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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정맥/낙남정맥~

낙남정맥 7차(발산재~오봉산~여항산~서북산~대부산~한치재) .... 2009.07.12

by 마루금 2009. 7. 13.

산행코스 : 발산재(110m)~8km~527봉~1.4km~오곡재(360m)~1km~미산령(610m)~1.3km~여항산(770m)~4.3km~서북산(738.5m)~ 3.5km~대부산(649.2m)~2.1km~한치재(150m)

산행거리 : 21.6Km

산행시간 : 8시간 21분 (휴식 20분 포함)

산행인원 : 산악회따라

 

<구간별>

03:45  발산재(2국도)
05:25  363봉
06:00  356봉/ 식사 20분

06:38  큰정고개

07:00  오봉산 갈림길(첫 이정표)
07:09  527봉(삼각점, 측량폴대)
07:23  오곡재(비실재)
07:43  557봉
08:11  미산령
08:28  돌탑봉
08:44  배능재

08:58  헬기장
09:00  여항산(770m)
09:29  소무덤봉(668m)

09:35  헬기장
09:47  706봉
09:57  이정표(옛약수터산장)

10:23  서북산(738.5m), 삼각점
10:41  버드내고개
10:55  갈밭고개
11:27  대부산(649.2m)

11:37  봉화산 갈림길
11:50  안부사거리

11:59  335봉
12:06  한티재(진고개) / 79국도


일기를 예측할 수 없는 본격적인 장마철이다. 출발 당일인 토요일 밤까지 기상예보를 기울이며 폭우를 우려했다. 그러나 산행지가 될 경남 마산과 함안지역은 타 지역보다 비가 적을 거라는 소식을 접수했다. 예상 밖으로 산행이 끝날즈음만 비를 뿌렸고, 몸을 날려보낼 것같은 바람이 산행내내 불어서 복병인 더위도 달아났다.

 

발산재에서 2번국도 지하통로를 통과 ~

 

정맥길은 공중화장실 뒤로 ~ 

 

발산재를 시작으로 363봉에 이르는 동안 어둠 속을 지났다. 오곡재까지 이름을 가진 산이 없고 능선도 험하진 않았다. 하지만 마산시에서 벌인 간벌사업으로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쓰러져 등산로를 막아 마치 장애물 경기를 펼치는 듯 했다. 이 구간에서는 마루금 오른쪽 아래로 임도가 큰정고개까지 이어지는데 힘에 부칠 경우는 이 임도를 따라가도 된다.  

 

 

첫 번째 만나는 이정표, 오봉산 갈림길 ~   

 

527봉 삼각점 ~ 

 

527봉 측량폴대 ~ 

 

오곡재 이정표 ~ 

 

오곡재 ~ 

 

미산령 이정표 ~ 

 

미산령 ~ 

 

대충 10여 기쯤 되는 돌탑군이다 ~ 

 

배능재 이정표 ~ 

 

헬기장 ~ 

 

얼굴 모양의 바위 ~ 

 

여항산(艅航山 770m)

경남 함안군의 진산으로 여항면 주서리 일원에 위치한다. 6.25의 격전지였으며 갓바위로 알려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각데미 혹은 곽데미산으로도 불렀다. 여항산의 본래 지명은 알 수 없지만 조선 선조 16년(1583)에 한강 정구가 함주도호부사로 부임해서 이 산을 배 '艅' 배 '航'자로하여 지은 이름이라 전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배가 다니는 곳은 낮은 곳을 의미한다 하여 남고북저한 함안의 지명에 적용한 것이다.

 

 

휘~익  휘~이익 ~~ 몸을 날릴 것같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정상에서 모처럼 하나 찍은 인물사진이 모자가 벗겨져서 이상한 폼으로 되었다. 오랫만에 만나보는 바위능선이라 암릉의 재미를 기대하고 올랐지만 습기와 바람이 심술을 부려 기회를 놓쳐버렸다.

 

 

코바위 뒷쪽 이정표 ~ 

 

여항산 내림길 ~

 

 

헬기장 ~

 

여항산의 능선들 ~ 

 

멀리 바다가 잠간 보였다.

 

 

 

서북산 전적비 ~ 

 

 

서북산(738.5m)
여항산에서 마산과 함안 경계를 따라 동남으로 뻗어내려 이룬 산봉이다.
진북면 서북쪽에 위치하여 서북산이라 했다는 유래가 있으며,  전형적 내륙산으로 산세가 전체적으로 부드럽다. 6.25 동란의 격전지로 뼈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했던 1950년 8월, 미 제25사단 5연대가 북한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의 총 반격 작전을 가능케 했던 곳이다.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 대위와 100여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적비가 있다.

 

 

서북산 헬기장 ~ 

 

서북산 삼각점 ~

 

버드내고개 이정표 ~ 

 

버드내고개 ~ 

 

갈밭고개 임도 ~ 

 

 

봉화산 분기점 ~ 

 

한치재 ~ 

 

한치재(진고개) 이정표 ~ 

 

한치재(진고개) ~ 

 

이방실 장군
함안 사람들은 이방실 장군을 을지문덕이나 이순신에 필적하는 인물로 추앙하고 있다.
고려 공민왕 때 20만 무리를 이끌고, 수도 개성을 침략한 홍건적의 난을 평정한 맹장 중 한 사람이다. 당시 3원수로 불렸던 맹장은 이방실을 필두로 안우, 김득배 등이다. 이방실 장군은 충렬왕 24년(1298년)에 여항면 내곡마을에서 태어났다. 47세 때 원나라로 볼모로 끌려간 충목왕을 뛰어난 지략과 무용으로 보필한 공로가 인정되어 정 5품 중랑장에 올랐다. 그 후 호군과 도지휘사로 무인생활을 하던 중 홍건적의 난이 발생, 이를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말년에는 대역죄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조선조에 고려왕조를 지킨 16명의 공신 중 한 명이 되어,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함안이씨 중 시조이기도 한 장군의 신도비는 이곳 군북면 소포리에 있다.
 

이방실장군 태역비 ~ 

 

 

산행을 마치고, 진고개휴게소에 도착, 피로를 풀던 중 비보를 접했다.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좌 완등을 위해 도전 중이던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세계에서 9번째 높은 낭가파르밧(8,126m) 등정을 마치고, 11일밤 C3에서 C2로 하산하던 중 C2를 약 100m 앞둔 고정로프가 없는 나이프릿지를 통과하다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동료들과 인수봉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여정길에서 고미영씨를 만난 적이 있다. 동사무소에 갔더니 얼굴이 쬬콜릿 색깔이라 시골에서 농사짓다 온 아주머니로 알고 면사무소로 가보라던 농담으로 주변을 웃기기도 했다. 가끔 메스콤을 통해 소식을 접하지만 바위 앞에서의 당차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힘찬 기합소리가 귓전에서 맴도는 것같다. 비록 11좌 등반으로 끝을 맺어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산악계의 큰 별로서 무릇 산악인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겨질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N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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