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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정맥/백두대간~

백두대간 9구간(교육원~남덕유산~동엽령) ............ 2010.6/27

by 마루금 2010. 6. 25.

산행날씨 : 평지 기온으로 21℃ ~ 26℃, 가벼운 비 & 구름

산행코스 : 조산마을(560여m) ~ 교육원삼거리 ~ 서봉/장수덕유(1492m) ~ 남덕유산(1507m) ~ 월성치(1240m) ~ 삿갓봉(1418m) ~ 삿갓골대피소(1280m) ~ 무룡산(1492m) ~ 칠이남쪽대기봉/돌탑(1420m) ~ 동엽령(1260m) ~ 칠연폭포갈림길 ~ 안성탐방지원센터(600여m)

산행거리 : 도상 21.8Km (대간거리: 14.1Km / 접속거리: 조산마을 3.2Km, 안성탐방지원센터 4.5Km)

산행시간 : 8시간30분 (월성치 대기시간 1시간20분 포함)

산악회따라 ~


백두대간 아홉 번째 출정이다. 옛날 백제와 신라로 갈렸던 덕유산 주능선을 올랐다. 장수와 함양의 경계선을 따라 산행을 시작, 무주와 거창 경계의 산마루로 넘어갔다. 왼쪽발은 전라도, 오른쪽발은 경상도 땅을 밟으면서, 2개 도(道)와 4개 군(郡)의 경계 마루에 발자국을 찍었다. 아울러 지난 8구간에서 미답으로 찜찜하게 남겨두었던 서봉~남덕유산~월성치 구간도 이번 9구간에 포함시켜서 깨끗하게 마무리했다.

  

본래의 산행일정보다 하루 이른 토요일, 동서울에서 심야버스로 혼자 출발했다. 월드컵축구 8강을 가리는 우루과이와의 대전이 있던 날인데, 한 시간 일찍 동서울에 도착해서 전반전 관전을 마치고, 후반전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관전했다. 아쉽게 2:1로 패했지만 모든 걸 다 보여준 태극전사들의 후련한 게임이었다.

 

함양에 도착하니 새벽3시, 시내 찜질방에서 짧은 수면을 취한 뒤 선지해장국으로 아침 요기를 마치고, 영각사행 첫 버스(6시30분)에 올랐다. 함양에서 시외버스와 군내버스정류장 위치가 서로 달라서 미리 위치 파악을 해두지 않으면 차를 놓치는 실수가 생길 수도 있다. 첫 버스가 조산마을까지만 운행된다고해서 교육원까지 이어지는 1.4Km의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서 올라야 했다. 찜질방(\7,000/터미날에서 3분 거리), 선지해장국(\6,000), 군내버스(\2,800/함양~조산마을/80분 소요) 

 

영각사와 덕유교육원 갈림길 ~

  

교육원 정문 ~ 

 

교육원 본관 

 

경상남도 덕유교육원 / 1983년 개원 /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소재 / 이웃해서 신라 때 창건된 고찰 영각사가 있슴.

 

교육원 야영장 ~

 

글씨가 지워진 들머리 이정표 ~

 

들머리 ~ 

글씨가 지워진 이정표에서 숲길로 내려선다. 개울을 건너면 임도가 나타나는데, 이 임도를 가로질러 숲길로 올라선다. 첫 번째 만나는 숲속 갈림길에서 어느 쪽이던 상관이 없지만 우측길을 따르는 것이 서봉에 더 가깝다.   

 

 

대간길과 만나는 교육원 삼거리 ~

    

구름뿐인 전망대바위 ~

 

 

서봉 직전의 바위지대 ~

 

 

 

서봉(장수덕유산) ~
장수의 5대 명산 중 한 곳이다. 장수지역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장수덕유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남덕유산에서 서쪽에 위치한 까닭에 '서봉'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통용되고 있다.

