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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정맥/백두대간~

백두대간 11구간(신풍령~대덕산~덕산재) ............ 2010.7/25

by 마루금 2010. 7. 27.

산행날씨 : 평지 기온으로 21℃ ~ 32℃, 갬 & 흐림 반복

산행코스 : 신풍령(920m) ~ 수령봉/수정봉(1050m) ~ 된새미기재(1020m) ~ 호절골재(1100m) ~ 금봉암3거리(1200m) ~ 삼봉산(1256m) ~ 쌍골 삼거리(1000m) ~ 소사고개(680m) ~ 삼도봉/초점산(1248.7m) ~ 대덕산(1290m) ~ 얼음폭포 ~ 덕산재(644m)
산행거리 : 도상 13Km (대간거리: 13Km / 접속거리: 0Km )

산행시간 : 5시간40분 (휴식 40분 포함)

산악회따라 ~


백두대간 열한 번째 출정이다.  산행을 크게 2구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수정봉~삼봉산 구간과 삼도봉~대덕산 구간이다. 빼재에서 수정봉을 거쳐 삼봉산까지 올랐다가 소사고개로 하산하고, 다시 삼도봉을 거쳐 대덕산까지 올라서 덕산재로 하산한다.

 

이번 구간은 1000m이상 급의 산을 4개나 넘어간다. 산행거리는 짧지만 오르내리는 낙차가 크고 복중(伏中)이라서 체력소모가 심했다. 빼재에서 삼봉산까지 상승고도 420m, 삼봉산에서 소사고개까지 하강고도 578m, 소사고개에서 대덕산까지 상승고도 739m이다.

 

우중산행은 아니었으나 구름 때문에 멀리 떨어진 명산 조망을 놓쳤다. 지리산, 가야산, 민주지산 등 명산들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고, 가까운 덕유산 향적봉마저 구름에 종일 덮여 있었다. 대신 이산 저산에서 펼쳐진 구름쑈가 장관을 이루었고, 따가운 햇볕을 면할 수 있어 더위는 줄일 수 있었다. 대덕산에서 잠시 내린 짤막비는 시원하기까지 했다.

 

 

<빼재/ 수령/ 신풍령 > 

거창과 무주를 잇는 37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빼재 유래에 관한 설명은 지난 산행기에서 게재하였으므로 여기는 생략한다. 고개턱에 팔각정자, 폐점한 신풍령휴게소와 주유소, 수령비(秀嶺), 백두대간비, 백두대간 안내판, 나무테크 계단 등이 있다.

 

폐점한 주유소와 주차장 ~                                                              폐점한 신풍령휴게소 ~

 

< 대간 들머리 >

신풍령휴게소 뒷쪽 도로에서 나무테크 계단을 오르면 된다. 계단 입구에 백두대간 안내판과 산행이정표가 있다.

 

들머리 ~                                                                                                                    들머리 이정표 ~

  

 

< 수령봉 / 수정봉 >

정상임을 알리는 표시는 없고 잡목뿐이다. 본래 무명봉이었는데 백두대간 자료가 정리되면서 생긴 이름이다. '수정봉' 또는 '수령봉'으로 불리는데 수령봉은 빼재의 수령비(秀嶺碑)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봉산리 삼거리 (거리 표시는 오기임) ~ 

 

  

 

< 된새매기재 / 된새미기재 >

과거 헬기장이었다. 잡목에 뒤덮혀 지금은 헬기장 흔적이 없다. 그래서 이곳 위치 파악을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특이한 고개 이름이다.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기록을 찿기 어렵다. 많은 선답자들이 이곳을 거쳐갔지만 궁금증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고개 이름에 대해 아래에 두 가지 예를 들어보는데, 명확한 근거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흥미삼아서 한번 나열해보기로 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바람(風)과 연관해서 '바람을 막아주는 고개'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된새'는 북동풍의 바람을 뜻한다. '매기'나 '미기'는 '막이'가 변음된 것으로 본다. 주변 지형과 연관지었을 때는 '억새가 빡빡하게 들어차서 가로막고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첫 글자 '된'은 '빡빡하다'라는 뜻이 있다. 두 번째 글자 '새'는 억새를 뜻하고, 그 다음 '매기'나 '미기'는 '막이'라는 뜻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능선 일대가 무성한 억새밭이었다. 방화선 조성을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를 잘라낸 자리를 억새가 차지한 것이다. 당시 거창 봉산리 쪽의 폐광산 도로와 무주 삼거리 쪽의 산판도로가 이 고개 가까이 올라와 근접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양쪽 도로에 가까운 이 고개를 선택해서 넘나들었을 것이고, 고개 이름도 더불어 이 때 생겨났을 것이다. 옛날 지도에는 이 고개 이름이 없다. 


