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공유/뫼이름들~

'들'의 뜻으로 쓰여진 '다리'...

by 마루금 2007. 4. 6.

 

 

'작은 들'의 뜻인 '잔다리'

'달'이 연철되면 '다라' 또는 '다리'가 된다. 그래서 '다랏골'(다락골), '다리실' 같은 땅이름으로 옮겨진다. '달'의 연철인 '다리'는 묘하게도 다리(橋/교)와 음이 같아 진짜 다리 관련 땅이름과 섞여 '다리'가 어떤 뜻으로 븥여진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가 않다. '다리', '다라', '다래'로 시작하는 땅이름은대개 '달'을 그 뿌리로 하는 것이 많다.

 

다랏골 : 달 + 아(의) + 골
다라실 : 달 + 아(의) + 실
다래울 : 달 + 애(의) + 울
다릿개 : 달 + 이(의) + 개
다리실 : 달 + 이(의) + 실
다릿목 : 달 + 이(의) + 목

 

이들 땅이름은 한자로 교곡(橋谷: 강원도 삼척 도계읍 마교리 등), 월곡(月谷里: 충남 당진 당진읍 등), 월송(月松洞: 충남 공주 등), 교포(橋浦里: 경기도 평택 오성면 등), 교항(橋項: 인천 강화 양사면 교산리 등)같은 이름이 되어 전국에 널려 있다.

 

그런데 이들 땅이름에서 '다리'가 들어간 것이 해석상의 문제가 된다. 그 '다리'가 내나 강에 놓인 다리를 뜻하느냐, 아니면 '들'의 뜻인 '달'의 연철형이냐 하는 점인데 전국에 퍼져있는 '다리' 지명들을 대개는 다리(橋/교)의 뜻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판교(板橋)라는 땅이름도 그 하나의 예, 그러나 이 지명은 다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원래 '너더리'(너덜)로 불려왔던 것이 '널다리'로 잘못 해석, 한자로 옮길 때 널을 판(板)으로, 다리를 교(橋)로 취했기 때문이다. '너덜'은 '넓은 들'의 뜻이다. 넓들 > 널들 > 너들 > 너덜(너더리) 판교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을 비롯, 행정지명만도 전국에 5개나 있다.

 

충남 예산의 삽교(揷橋)는 '삽다리'가 원래 지명이다. '삽다리'는 '삿다리'로 '사이(샅)의 들'(間坪)이란 뜻을 담고 있다. 삽을 놓고 건너 다녔던 삽다리도 아니고, 섶으로 만든 섶다리도 아니다. '잔다리'라는 곳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등에서 세교(細橋), (棧橋里) 등의 한자 지명을 달고 있지만 다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잔다리'는 '잔들'  즉 '작은(좁은) 들'의 뜻이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한다리'(白橋), 충남 당진 석문면의 '다리길'(橋路里)도 들 관련 땅이름이다.

 

 

'들안'이 '달안'으로

'달', '다리'가 들(野)의 뜻으로 담아 있음직한 곳을 몇 군데 소개한다. 경기도 안양시의 평촌동 일대, 이 곳은 북쪽과 동쪽에 각각 관악산과 모락산이 가까이 있고, 서쪽으로 수리산이 제법 멀리 보이는 너른 벌판이었는데,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있다. '벌말'(坪村洞), '날미'(飛山洞), '한벌말'(冠陽洞), '범내'(虎溪洞) 등에 살았던 토박이들이 새 도시 형성으로 농토를 내어놓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 벌판에 조그마한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마을이름이 '달안이'였다. 10여 채의 집들로 이루어졌던 마을인데 도시계획이 이루어지기 전에 찿아 갔을 때에는 서너 집 정도의 빈 집이 있었는데 보상금을 받고 그 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 당시 마을에서 박재웅이란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애기로는몇 달 안에 '달안이'마을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관에서 계속 이주를 독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달안이'라는 마을이름이 어떤 뜻으로 붙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어렸을 때 들었다는 어른들의 애기를 인용하였다. " 여기가 평평한 들 가운데라 비만 오면 물이 안 빠져 길까지 진구렁창이었대요. 그래서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살기 힘든 동네라고  딴 곳으로 달아났답니다. 사람들이 잘 달아나는 마을이라고 '달안이'라고 했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역시 이 마을에서도 믿기어려운 지명 유래를 남기고 있다. 이 마을은 들의 안쪽이었다. '달안이'는 아마도 들 안이란 뜻의 '들안이'였을 것이다.

 


들 마을에 많은 '다리' 이름

다음에는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보은읍 외속리 방향으로 나가 보았다. 이 곳에는 '배다리', '긴다리','방아다리' 등 '다리'가 들어간 땅이름이 많아 여기서의 다리가 어떤 뜻을 담았는지를 알고자 해서였다. '긴다리를 먼저 들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보은군 외속리면의 구인리, '긴다리'라 해서 먼저 마을에서 다리를 찿아보았는데, 그런 다리가 눈에 띄질 않았다. 다리가 놓일 만한 큰 내도 없었다. 마을 어른들을 만나 물어보니 다리 이야기는 하질 않고, 마을의 한자식 이름 구인(求仁)에 대해서만 열심히 설명하였다. '긴다리'라는 이름이 다리가 긴 것이 있어서냐고 거듭 물었다. "긴 다리는 있을 리도 없죠. 옛날에는 있었다고 듣긴 들었는데..."  그러나 그 긴다리가 있었을 만한 큰 내가 이 마을엔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긴 다리가 '장교'(長橋)의 뜻이 아닌 것이 틀림 없다. 이 곳의 들이 북쪽 말치(말티고개) 골짜기까지 길게 뻗은 것으로 보아 '긴다리'는 '긴들'(長坪)임이 확실했고, 이곳의 행정지명 '구인'은 '긴'을 소리빌기로 취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찿아들어간 곳은 '방아다리', 625 직후 까지도 10여호나 있었다는 이 마을은 살기가 어렵다고, 한 집 두 집 빠져나가고, 7채의 집밖에 남지 않았다. 몇 해를 비어 놓아 다 헐어진 집도 보였고, 집터였던 곳의 돌무더기들이 군데 군데 보였다. 그나마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주로 60살 이상의 노인이었다. 읍내 예식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한 노인을 만나 '방아다리'란 이름을 가진 이 마을의 이름 유래를물었으나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 마을엔 다리도 없다고 했다. 다만 들 모양이 방아처럼 생겨서 '방아'라는 이름이 붙었을 거라는 설명에는 수긍이 갔다.

 

다음으로 구인리에서 직선 거리로 서쪽으로 3km 떨어진 '배다리'를 찿았다. 그렇지만 곧은 거리로는 가는 길이 없어 보은 읍내를 거쳐 10k의 길을 돌아갔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보은읍 월송리(月松里). 이 곳의 이장이었던 김영년씨를 만나 애기를 들어보았으나 다리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가 없었다. "비가 엄청나게 온 해에 이 앞의 들판이 완전 물바다였답니다. 물이 오랫동안 안 빠져서 마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농사를 지었다는 거죠. 그래서 마을 이름에 '배'자가 붙었대요" 만일 이 곳이 물바다였다면 이 아래쪽의 보은 읍내를 완전히 쑥밭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곳의 '배다리'도 역시 다른 곳의 배다리처럼 '뱃들'(밧들)이 원이름일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또 딴 마을을 향했다.


글/지명연구가   배우리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