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산길따라~

천보산~칠보산(천보지맥) .... 2015.05.05

by 마루금 2015. 5. 5.

산행날씨 : 8.3 ~ 19.9℃,  맑음 

산행코스 :  착한낙지~약수터~소림사~의정부 천보산(335.5m)~탑고개~헬기장~어하고개~회암고개~양주 천보산(423m)~장림고개~칠보산(506m)~송내동(봉양사거리)

행거리 : GPS거리 23.23Km   

산행시간 : 5시간 31분

산행인원 : 산악회따라

 

천보지맥(의정부_동두천).gpx
0.11MB

 

 

 

 

 

어린이날이다. 최근 장거리 산행을 해보지 못해 실력 테스트겸 해서 컨디션 정도를 실험해봤다. 호남정맥을 같이 완주했던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 근교 천보지맥을 종주해봤는데, 아무래도 전보다는 못하겠지만 아직은 녹슬지 않은 것 같아 기분 Up 이다.   

 

 

들머리 

의정부 녹양역 앞 동일로변 착한낙지 음식점 앞에서 출발했다. 착한낙지 주차장 옆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등산로다.  

 

 

도봉산

 

불곡산

 

수락산 

 

약수터 

 

 

 

 

 

의정부 천보산(天寶山/ 335.5m)
양주시 양주읍 마전리와 광사리 그리고 의정부시 금오동 경계에 있는 높이 336.8m의 산이다. 19세기 이후의 '대동여지도'에서 처음으로 천보산의 기록이 확인되며, 회천읍의 천보산 기록도 이때 같이 나타난다. 1992년 발간된 양주군지에서 이산을 갈립산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여러 자료를 참고해 볼 때 갈립산은 지금의 고장산으로 추정된다.

천보산의 봉우리들
깃대봉 :  마전리 남쪽을 가로막고 서있는 천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일제 때 산의 정기를 끊어 인재가 나지 못하게 하기위해 쇠말뚝을 박고, 일장기를 달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확실치 않다. 깃대봉은 일반적으로 측량표준기가 세워진 산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이 산에는 치마바위골, 우래골, 심바위골, 좁은골, 설안골(항아리골), 쇠시랑골, 시응골, 봉위골 등이 있다.
연무봉 : 천보산에 있는 봉우리다. 공주가 이곳에서 춤을 추며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하나 확실하지않다. 
삼형제봉 : 천보산의 절골 남쪽에 있는 봉우리다. 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서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성바위 · 성암(城岩) : 회만동 남쪽의 천보산에 있다. 성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근처에 금정굴이있다.
 

 

천보산

 

 

 

 

 

 

탑고개

 

신 3번국도 

 

지나온 능선 

 

 

양주 LG자이 

 

 

천보산릉

행정구역상으로 의정부, 양주, 포천, 동두천 등 4개 시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여름이면 울창한 숲터널로 시야를 가리지만 낙엽진 겨울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주변지역의 많은 산들을 쉽게 관망할 수 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능선으로 산림욕장같은 오솔길로 어어져 산행이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 어하고개

경기도 양주 주내면, 회천면, 포천의 소홀면과 경계에 놓인 고개다. 양주 삼가대(三佳垈)에서 동쪽으로, 포천 소홀면 이동교리에서 서쪽에 위치해 있다. 이 고개의 남북으로는 의정부 천보산에서 동두천 소요산까지 지맥으로 연결되는 천보산맥이 뻗어있다. 태조가 봉양리의 칠봉산(당시 '어등산'이라 했슴))을 올라 능선을 타고 계속 남하하다가 이 고개로 내려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태조가 무학대사와 함께 회암사를 찾을 때, 산세를 보기위해 어등산에 올랐다가 천보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20리(8Km)쯤 되는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으악고개'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어하고개란 발음이 잘못 된 것으로 보아진다. 또는 '원바위고개'라고도하나, 이는 미군이 전략상 필요에 의하여 표시한 ‘1Y’를 그대로 읽으면서 변한 이름에 불과하다. 회암고개를 '투바위고개'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신기한 약수

