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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정맥/백두대간~

백두대간 13구간(우두령~석교산~삼마골재~해인리) ............ 2010.8/22

by 마루금 2010. 8. 24.

산행날씨 : 평지 기온으로 23.5℃ ~ 33.3℃, 대체로 맑음

산행코스 : 우두령(720m) ~ 814.6봉 ~ 1170봉 ~ 석교산(1207m, 일명 화주봉) ~ 1175봉 ~ 폐광지 ~ 밀목재 ~ 1123.9봉 ~ 삼마골재 ~ 해인리

산행거리 : 도상거리 12.2Km (대간거리 9.9Km / 접속거리 2.3Km)

산행시간 : 4간45분 (휴식 및 중식 50분 / 날머리 40분)

산악회따라 ~


백두대간 열세 번째 출정이다. 지난 구간까지 전라도와 경상도의 도계를 따라 거쳐왔지만 오늘부터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계를 따라간다. 이번 구간 역시 물이 있는 계곡으로 하산키 위해 역으로 코스를 잡았다. 우두령에서 산행을 시작, 삼마골재에서 대간길을 마쳐 김천 방면의 해인리로 하산했다.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길게 느껴진다. 처서를 하루 앞둔 날임에도 불구하고 찜통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고 무더운 날씨를 예고했지만 대간길을 오르기 위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들머리 ~

동식물생태통로 터널에서 김천 쪽으로 '매일유업 김천농장'이 보인다. 영동 쪽으로는 생태통로를 보호하기 위한 펜스가 설치돼 있으며, '등산인 출입금지' 간판이 세워져 있다. 우두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려면 생태통로 터널에서 영동 쪽으로 펜스를 따라 조금 내려간 다음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우두령(牛頭岺) ~
경북 김천시 구성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을 잇는 901 지방도의 고개다. 낙동강과 금강 물을 가르는 분수령이며, 일제 때는 부근의 금광 개발로 이 고개가 성시를 이루었다. 우등령(소의 등)이 구전(口傳)되다가 우두령으로 변음되었다고 하며, 질매재(소나 말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얹는 기구)라고도 불린다.

 

 

 

  

 

우두령의 상징인 황소상 ~

 

석상 뒷면의 설명문 ~

 

 

 

814.6봉(삼각점) ~

우두령에서 3분쯤 오르면 송전탑을 지난다. 이후 급경사로 이어지다가 대략 8분쯤 지나서 경사는 완만해진다. 그후 다시 7분쯤 오르면 삼각점(영동 464, 1980 재설)이 있는 작은 봉우리인 814.6봉을 만난다.

 

814.6봉 삼각점 ~

 

 

 

1170봉(헬기장) ~
814.6봉을 떠나 오르면 넓은 묘가 나타난다. 묘에서 12분여 오르면 경사가 급해지면서 다시 6분쯤에 봉우리 하나를 오른편으로 우회한다. 이후 한 차례 내리막이다가 다시 긴 오르막을 완만하게 올라간다. 고목을 간혹 만나면서 오르면 헬기장이 있는 1170봉에 도착한다. 우두령에서 1170봉까지 대략 40분 거리다.

 

1170봉 헬기장 ~

 

석교산(1,207m : 일명 화주봉) ~

1170봉 헬기장에서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1120.1봉 우측 사면으로 우회하고나서 완만하고 긴 오르막을 오르면 오늘의 최고봉인 석교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김천 산꾼들이 세운 '석교산'이라 적힌 아담한 표지석이 있으며, 상하 2단의 공터로 이루어져 아래쪽 공터의 잔디밭은 예전에 묘지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우두령에서 석교산 정상까지 1시간10분 거리다. 석교산 정상은 사방으로 시야가 열려 조망이 시원스럽다. 동쪽은 구미 금오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동북쪽으로 황악산 능선이 한눈에, 서쪽은 뾰족하게 솟은 1175봉 암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며, 그 너머 남쪽엔 삼도봉, 백수리산, 대덕산,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그 아래 동남쪽으로는 가야산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삼도봉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면 석기봉, 민주지산 주봉, 각호산의 능선이 마치 일렁이는 파도처럼 보여 멋진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석교산(화주봉)은 본래 무명봉이었다. 산 아래 주민들이 '숲실 뒷산' 또는 '꽈리밭골 뒷산' 정도로 불렀다고 전해온다. 화주봉 명칭은 전란 때마다 화전민들이 이곳에 숨어들어와 거주하였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일 것으로 여겨진다. 석교산(石橋山)은 대동여지도에서 명칭을 볼 수 있는데, 황악산 좌측(지금의 곤천산 위치)에 표기돼 현재의 봉우리 위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아마 백두대간 자료가 만들어지면서 무명봉이었던 이 봉우리의 지형표시를 목적으로 '석교산'이란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본다.