 

 

 

서봉을 내려서는 철계단 ~

 

남덕유산 정상 이정표 ~

 

남덕유산(동봉) ~
서봉과 함께 덕유산 남쪽을 대표하는 봉우리이다. 장수덕유산을 '서봉'으로 남덕유산을 '동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남덕유산 등산길을 다시 구분해서 상봉(정상), 중봉, 하봉으로 나뉘어 부르고 있다. 행정구역상 동쪽은 거창군 북상면, 남쪽은 함양군 서상면, 서쪽은 장수군 장계면, 북쪽은 장수군 계북면이다.

  

  

남덕유산이 대간길에서 조금 비껴나가 있어 백두대간에서 제외시키기도 하는데, 현재의 대간길이 정상을 거치지 않고 비껴서 갈뿐, 대간의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견이다. 함양쪽은 덕유교육원과 신라 고찰인 영각사가 있고, 거창쪽에는 사선대와 분설담을 거느린 월성계곡과 황점마을이 있다.

 

남덕유산을 본래는 황봉(黃峰), 또는 봉황산(鳳凰山)으로 불렀으나 일제시대에 일인들이 지도를 만들면서 남덕유산으로 이름을 고쳐서 표기했다.

 

 

 

남덕유산 정상에서 영각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계단길 ~  

 

 

 

교육원에서 월성치까지 산행시간으로 2시간40분 소요되었다. 월성치에서 일행과 합류하기로 약속되어 늦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올랐다. 교육원에서 8시 출발 / 서봉 9시45분 / 남덕유산 10시17분 / 월성치 10시40분에 도착. 

 

월성치에서 핸디폰 감도 문제로 교신이 원할치 못했다. 1시간20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통화가 되었는데 일행들은 삿갓재로 올랐다는 것이다. 바람이 세게 불어 추위를 면키 위해 우의를 입었다가 다시 베낭을 정리하고서는 일행과 합류키 위해 부지런히 뒤쫓아 갔다.  

 

 

 

월성치(月城峙) 유래 ~
남덕유산과 삿갓봉 사이의 잘룩한 허리목이다. 장수군 양악리와 거창군 월성리를 잇는 고개로서 월성리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월성리(月星里) 유래 ~
달(月)이 마을 앞 성삼봉(城三峰)에 비친다 하여 월성(月城)이라 했던 것을 달월, 별성 자를 써서 月星으로 고쳤다. 창선리쪽에서 호리병 입구같은 병목을 지나 월성리로 들어가는데, 그 안은 다시 넓어지면서 농경지가 펼쳐진다.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보이는 마을로 밤이면 달과 별만 하늘에 가득하니 月星이라는 이름도 잘 어울린다.

 

황점(黃店)마을 유래~
월성계곡 상류 맨 끝에 위치한 깊은 산골 마을이다. 옛 이름이 삼천동(三川洞)인데, 바람골, 삿갓골, 감초골 등 3계류가 합류되는 지점으로 생긴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쇠가 많이 났던 곳으로, 봉황산(鳳凰山) 아래 쇠를 만드는 점이 있다해서 '황점'이라 불렀다. 현재는 청소년 여름휴양지와 민박촌이 있다.

 

월성치 ~

 

 

돌이정표 1 ~

 

 

 

 

돌이정표 2 ~

      

삿갓봉(笠峯) ~
남서쪽의 금원산 앞으로 황점마을이 내려다보일 것인데 오늘은 구름에 가렸다. 산세가 날카롭고 삿갓처럼 생긴 봉우리라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 동북쪽은 삿갓재, 남서쪽은 월성치가 위치한다.

 

 

 

 

삿갓재대피소 ~ 

 

 

 

 

  

 

 

 

무룡산(舞龍山) ~
'용이 춤추는 모습의 산'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거창의 산수마을 사람들은 무룡산을 '흰덤이' 또는 '흰덤뿌더기'라 불렀다. 본래 이름은 불영봉(佛影峰)인데 일제시대에 일인들이 무룡산(舞龍山)이라는 이름으로 고쳐서 기록했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으며, 덕유산 줄기 중간에 위치해서 '중덕유산'으로 취급한다. 

