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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정맥/백두대간~

백두대간 25구간(이화령~백화산~희양산~지름티재) ......... 2011.02/27

by 마루금 2011. 2. 27.

산행날씨 : 평지 기온으로 2.5℃~5.3℃, 하루종일 비

산행코스 : 이화령(529m) ~ 조봉(673m) ~ 황악산(912.8m) ~ 백화산(1063.5m) ~ 평전치(890m) ~ 사다리재(830m) ~ 곰틀봉 ~ 이만봉(990m) ~ 시루봉 갈림길 ~ 성터 ~ 희양산(999.1m) ~ 지름티재(640m) ~ 은티마을
산행거리 : 도상거리 19.1Km (대간거리 16.6Km / 접속거리 2.5Km)

산행시간 : 7시간(휴식이 거의 없이 간식으로 25분)


산행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온종일 비가 내렸다. 많은 양의 비는 아니었지만 때 아닌 겨울비가 한겨울 악천후에 버금가는 추위를 느끼게 했다. 옷이 젖고, 장갑이 젖고, 강풍까지 동반하니 더욱 그랬다. 등산로 바닥에는 복병으로 빙판이 깔렸고, 낭떠러지를 지날 때는 물기 먹은 눈길에서 더욱 긴장해야만 했다. 산사면 진흙탕 길을 내려설 때는 언제 미끄러질지 모를 긴장감을 잔뜩 안고 내려섰다.   

  

 

산행은 편의상 역방향으로 진행했다. 본래 지름티재에서 출발해야하나 봉암사측에서 입산을 제지하면 들머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희양산 구간을 놓칠 수가 있어 이화령에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악천후 때문에 악전고투는 했지만 어쨌든 목표를 달성해서 뿌듯한 기분은 남아있다. 

 

 

 

 

대간길 들머리는 이화령 주차장에서 문경 쪽으로 50여미터 이동하면 나타난다. 도로에서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데 입구에 입산금지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조금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군부대 갈림길이 나타난다.대간길은 좌측방향이다.

 

 

부대를 우회해서 사면을 지나고나면 정상적인 대간길에 올라붙게 된다. 이후 백화산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평탄한 수준의 등로가 이어지는데, 백화산 직전에서만 잠시 바위지대를 만날 뿐이다. 가끔 넓은 등로가 나타나기도하면서 하늘을 찌를듯 곧게 뻗은 낙엽송이 좌우로 도열해 있으면, 이곳의 늦가을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지를 짐작하면서 지나간다.

 

 

 

 

 

 

백화산(白華山,1063.5m)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 경계에 있는 도계상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다. 겨울철 눈 덮인 봉우리 모습이 마치 하얀 천을 씌운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직 등산코스가 제대로 개발되어있지 않아서 미지의 산을 찾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배너미평전 ~
천지개벽 때 배(舟)가 올라왔었다는 전설이 있다. 대간길 능선상에서 분지를 이룬 특이한 지형이다. 샘터가 있으며, 다습한 지역이다.

 

 

 

사다리재 ~

분지리 안말에서 이 고개로 올라붙는 산길이 사다리를 걸쳐 놓은듯 가파르며, 직선으로 치달아 올라서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지형도에는 이 고개가 고사리밭등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고사리밭등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매년 5월이면 이곳에서 고사리가 무진장 채취된다는 것이다.

 

 

사다리재에서 출발하면 한동안 암릉길 구간으로 이어진다. 양쪽 모두 천길만길이나 되는 낭떠러지 벼랑이어서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다. 암릉길을 지나다가 중간에서 곰틀봉을 거쳐가게 되는데, 정상을 알리는 표식이 없어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옛날에는 곰틀봉을 곰봉이라고도 불렀으며, 반달곰이 서식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만봉(二萬峰, 990m) ~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에 2만여 가구가 피난을 와 븥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고, 다른 내용으로는 '이만호'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이 산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희양산(曦陽山,998m) ~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동쪽, 남쪽, 서쪽 3면으로 화강암 암벽이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돌산이다. 암봉들이 마치 열두 판 꽃잎처럼 펼쳐져있는데 그 중심에는 고찰 봉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봉암사에서 희양산을 오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과거 봉암사 경내는 여느 사찰과 다를 게 없었다. 대도시에서 몰려드는 등산객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가 하면 놀이객들은 깨진 병과 음식물찌꺼기를 마구 버렸다. 조용해야할 사찰 부근이 술취한 유흥객들의 고성방가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와같이 더럽고 씨끄럽던 사찰이 제모습을 찿기 시작한 것은 1982년 5월 봉암사 스님들이 사찰이 관광지가 되고 훼손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겠다는 운동을 전개, 봉암사 주변의 등산로 및 관광코스를 철저하게 폐쇄하면서부터이다. 봉암사쪽 등산로가 폐쇄된 이후부터 아쉽게도 희양산 암벽등반도 금지되었다.      
 
봉암사(鳳巖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종찰(宗刹)로 879년(헌강왕 5)에 지증대사인 지선(智詵)이 창건했고, 935년(태조 18)에 정진대사 긍양(兢讓)이 중창하고, 1431년(세종 13)에는 기화(己和)가 중수했다. 1674년(현종 15)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신화 (信和)스님이 재건했다. 1915년 세욱(世旭)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 극락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지증대사적조탑(智證大師寂照塔:보물 제137호)·, 지증대사적조탑비(보물 제138호)·3층석탑(보물 제169호), 정진대사원오탑(靜眞大師圓悟塔:보물 제 171호), 정진대사원오탑비(보물 제172호) 등이 있으며, 이 절의 서북쪽 계곡에 있는 거대한 암벽에는 높이 600cm의 마애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이 새겨져 있다.

 

 

 

 

악전고투해서 희양산을 올랐다.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강풍, 뼈속까지 파고드는 추위, 잠시 머무르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손이 곱아서 손가락 감각을 상실해 카메라 셔터를 눌리는 것마저 무척 버거운 상태였으니... 오로지 얼른 하산해서 몸을 녹여야겠다는 생각뿐 ~

 

 

 

희양산 하산길에서 또 한 번 고전한다. 수직 벽을 몇 차례나 밧줄을 잡고 내려서야하는데 보통 고역이 아니다. 젖은 장갑에 손이 얼어서 밧줄을 잡고 있는 감각조차 없다. 밧줄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자꾸만 장갑속으로 빨려든다. 마치 손을 얼음 속 깊게 박아둔 듯한 느낌이다. 금새 동상 걸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미끄러운 발디딤으로 중심이라도 잃게된다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기에 악을 쓰고 추위를 견디며 내려섰다.

 

 

지난구간 날머리였던 지름티재에 어렵사리 도착 ~

은티마을로 가는 골짜기 하산길로 내려서자 그렇게 세차게 불어제끼던 바람이 멈춘다. 마을 도로에서 잠시 멈춰서서 방금 지나온 희양산을 올려다보는데 언제 그랬나는듯 너무나 조용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불순한 일기 때문에 한껏 기대했던 희양산 진풍경이 구름 속으로 모두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몸서리 치리만큼 악몽같았던 순간도 추억이려니 ~ , 머리 속 깊이 뿌리박혀서 영원한 추억으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EN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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