마령 길의 한갓진 고요 속에서  많은 길손들로 붐볐다는 말을  어떻게 실감할 수 있을까? 행매원 지리에 쉼터가 대신 들어 앉았다.

 

성마령(星摩嶺) ~

해발 1,560m로 치솟은 가리왕산은 남으로 큰 줄기를 내리뻗으며 정선의 서쪽 옛 한양 방면을 가로막았다. 이 두툼하고도 높직한 산줄기를 가로질러 넘는 여러 가닥 고갯길이 생겼으니, 마항치, 벽파령, 마전치, 동무지치 등과 더불어 성마령이 그것이다. 짧은 굽이들을 생략하고 넓게 보면 성마령은 정선과 평창을 잇는 최단거리 지름길이다. 조선조 내내 이 고갯길이 정선을 넘나드는 가장 큰 길이었다고 정선문화원은 밝힌다.

 

(2006.10.27. 경향신문)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송재(松齋) 이우(李堣, 1469~1517)가 쓴 '관동행록(關東行錄)'에 성마령이라는 시가 남았다고 한다. 그는 늦가을의 해거름에 고개를 넘었다. 우리의 행적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평창 동쪽에 큰 고개 솟았는데 / 고갯마루에서 가히 별을 만질 수 있구나 / 말발굽은 소나무 가지 끝을 타고 오르고 / 하늘의 은하수는 계류와 같이 뻗쳤도다 / 바람에 시달린 나무는 일찌감치 잎 떨구고 / 구름과 맞닿아 눈보라조차 덮어썼구나 / 골짜기에는 해거름인가 하면 어느덧 밤이 닥치고 / 고개 돌려 바라보니 걸어 온 길 아득하다

 

'곧베루'와 '꽃벼루' ~

산이 많고 골이 깊어 들어올 때는 울지만, 오래 살다 보면 정이 들고 아늑해서 웃고 산다는 고장이 있다. 연암 박지원이 그의 작품 <양반전>에도 산간벽지로 그린 정선이다. 그래서 정선 읍내 중심에서 하늘을 보니 하늘의 넓이가 겨우 15평이라지 않는가. 일제 때 철도 부설로 언덕을 깎아 한두 평 더 넓어 보인다는 우스겟 소리도 있다.
 
아질아질 성마령(星摩嶺) / 야속하다 관음베루 / 십년 간들 어이 가리.

 

이 곳 정선 고을에 부임해 오는 현감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산굽잇길을 돌다 보면 절로 한숨이 났다. 그 현감을 따라 오던 부인마저 이렇게 탄식을 했단다.

 

 아질아질 꽃베루 / 지루하다 성마령 / 지옥같은 이 정선을 / 누굴 따라 여기 왔나?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이 곳에 들어와 선정을 베풀었다는 오(吳)현감의 부인이 꽃베루와 성마령을 넘으며 지루함을 달래느라 불렀다는 이 노래가 정선아리랑의 하나로 남았으니 그 민요가 왜 구슬픈지를 알만도 하다.  오현감과 함께 가마를 타고 꽃베루 재를 넘던 부인이 너무나 지루해 탄식을 하자, 그것을 보다 못한 현감이 나졸들에게 물었다.

 

정선 읍내가 아직 멀었느냐? /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 것을 알지만 나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 조금만 더 가시면 되옵니다. / 그러나 한참을 더 가도 아직까지 깊은 산골자기. / 저 산베루만 돌아들면 되겠지? / 산베루를 돌아들어도 계속 벼룻길. / 현감은 아예 머리를 밖에 내놓지 않고 물었다. / 아직 산베루는 안 끝났나? / 예, 산베루는 곧 끝나요" / 이젠 현감이 묻기도 전에 나졸들은 계속 외쳐댄다./ 곧 베루가 끝나요" / 곧 베루가 끝나요"

 

이렇게 해서 '곧베루'란 땅이름이 나오고, 이것이 '꼿베루', '꽃벼루'(花峴)가 되어 지금의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한 지명을 이룬다. '베루'는 '벼랑'이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다. 이 곳에선 '산굽잇길', '산기슭 길'의 뜻으로도 쓰인다. '곧베루'의 '곧'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는 뜻의 강원도 방언이기도 해서, 곧베루는 '매우 긴 산굽잇길'의 뜻이 되기도 하니,  이 뜻을  잘 모르는 현감에게  일부러 이 말을 써서 변명할 소지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때 정선 제일의 관문이었다는 성마령의 정확한 위치는 971m봉이 아니라 행매골(원터)에서 미탄면 삼막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1,179m봉 오르기 전 안부다. (월간 산 2000년 8월호)

 

작은 성마령 ~

작은성마령을 지나서 임도를 만났다. 직진으로 능선을 뚫고 오르기에는 길이 너무 험악해서 임도 쪽으로 절로 발길이 옮겨진다. 산사면에는 현호색이 온통 노랑물을 들여 눈을 호강시켜 주었다. 삼거리를 만나 좌측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산사면을 우회해서 본능선에 올라 붙었다.      

 

동굴도 만나고 ~

목장(소디농장) 쪽문 ~ 

목장 안쪽을 거쳐서 ~

바로 앞은 정개산 ~

목장에서 철망을 타고 넘어 나와야 한다. 벌거므리한 줄에는 전기가 흐르므로 손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능선을 따라 안부에 이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후부터 정개산 정상까지 땅이 벌떡 일어선다. 

 

정개산은 봉우리가 두 개인데, 높이가 같다. 대략 50m쯤 떨어진 간격이다.

 

정개산 첫 봉 ~

정개산 정상 ~

멧돼지 똥 ~

하산길 ~

마의 구간을 빠져나왔다, 차단기 앞 날머리 ~

일행 중 산중에서 스맛뽄을 분실, 그래서 산행시간이 1시간쯤 늘어났다. 산행거리도 500m쯤 더 늘어났다. 하도 안오길레 큰 거 보는 줄 알았는데, 스맛뽄 찿으러 갔다고, 그래서 찿기 쉽도록 내 뽄으로 계속 신호를 보내줬다. 하필이면 그 때사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지 않았던 게 참 다행인지라 낙옆 속 꼭꼭 숨박꼭질 하고 있던 스맛뽄이 노래를 참지 못해 결국 주인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 평소 때면 산행 중 늘상 뱅기 모드로 두다가 오늘따라 성마령에서 하산 중 길을 잃었다는 칭구 통화를 마치고, 실수로 뱅기 모드로 전환하지 못했던 것,  고야말로 ~ 그래서 이럴 때는 실수도 그리 과히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성마령_정개산(정선_평창).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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