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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령이름들~

비행기재(麻田嶺, 강원도 평창/정선)

by 마루금 2007. 5. 16.

 

 

비행기재 (마전령:麻田嶺)  618m

 

'비행기재'라고 하면 42번 국도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험난한 곳으로 꼽고 있다. 평창이나 제천방면으로 나들이 가는 정선사람들을 위해서 처음 열어놓았던 차량도로 고개이다. 운동장처럼 넓혀놓은 령(嶺) 마루턱에 올라서면 동쪽인 정선(旌善)쪽으로 정선군 정선읍이란 표지가 있고, 반대쪽인 영월(寧越)쪽으로는 평창군 미탄면이란 표지판이 있다.


옛날(6.25후) 정선을 떠난 버스가 마루턱에 이르렀을 때,  어떤 손님이 거기서 내렸는데, 버스가 고개를다 내려가서 보니, 아까 마루턱에서 내렸던 손님이 버스보다 먼저 내려와 도착해있더라는 것이다. 버스기사가 놀라며 "비행기 타고 왔소?" 하고  손님에게 물어보며 말했다는데서  비롯하였다 한다. 즉 버스보다 더 빠른 것은 비행기 밖에 없었으니 그런 말이다.

 

그러나 이유는 간단하다. 워낙 커브가 많고 경사도가 심하므로 버스는 굽이길을 빨리 내려올 수 없었지만,  한편 사람들이 다니는 지름길은 거리가 굉장히 가까웠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 때부터 마전령(麻田嶺)이란 말은 쏙 들어갔고,  대신 '비행기재'라는 이름으로 바뀌고말았는데,  실제로 가서 보면 잘 알게 되어있다.

 

즉 영월쪽에서 고개로 가는 버스 길은 령 밑에까지 쑥 들어갔다 나오면서 숫하게 많은 커브를 돌아 올라가야 하는데,  사람이 다니는 지름길은 쑥 들어간 그 지점부터 직선으로 나 있으니  더구나  내려올 때는더욱 쏜살같이  내려올 수가  있는 것이다.  쑥 들어간 지점도 백운리(白雲里)에 속하지만,  민가가 있는백운리는 거기서도 1km 정도 더 내려간 지점에 있다.


이 고개에 차량도로가 뚫리고서 처음에는 '지에무시(GMC)'라는 산판용 트럭만이 줄곧 오갔다. 그러다가 강릉에 본사를 두고 있던 30인승 완행버스(강원여객)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54년부터. 그때까지 고개 아래의 사람들은 트럭이라도 얻어타지 못하면 미탄까지 20릿길을 걸어다녀야했다. 고개까지는 평창의 미탄쪽보다 정선쪽이 두 배 가량이나 더 멀다. 1971년 8월에 국도로 승격되었으나 지금까지 여전히 비포장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1988년 12월에는 비행기재 아래로 터널이 뚫리고,  마전~ 벽골 골짜기에  새로운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신설되면서 50여년이 넘는 세월의 애환을 담고 있던 옛길은 이제 쓸쓸히 뒤로 물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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