된새매기재 ~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봉산 금봉암 방향의 바위지대  ~

 

좌측의 봉우리 3개는 삼봉산 정상이고, 우측은 금봉암 위의 암봉들 ~

 

< 호절골재 >

과거 헬기장이었다. 잡목이 우거져 지금은 헬기장 흔적이 없다. 다만 이정표가 설치된 것으로 호절골재라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용초마을에서 금봉암을 거쳐 삼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세 갈래다. 그 중 맨좌측이 제일 멀리 돌아가는 길이지만 정상을 오르기에는 어렵지 않다. '절에서 돌아가는 고개'라 하여 호경 호(鎬 )자를 붙여 '호절골재'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 고개 역시 옛날 지도에는 찿아 볼 수 없는 명칭이다.

 

호절골재 이정표 ~ 

 

금봉암 위의 바위봉 ~ 

 

금봉암 삼거리 ~ 

 

< 금봉암(金鳳庵) 유래 >

거창사람인 해인사 여신도 '청송 심'씨가 금봉암을 세웠다. 해인사에 불공 한 번 드리는데 소 2마리에 쌀을 싣고 머슴 2명을 동반해서 왕복 일주일이나 걸리는 고행이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고향땅에 기도처를 마련하기로 정하고, 백일 기도를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심씨는 지관에게 절 터를 잡아달라는 요청을 하여, 10여일만에 지금의 자리를 정해주었다.

 

심씨는 100일 기도 준비를 하고 올라와 움막을 짓고 기도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거의 단식하다시피 기도를 간신히 계속 했는데, 어느날 밤 산신령이 동자를 데리고 나타나 장군수를 일러주었다. 심씨는 이후로 장군수만을 마시고 생기를 찿아 무사히 100일 기도를 마쳤다. 이 때가 1840년쯤 되는 시기라 한다. 

 

백일기도를 마치는 날, 해가 뜨면서 상봉에서 금빛 찬란한 새가 기도처를 세 번 왕복하더란다. 그래서 사찰 이름을 금봉암이라 하고, 삼봉산(三峰山)은 '三鳳山'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금봉암 주위에는 절 바로 위로 투구봉, 그 오른쪽이 노적봉, 투구봉 왼쪽으로는 칼바위, 장군바위, 석불이 하나의 암릉을 이루고, 이 암릉 왼쪽에 다시 신중봉, 부부봉이 능선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절 밑으로 신성봉, 칠성봉이 뾰쪽하게 솟았다. 그리고 장군수가 나왔다는 용굴샘은 금봉암 위쪽일 것으로 추측한다.

 

 

삼봉산 첫 번째 봉우리의 돌탑(바위지대) ~

 

< 삼봉산(三峰山) >

첫 번째 봉우리는 암릉지대이고, 두 번째 만나는 봉우리가 정상이다. 1990년 거창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과 바로 옆에는 삼각점(무풍 NO311)이 있다. 정상석에 德裕三峰山(덕유삼봉산)이라 적혀있다. 산경표에는 삼봉산까지를 덕유산의 경계로 삼고, 삼봉산을 덕유의 맏형 격으로 취급해 덕유원봉(德裕元峰)이라 불렀다. 

 

금봉암(金鳳庵)이 이 산과 어우러져 소금강의 신비경을 이룬다.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며, 봉우리가 셋이라는 의미로 '삼봉산'이라 불렀다. 그러나 봉우리 수로는 전북 쪽은 3봉이 뚜렸하지만 경남 쪽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9봉으로 보여 삼봉산 이름에 걸맞지 않다.

  

 

삼봉산 두번 째 봉우리(정상) ~

 

< 삼봉산 기우제 >
1890년말쯤 극심한 가뭄이 닥쳐와 곡식이 마르고, 산록의 풀마저 까맣게 타들어갔다. 군내 각 기관장이 이 삼봉산으로 올라와 지금의 삼성각 자리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용바위를 나무로 불을 태우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꼬리를 상봉에 붙인 청룡과 황룡이 몸부림을 치더라는 것이다. 이내 폭우가 쏟아졌는데 얼마나 쏟아붓던지 바로 절 밑을 건너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당골(안땅골) 주민이 나무에 불을 붙였는데, 이 때문인지 몰라도 이 마을에 돌사태가 덮쳐 문전옥답을 돌밭으로 만들고 60여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그후 마을에서는 매년 6월27일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거창군지의 기록을 보면 거창에서는 이 삼봉산에서 먼저 기우제를 지내고난 다음, 읍 북쭉의 금산(錦山), 즉 지금의 건흥산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삼봉산 정상에 있는 괴목 ~ 