 

1997년 월간 山, 별책시리즈 101호에서 ~

'실전 백두대간종주산행'이란 목차에 게제된 지도에 화주봉(1207m)이라 표기했다. 다음 내용은 백두대간 북진 종주의 설명 중 일부다....(중략)급경사 오르막, 땀 깨나 흘리고나야 화주봉(1207m, 일명 석교산)에 오를 수 있다(1175m봉서 40분 거리). 화주봉 또한 최고의 전망대다. 덕유산부터 이어지는 대간능선이 전부 다 보인다.우두령쪽으로 능선과 1062m봉 헬기장도 보인다.이제부터는 급한 내리막도 오르막도 없다. 남동쪽으로 조금 가면 헬기장(20분 거리)이고,이어 서서히 고도를 낮추면 우두령이다(화주봉에서 1시간 거리)라 기록되어 있다.

 

 

 

 

 

만  남   꿈

                      高思目 이 명 화

 

만남이 좋왔읍니다 / 보는 행복도 좋왔습니다

받는 마음도 기뻤읍니다 / 정겹고 살갑고 감칠맛 나 듯 / 만남이 조왔읍니다

순간 순간 행복합니다 / 마주치는 눈길 독을 품듯 / 사랑의 끈 운명을 만든답니다

 

 

 

 

 

1175봉 암봉(앞 능선 우측) & 민주지산(뒤) ~

 

 

 

운명의 끈도 아름다워요

당신도 묶고 나도 묶고 둘둘말아 한 몸이 될 때

누에 실타래 풀리듯 곱디고운 옷 만들어 / 둘이 하나되어 우리 사랑 엮어야겠죠

 

 

 

좌측 맨뒤로 덕유산이 희미하게 조망되고 ~

 

 

 

설레임 파도치고 울컹덜컹 용솟음 칠 때

마음의 찻잔 속 예쁜 색물 채워서 / 당신 입술 물들일 때 / 굵고 가는 혀 붓이 되어 내 입술 그려주면

세상사 수레바퀴속 돌고 돌린 우리 사랑 / 현기증이 난다해도 당신 만난 이세상 / 당신어깨 날개 달고 / 오색 칠한 행복문 나를 업고 날아주세요

 

 

 

대덕산(여성의 젖무덤 모양) &  백수리산(우측) ~  

 
1175봉 암봉을 오르는 중 ~ 

 

1175봉 암봉 ~

석교산에서 서쪽으로 철쭉 군락이 있는 내리막을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고, 이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가면 1175봉의 암벽이 나타난다. 수직 암벽에 로프가 설치됐지만 잡을만한 홀드가 양호해서 겨울철이 아니라면 로프 없이도 오르기가 가능하다. 암벽을 오르면 1175봉 정상이며. 석교산(화주봉)에서 이곳까지 25~30분 걸리는 거리다.

 

1175봉 정상은 대략 20명쯤 올라설 수 있는 암봉으로 이루어졌으며, 사방으로 시원스럽게 전망이 트여 이 구간 중 조망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동쪽은 방금 지나온 석교산이 가깝다. 남쪽은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의 숲실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북쪽은 황악산 능선이 선명하다. 남서쪽으로는 가야할 대간길과 삼도봉이 조망되고, 그 우측으로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 일대가 웅장하게 펼쳐진다.

 

1175봉 암봉 ~

 

 

방금 지나온 석교산 ~

 

북쪽의 황악산 ~

 

1111봉 ~

 

숲실마을 골짜기 ~

 

1111봉 ~ 1089.3봉 삼각점 ~

1175봉 암봉을 내려서면 이후 5개 정도의 봉우리를 계속해서 오른편으로 우회하여 오르내린다. 도중 1111봉이나 삼각점이 있는 1089.3봉 등을 우회하여 이 봉우리들이 어디쯤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1175봉에서 15분여 지나면 안부에 노송 세 그루의 쉼터가 나타나고,  3분 후 다시 소나무 숲 속 쉼터를 지나면 잡목 덤불이 심하게 막아선다. 

 

잡목 덤불지대 ~

 

잡목 덤불을 헤치고 오르내리면서 15분여 진행하면 폐광산 지역이라 함몰할 위험이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판을 만난다. 이후 18분여 더 진행하면 좌측 아래가 약초 재배 지역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도 만난다.

 

폐광터 경고문 ~ 

 

폐광터 이야기 ~

폐광터 남쪽으로 산 아래 김천 부항면의 '대야동'이란 마을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대동(大洞)이라고 불렸다. 일제시대까지 마을 뒷골 일대에서 금맥이 발견돼 큰 규모의 금광이 생겨나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다. 실제로 김천은 선산과 함께 신라시대부터 이름난 금 생산지로 각종 고문헌에 기록돼 있다. 이곳 금광굴 깊이에 대해 멀리 해인동 앞까지 뻗었다는 등의 여러 설이 떠돌지만, 전 마을노인회장 임차랑씨에 의하면 어릴 때 동굴 끝까지 들어갔었는데 수평과 수직갱도를 합해도 백미터는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일제시대에 이곳에는 많은 금이 생산되면서 이 마을에 일본인 기술자들과 인부들이 밀려들어와 크게 번성했는데, 자연히 인부들을 상대하는 술집까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수시로 분쟁이 발생되자 급기야 일개 마을에 지서가 들어서기도 했다.

