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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령이름들~

신리재(新里재, 강원도 삼척)

by 마루금 2007. 5. 23.

  

 

신리재(新里재) 830m

 

5.16 직후 국토건설대가 제주도의 한라산 횡단도로와  이 新里재 확장공사로 양분하여 수고했던 곳이다. 정확히 동서로 뚫린 이 령(嶺)은 서쪽 태백선 통리역에서 삼거리인 신리까지 이어지는 령으로 통리쪽별것도 아니지만, 신리쪽은 그야말로 99 굽이에 가깝다. 그 당시 토건(土建)에 쓰이는 기계가 매우 부족했던 때였으므로 젊은 혈기의 건설대가 아니었으면 완성이 쉽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신리재의 특색이라면 동서의 색깔이 판이했다는 점이다. 서쪽은 일찌기 현대가 정착었지만,동쪽은 현대 속에서 4백여년 전의 아득한 옛날이 공존하고 있던 곳이었다. 이중벽에 불을 때서온돌을 대신했던 콧굴이라는 특이한 건축 구조와 지붕은 기와 대신 나무 너와를 썼고,  방아는 그야말로영원한 자동식인 물레방아와 괭이방아를 사용했던 그 옛날의 구조를 간직한 너와마을이 있는 것이었다.그러한 구조를 가진 가옥들은 4km 긴 거리를 내려오면서도  간혹 볼 수 있었고,  특히 신리 삼거리에서좌측으로 갈라져 삼척으로 넘어가는 연변의 마을인 양자말과 문이골에서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이곳의행정구역은 도계읍(道溪邑)인데, 실제로 도계읍과는 10km나 떨어진 극히 후미진 곳이란 점에서 신경이쓰여지기도 했던 신리재... 이래저래 흥미있는 령이 아닐 수 없다.


화전에 의한 산불이 잦아서였던지 부싯골이라 불렸던 신리(新里)는  2002년부터 오지마을의 티를 벗기시작했다.  너와집이 지방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아예'너와마을'이란 이름을 붙여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산골마을의 체험 사업을 시작하고, 인터넷을 통해특산품을 판매하는 등, 마을을 외부에 알리면서 완전한 '정보화 마을'로 탈바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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