 

< 위험지대 >

삼봉산 세 번째 봉우리는 깎아지른 바위 날등이다. 능선 시작지점에 밧줄이 매어져 있다. 바윗길이 곤란하면 우회로를 이용할 수 있다. 능선 끝지점에도 하강 할 수 있도록 밧줄이 매어져 있는데, 직벽이라 위험하므로 무경헙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  

 

삼봉산 세 번째 봉우리(바위지대) ~ 

 

구름 덮힌 덕유산 향적봉 ~

 

무주 무풍방면으로 뻗은 삼봉산 능선 ~

 

삼봉산 세 번째 봉우리의 하강지점 ~ 

 

삼봉산 오두재 방면 ~  

 

무주 무풍면 은산리와 덕지리 방면 ~ 

 

구름에 가린 소사재와 대덕산 ~ 

 

뒤돌아본 삼봉산 ~ 

 

< 독도 주의 > 

삼봉산 세 번째 봉우리를 내려서면 쌍골 안부다. 쌍골 안부 삼거리에서 90도 우측으로 꺾어 급사면을 내려서야 한다. 삼거리의 직진이 능선길이고, 우측 내림길은 계곡처럼 보이지만 어쨋든 이것이 대간길이다. 

 

삼봉산 하산로(쌍골 삼거리에서 내려서는 급경사길 )  ~   

 

 

식탁바위 ~ 

  

삼봉산에서 급경사 비탈을 내려서다가 앉아서 편히 식사할 수 있는 식탁바위도 만난다. 고랭지 농장 철문을 만나서 통과하면 임도로 내려서지 말고 능선의 소로를 올라서 삼각점이 있는 794.3봉을 넘어간다. 숲을 빠져나가면 배추밭이다. 배추밭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끝까지 내려가면 전나무 숲길로 이어지고, 이 숲길을 빠져나가면 소사고개에 도착한다.

 

고랭지 농장 철문 ~

 

배추밭 ~

 

대덕산(좌)과 삼도봉(우) ~

 

< 소사재(少沙峙) >

1089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전라도 무주 무풍면과 경상도 거창 고제면를 잇는 고개다. 옛 이름은 도마치(都麻峙)이다. 잔모래가 많다고 하여 '소사마을', '소사고개'라 불린다. 소사재 좌측은 금강수계가 되지만 경상도 땅이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아무렇지도 않게 섞인 땅, 남원의 운봉고원도 그랬다.

 

차량통행이 뜸한 고개~

고갯마루에는 탑선슈퍼 안내판이 있다. 대간꾼들이 쉬어 가는 곳, 여기서 물보충과 필요한 물품 구입이 가능하다. 아울러 백두대간 안내판도 곁에 있는데, 이것이 경상남도 거창땅에서는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안내판이다.
 

소사고개 ~

 

거창의 마지막 백두대간 안내판  ~

 

지나온 삼봉산을 돌아보며 ~ 

 

소사고개에서 절개지 사면을 올라 숲으로 들어선다. 이후 줄곧 오름길뿐이다. 임도를 만났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붙고, 이후 묘지와 밭, 개망초 군락지를 차례로 지난다. 사과밭을 지나고, 배추밭 가운데를 통과하고, 목장옆 세멘트 도로를 만나면 도로가 끝날 때까지 올라간다. 화려하게 꾸민 묘지 좌측을 지나기도 한다. 이렇게 목장길 도로를 오르는 동안은 소똥냄새가 진동하지만 참아야 한다. 

 

사과밭을 지나고 ~ 

 

배추밭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

 

 

 화려하게 꾸민 묘지 좌측을 지나기도 하고 ~

 

목장길 도로가 끝나면 우측의 마당에서 능선 숲으로 올라붙는다. 빨간 화살 표지판이 지시하는 방향이다.

 

목장에서 올라붙는 대간길 ~

 

 

울창한 숲을 따르면 경작을 멈춘 밭이 우측에 보인다. 이것이 이번 구간의 마지막 밭이다. 숲을 빠져나오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이 임도를 따라 오르면 농산물 광고 간판과 백두대간 마루금 안내판을 만난다. 여기서 임도와는 헤어지게 된다. 백두대간 마루금 안내판이 지시하는 방향인 숲길로 진입하여 올라붙는다. 이후 삼도봉 정상까지 지루한 경사를 가진 오름길이다. 마의 구간이므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삼도봉 오름길 ~ 

 

 

< 삼도봉(三道峰) >

정상에는 옹색하고 초라해 보이는 두 동강난 정상석이 있다. 앞면은 '초점산 삼봉산', 뒷면은 거창 극북점 E127 53 20 N35 54 40이라 적혀있다. 이 봉우리는 거창 최북쪽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여기서 수도지맥이 분기해 남쪽 가야산까지 이어진다. 옛 이름은 초점산(草岾山), 즉 '풀이 많은 고개'란 뜻이며, 3개 도가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라 '삼도봉'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백두대간에 삼도봉이 세 군데 있는데, 이곳은 '대덕산 삼도봉'으로 구분한다.