 

 

무룡산 정상에서 '정맥산우회' 바닥지를 만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시간이 적혔는데 내가 도착한 시간과 30분 차이가 난다. 부지런히 뒤쫓아 가면 동엽령 부근에서 만나거나 용추계곡 하산길에서는 만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무룡산 내림길의 계단 ~

 

 

칠이남쪽대기봉 ~

정상석이 없는 고도 1420m 지점의 돌탑봉이다. 덕유산에서 돌무지탑이 쌓여 있는 봉우리는 '칠이남쪽대기봉' 밖에 없다. 이름 유래는 괘팍한 작명법의 산이름이다. '칠연폭포 이남쪽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를 줄여서 붙인 산이름이라고 한다. 거창군 북상면 산수리 삼태동의 진산인 '칠이남쪽대기봉'에서 동쪽 가까이 하늘을 나를 듯한 거북바위가 있다는데 구름때문에 관망하지 못했다.

 

칠이남쪽대기봉 ~  

 

1380봉 ~

 

 

 

오늘은 구름을 밟고 산에 올랐다. 산 위에 구름이 얹혀 있고, 그 구름을 내가 밟았다. 내가 밟았던 구름은 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이 되기도 했다.    

                                         

 

동엽령에 도착 ~

나무데크 쉼터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다. 직감적으로 일행들이라 여기고, 디카로 촬영을 하는데 박수소리가 터진다. 대간길 진행을 여기서 종료하고, 일행과 합류하여 용추계곡을 내려서는 것으로 산행을 마감했다.

 

동엽령 ~ 

 

동엽령(冬葉嶺) ~
무룡산과 백암봉 사이 안부의 허리목이다. 무주군 안성면 용추계곡과 거창군 병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근처에 샘터와 야영장이 있고, 사방 널리 퍼져있는 원추리 군락으로 유명하다. 동엽령(冬葉嶺)은 '겨울 잎'으로 해석되지만 그 유래에 대한 기록은 명쾌하지 않다. 거창쪽에서는 '동업이재'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거창군사(居昌郡史) 자료에서 '동업이재'라는 글이 한 토막 실려 있을뿐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재이다. 재로 오르는 병곡 대하골에는 옛날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다.'

 

 

                           

연리목(서어나무와 소나무의 교접) ~  

 

 

칠연(七連)폭포 ~

백옥같이 맑은 물이 일곱 개의 못에 담겨 잠시 맴돌다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쏟아지기도 하면서, 일곱 폭의 아름다운 폭포를 만들어 낸다.

 

 

 

칠연(七淵)계곡 ~

드라마틱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무주군지(茂朱郡誌)'에 소개된 전설로서 내용은 대강 이렇다. 옛적 한 도사가 있었다. 신선이 되길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천제(天帝)에게 기도하며, 7년간 수도한 끝에 그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우화등선(羽化登仙)하기 위해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 오르는 날 새벽이었다. 어느 부잣집 앞을 지나는데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허기를 참지 못한 도사는 밥 한 술을 먹게 해 줄 것을 이 집에 청했다. 측은히 여긴 이 집 며느리가 도사의 청을 시아버지께 전했다. 노랑이로 유명한 시아버지는 '아침에 남에게 밥을 주면 재산이 축난다'고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는 도사를 밀쳐 그만 개울에 빠지게 했다. 화를 이기지 못한 도사는 며느리를 집 밖으로 불러낸 뒤 도술로 큰 물을 일으켜 집을 통째 떠내려 보냈다. 그때 이곳에 폭포와 소가 생겨났다. 경거망동한 도사는 천제에게 혼이 난 뒤 다시 7년을 수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제의 허락을 받아 향적봉에 올라 신선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안성탐방지원센타 ~

 

END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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