계곡이 아닌 얕으막한 능선상에 약수가 있다는 것. 이런 일은 흔치 않은데, 아마 지하수로가 능선을 따라 고개로 뻗어내려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육각정 

 

 

포천 천보산(423m)

소흘면 서쪽을 남북으로 뻗어 내려 양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축석령을 버텨 세워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으로 반은 모래, 반은 암석의 야산맥이다. 해발 300m 안팎의 연봉이 꾸불꾸불 뻗어내려 북으로 해룡산, 왕방산에 연결되고, 또 한 가닥은 양주 칠봉산으로 연결되는 천보산릉이다. 이 산의 축석령은 북류하는 포천천과 남류하는 중랑천 상류 분수령으로 예부터 200리 고개라 불렀는데, 서울에서 100리, 철원에서 100리다. 여름이면 울창한 숲터널로 시야를 가리지만 낙엽진 겨울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주변지역의 많은 산들을 관망할 수 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능선으로 산림욕장같은 오솔길로 어어져 산행이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하여 이산에 피신하였다가 난이 끝나자 목숨을 건진 이산을 '금은 보화로 치장하라'고 신하에게 명하였다. 신하가 난리 후라 금은보화는 구하기 어렵고, 이름을 '하늘 아래 보배로운 산'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포천 재림공원묘지 

 

회암고개 

 

회암고개(투바위고개)

"한국전쟁이후 미군들이 이곳을 작전상 부호를 매기면서‘2Y(투와이)’라고 호칭한 것이 발단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투바위고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원바위고개도 '1Y(원와이)'가 발단이 되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원바위고개는 '어하고개'를 투바위고개는 '회암고개'를 말한다.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하여 이 산에 피신하였다가 난이 끝나자 목숨을 건진 이산을 '금은 보화로 치장하라'고 신하에게 명하였다. 신하가 난리 후라 금은보화는 구하기 어렵고,  이름을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옛날부터 탑동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칠봉산'이라 불러왔다

 

 

▼ 장림고개

천보산과 칠봉산 사이에 걸쳐있는 고개다. 양주시와 동두천시의 경계상에 놓여 있으며, 양주시 회천읍 회암리와 동두천시 탑동을 연결하는 347번 지방도가 이곳을 지난다. 동두천쪽 도로는 포장이 완료되었으나 양주쪽은 아직 비포장인 채로 남아 있다. 

 

 

인디언조이 캠핑마을

 

솔리봉

 

 

 

칠봉산(七峰山/ 506m)
내촌에서 보았을 때, 7개 봉우리로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주시 봉양리와 동두천시 탑동, 송내동 경계에 걸친 높이506.1m의 산이다. 조선시대에는 어등산(於等山)으로 불렸으며, 구한말 전후로 칠봉산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나무 사이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있다하여 금병산(錦屛山)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어등산(於登山)이란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서 행정지명으로 첫 기록이 있고, 어등산이란 산이름으로 사용된 경우는 동국여도(1801∼1822)와 대동여지도(1861)에서 확인된다. 한자표기로 ‘어등산(於等山)’ 이나 ‘어등산(御登山)’으로 쓰이기도 했다. 어등산이 있는 어등산면의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여지도서(1757), 해동지도(1760), 팔도군현지도(1767∼1776), 호구총수(1789), 청구도(1834), 양주목읍지(1842), 대동지지(1864), 양주목읍지(1871),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 1888), 양주군읍지(1899), 양주읍지(1899),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 1912) 등에서 확인된다. 

어등산 이름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후 많은 신하를 참형에 처한 것을 후회하여 사찰을 찾아 다니다가 탑동에 위치한 상봉(上峰)을 국사봉으로 정하고 이 산을 지나갔다해서 어등산(御登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는 세조가 이 산에서 내촌(內村) 마을을 보고, 신하들에게 저 마을은 무슨 마을이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세조가 “앞에는 산이 있고, 회암천(檜岩川)이 흐르는데다가 뒤에 또 산이 있으니 ‘안말 이겠군”이라고 한 후 ‘안골’로 불리다가 구한말에 이르러 내촌(內村)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임금이 이곳으로 직접 왔을 리가 없다 하여 어등산(於等山)으로 억지 개명하려하였는데 마을 원로들이 반발하여 산봉우리가 일곱 개라 칠봉산(七峰山)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해서 칠봉산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조선전기에는 이곳 주변이 임금의 수렵장소로 자주 이용되었으므로 '임금이 오른 산’이라는 뜻에서 어등산(御登山)이란 이름이 함께 사용된 것으로도 추정한다.