 

약초재배지 경고문 ~ 

 

밀목재(密木嶺) ~

이후 오르락내리락 진행하다가 봉우리 하나를 왼편으로 우회하고, 봉우리 또 하나를 오른편으로 우회하여 5분여 내려가면 잡목이 줄면서 안부 사거리가 나타난다. 바로 이곳이 본래의 밀목재다. 좌우로 가로지른 등로에 잡목이 우거져 길 흔적이 없지만 지형상으로는 고개의 모습이 가늠된다. 우두령에서 이곳까지 3시간 거리다.

 

밀목재는 경상도에서 불려지던 이름으로 '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고개'란 뜻이다. 충청도 영동 쪽에서는 이 고개를 '면목재'라 불렀다. 영동 한천마을에서 면목골로 올라 면목재(밀목재)를 넘어 김천쪽 대야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지금은 이 산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본래의 밀목재 ~ 

 

밀목재 안부에서 굵은 철쭉군락의 얕은 봉우리를 넘어가면 매직 글씨로 기둥에 '밀목재'라 쓴 이정표를 만난다. '삼도봉 2.86km'라 적혀 있다. 본래의 밀목재는 아니지만 기둥에 밀목재라 쓴 이유로 이곳이 현재의 밀목재로 통용되고 있다. 본래의 밀목재에서 이곳까지는 3분쯤 떨어져 있는 거리다. 

 

밀목재 이정표 ~ 

 

  

밀목재에서 18분여 긴 오르막이 끝나면 노송이 있는 능선이다. 한 차례 잠시 내려서다가 다시 오르면 양쪽 참나무 군락지 아래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조금 더 올라가 봉우리 직전에서 등로가 좌로 꺾이면서 이정표를 만난다. 삼도봉 2.1km, 밀목령 760m'라 적혀 있다.

 

 

1123.9봉 삼각점 ~

봉우리를 한번 더 올라서면 삼각점(영동 459, 1980 재설)이 있는 1123.9봉에 도착한다. 삼각점 옆에 +표시뿐인 또 다른 삼각점이 있다. 이곳 이정표에는 삼도봉 1.95km, 밀목재 1.02km'라 적혀 있다. 밀목재에서 이곳까지 22분 거리다.


1123.9봉 삼각점 ~

 

1123.9봉 이정표 ~

 

1123봉 ~

삼각점이 있는 1123.9봉을 떠나서 잠시 후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1123봉을 만난다. 정상 직전에서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정상을 오르는 길과 우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는데, 우회하는 길이 더 뚜렸한 것으로 보아 대부분 정상을 거치지 않고 우회하는 것 같다. 1123봉에서 바로 아래에 헬기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가시덤불과 억새밭을 헤치고 8분쯤 내려가면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에서 15미터 떨어진 안부가 삼마골재 사거리다.

 

1123봉에서 바라본 대덕산(젖무덤 모양), 가야산(좌측으로 아주 희미하게), 백수리산(가운데), 민주지산의 능선들(좌) ~ 

 

1123봉에서 바라본 삼도봉 ~  

   

삼마골재 헬기장 ~ 

 

삼마골재 ~

헬기장, 마루 모양의 나무데크 계단, 운동시설, 영동소방서의 119 표지판(민주지산 제1지점) 등이 있으며, 이정표에는 삼도봉 0.9km, 석기봉 2.3km, 황룡사 3.5km, 밀목재 2.1km'라 적혀 있다. 오늘의 대간길은 여기까지, 하산은 김천 부항면의 해인리 방향으로 ~ 
 

삼마골재 ~ 

 

삼마골 이야기 ~

삼마골재는 삼마골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본래 '산막골'이라 불리다가 '삼마골'로 변음된 것으로 본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화전민들이 정착해 숯을 구워 팔며 살았다. 한국전쟁 전후로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까지 이곳에 들어와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다. 그들은 생활력이 강했다. 참나무를 베어 일주일만에 산막 한 채를 뚝딱 지었다.

 

백두대간에 걸친 마을이 대부분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이곳은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접전지였다. 산을 점령한 군인이 주야로 바뀌던 시절, 화전민들은 며칠씩 산 밑에서 피신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당시 전쟁으로 같은 날 희생을 당한 화전민들이 많았다. 삼마골 아래 해인리만 해도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다. 이후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다.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생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터지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화전민들은 산을 내려와야 했다. 그게 삼마골에 살던 화전민들의 숨겨진 역사다.

 

삼마골 하산길 ~

  

 

하산길 ~

삼막골재에서 계곡을 따라 35분여 내려서면 도로와 함께 입산통제소를 만난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해인산장, 고추방골 남근석, 삼도봉 경로당, 해인리 마을 주차장을 차례로 만난다. 삼마골재에서 해인리 마을 주차장까지 40여분 거리다.

 

해인산장 ~ 

 

 

해인이라는 마을 지명은 ~

신라시대에 마을 뒤 삼도봉 골짜기에 해인사(海印寺)라는 큰절이 있은 연유로 사찰이름을 따서 해인동이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일설에 삼도봉 해인사가 경남 합천의 해인사로 옮겨갔다는 설이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남근석 ~

 

여근곡 ~

 

EN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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