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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령이름들~

차령(車嶺, 충남 천안/공주)

by 마루금 2007. 6. 13.

  

차령(車嶺) 180m

 

충남 천안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남하하다가 행정리(杏亭里)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갈라지며, 여기서 새로 시작되는 23번 국도를 따르면 만나게 되는 령(嶺)으로 천안(天安)과 공주(公州)의 경계에 걸쳐있다. 


이 고개에서 남으로 내려간 지점이 광정(廣亭)인데 지금은 큰 도심지가 되어있지만, 옛날에는 조그마한 마을과 조선조 때 장이 섰다는 동쪽 2백m 지점의 큰 마을 등  2개의 마을로 되어 있었고, 여기서 도로는 다시 공주행과 마곡사행 등 2개로 갈라져 있었다.

 

차령은 이조 때 호남 길손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한양을 오르내리는 호남 길손들은 이 재를 넘어야했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북상을 하던 도중에  공주에서  모이게 되고,  공주쪽에서는 금강(錦江)을 건너는 나룻배를타기 위하여 공주성(公州成) 북쪽에 기슭에 있는 공북루(拱北樓)에서 검문을 받게 되어 있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면  현재의 국도가 아니고 약간 동쪽으로 계속 뻗어있는 산줄기의 옆을 끼고 나 있던 길을 따라 북상하다가 광정 장터 거리를 지나 차령을 넘었다고 한다. 따라서 걸음이 빠른 젊은이들은  한달음에 광정까지 가서 요기를 하고 차령을 넘어 천안삼거리까지 다다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공주와 광정 중간에 있는  요룡리(要龍里)나  화봉리(花鳳里)에서 요기를 하고 광정으로 갔다 한다.  당시 요룡리나 화봉리 큰 길가엔 여러 가지 거수(巨樹:큰 나무)가 많아 쉬고가기에 알맞았고, 떡장수를 위시한 장사꾼들 또한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안 약간 남쪽에서 급히 서쪽으로 굽이를 튼 것이 차령산맥(금북정맥)이고, 한편 천안~공주간을 다니는 길손들은 그 산맥을 넘어야했으므로 자연히 생긴 것이 차령이다. 그 마루턱에 서면 천안쪽은 야산들이 시야를 막아주지만 공주쪽은 달랐다.공주에 이르는 무려 50여리 들판이 탁 트이고, 조상대대로 이어받은 기름진 땅이 한없이 믿음직한 모습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옛 차령을 이용할 이유가 거의 없어졌다. 2001년 4차선 신도로가 개통되었고, 옛차령 아래로 터널이 뚫린 것이다.
옛 선인들의 애환이 잔뜩 서린 이 고개는 이제 뒷켠으로 물러나 한산하기 그지없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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