근처 주민들은 칠봉산을 천보산(天寶山)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천보산이란 이름으로 15세기 초반 태종실록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동여비고(1682), 해동지도(1760), 여지도서(1757∼1765), 팔도군현지도(1767∼1776)·동국여도(1801∼1822), 양주목읍지(1842), 동국여지지(19C중엽), 대동여지도(1861), 대동지지(1864), 양주목읍지(1871),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 1888), 양주군읍지(1899), 양주읍지(1899),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1908), 신편조선지지(新編朝鮮地誌, 1924), 조선환여승람(1937)에서 확인된다.

태종실록2년(1402) 6월25일조에 천보산에서 두 개의 돌이 무너졌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천보산이라는 이름이 총 7건 확인되는데, 태종과 세조대에 임금이 이곳에서 사냥 혹은 사냥구경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이것은 바로 ‘어등산(御登山)’의 어원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대동여지도(1861)에는 회천읍 이외에도 양주읍에 또 하나의 천보산을 표기하고 있어서 근처 주민들을 혼란케 하고있다. 위에 열거한 문헌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천보산은 읍치에서 동쪽으로 25∼30리 되는 포천과의 경계지점에 있고, 회암사가 자리 잡은 곳에 있다고 하였다. 결국 대동여지도를 제외한 조선시대의 문헌에 수록된 천보산은 회천읍 봉양리의 천보산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와 더불어 양주읍 마전리에도 또하나의 천보산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봉양리의 어등산과 천보산은 칠봉산에 속한 봉우리를 가리킨 것으로 보여진다.

 

 

 

 

 

 

 

 

깃대봉 정자 

 

 

 

칠봉산 일곱 봉우리의 이름 유래

 

발리봉(發離峯)
조골 북쪽 칠봉산 서쪽 끝에 있는 봉우리이다. 임금께서 처음 등산하여 떠난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봉우리가 소잔등에 붙은 파리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하나 이는 와전인듯 싶다. 파리봉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응봉/매봉(鷹峯)    
조골 북쪽에 있는 칠봉산의 한 봉우리이다. 임금이 수렵할 때마다 사냥에 필요한 매를 날렸던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깃대봉/기대봉(旗臺峯)       
한자로 기대봉(旗臺峰)이라고쓴다. 임금이 수렵하는 곳이라는 표시깃발을 꽂았던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서 임금이 전사들을 불렀다하여 아래에 소군곡(召軍谷)이란 지명이 생겼다. 

투구봉(鬪具峯) 
내촌 북쪽 칠봉산에 있는 한 봉우리이다. 투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임금이 이곳에서 쉬니 시위군사(侍衛軍士)가 갑옷투구를 풀어놓았다고한다.   

솔리봉(率離峯)
내촌동 북쪽에 있는 칠봉산의 한 봉우리이다. 수리가 있는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것으로 수라봉이나 수리봉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임금이 군사를 거느리고 떠날 준비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돌봉(突峯)
칠봉산 봉우리가운데 하나이다. 임금이 이곳을 떠나며, 이곳에 돌이 많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는 석봉(石峯)이라고 불러야하나 이미 칠봉산 안에 석봉이 있으므로 돌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석봉(石峯)
사괴 북쪽에 있는 칠봉산의 한 봉우리이다. 임금이 등산을 하다가 돌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외 작은 봉우리로 갈미봉, 된봉, 수리봉, 말봉 등이 있다. 칠봉산내에 소군곡(召軍谷), 무자곡(茂子谷), 청풍동(淸風洞). 사슴골, 두령골, 학막골, 족두리바위. 마당바위, 농바위, 가마바위, 장수바위 등이 있다.

 

 

 

 

 

 

 

 

 

송내동 봉양사거리 

 

 

 
천보지맥(의정부_동두천).gpx
0.11MB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