백두대간에 걸친 삼도봉은 민주지산 삼도봉, 대덕산 삼도봉, 지리산 삼도봉이다.

그중 세 곳의 삼도봉에 모두 걸친 도는 전라북도뿐이다.

* 지리산 삼도봉(낫날봉)접경지 :전북 남원 / 전남 구례 / 경남 하동
* 대덕산 삼도봉(초점산)접경지 :전북 무주 / 경북 김천 / 경남 거창
* 민주지산 삼도봉(화전봉)접경지 :전북 무주 / 경북 김천 / 충북 영동

 

 

삼봉산과 소사고개 ~

 

대덕산과 삼도봉 사이의 안부 ~

 

대덕산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삼도봉 ~

 

 

         

능선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무한한 미래에 뻗어 있는데

나의 현재가 그 과거와 미래를 이어 발자국 소리를 낸다

그러고보니 산을 걷는다는 것은 인생을 걷는 것이다           

산 에세이 중에서 / 이 병주 

 

 

 

  

지나온 대덕산 능선길 ~ 

 

지나온 대덕산 능선길 ~ 

 

삼도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억새와 철쭉길을 따라 40여분 다시 오르면 대덕산 정상인 '투구봉'이다. 봉우리 다섯 개를 가졌는데 밋밋한 산줄기가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정상에 헬기장이 두 곳으로 정상 직전과 정상 넓은 평지에 있다. '대덕산'이 이번 구간 대간길 중 최고봉이다.

 

대덕산 작은 헬기장 ~  

 

< 대덕산(大德山) >
옛날 다락산(多樂山), 다악산(多惡山) 이란 이름이 있었다. 대덕산(大德山)은 '큰 기운의 덕기(德氣)가 흘러 넘치는 산'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 살려고 온 사람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 덕택을 입었다 하여 '대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운장포호두(雲莊包虎頭; 구름에 호랑이 머리가 감춰져 있다)라는 명당이 있어 근처에서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한다.

 

 

 

격암 남사고가 예언했다. 산형길자무흉재(山形吉者 無凶災)라 ~

예로부터 '산의 모양새가 좋으면 흉한 일이나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란 뜻이다. 대덕산 또는 덕유산을 배경으로 하여 금강상류를 앞에 품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인 길지의 지형을 갖춘 무풍(전북 무주군)은 충청도 속리산(청화산) 자락에 위치한 '연풍'과, 경상도 소백산자락에 위치한 '풍기'와 더불어 살기 좋은 삼풍 가운데 하나로 불리던 곳으로 우리 나라 십승지(十勝地)의 하나에 해당하는 곳이라 했다.

 

 

삼도봉(좌), 대덕산 오름길(우) ~ 

 

대덕산에서 바라본 삼도봉 ~

 

대덕산 하산로 ~ 

 

< 얼음골 약수터 >

낙동강 발원지 중 한 곳이다. 물맛이 좋다는 소문이 있는데 지저분하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하지만 그건 보증이 어렵다. 대덕산에서 덕산재로 내려서다가 비탈  칠부능선쯤에서 만나는 약수터다.
 

얼음골 약수터 ~ 

 

하산길에 얼음폭포를 만난다. 수량도 풍부하고, 물도 무척 차고, 맛도 깔끔하다. 윗쪽의 약수터보다는 폭포에서 물을 구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얼음골 폭포 ~ 

 

< 덕산재(德山峙) >

30번 국도로서 경북 김천 대덕면과 전북 무주 무풍면을 이어준다. 덕산재 이름은 김천 대덕면의 덕산리(德山里)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고개 마루턱에 있던 주유소는 폐업하고,'약사여래불 산신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덕산재에서 무주 무풍면 쪽으로 들어가면 신라와 백제가 대치했던 '나제통문'을 만나볼 수 있다. 

 

 

 

30번 국도 ~ 

 

경상북도 김천땅에서 만나는 백두대간 첫 안내판 ~  

 

 

 

 

대덕산에 올라 정기를 듬뿍 받아서 독기(毒氣)를 버리고 덕기(德氣)를 채웠다.

넉넉한 마음으로 백두대간 또 한 구간을 마친 산행이다.

오늘도 감사한 하루다.

 

 

 

 

 

EN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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