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공유/산행상식

단독산행 예찬론

by 마루금 2007. 3. 4.

 

본 글의 원저자는 "공용현 님" ...

1990년 3월 '월간山'에 실렸던 글이다. 산에 거의 미쳐있을 당시 가슴 깊이 와 닿는 이 글을 처음 대하고서 한껏 매료돼 따로 메모를 해 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블로그가 생기게 되고, 그러면서 산에 관련된 자료들을 다시금 정리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 글도 다시 훓어보게 돼 그냥 묻어 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본 블로그에 올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이 글이 많은 산악인들에게 읽혀지면서 깊은 감동을 주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 글을 옮길 당시 출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마지막 부분에 '山 ...'이란 명칭만을 사용해서 게제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이 글의 원작자이신 '공용현 님'으로부터 우연찮게 연락을 받게 되었고, 서로 전화 통화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허락 없이 그동안 사용해 온 데 대해 정중히 사과 드릴 기회가 생겼고, 양해도 구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 글을 계속 계제할 것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늦게나마 원저자를 알게 된 이상 이 글의 출처를 명확히 해두려 한다. 그리고 다시금 더 깨끗하고 보기 좋게 이 글을 정리하고, 모양을 다듬어서 애정을 깆고 올려본다.

 

 

내용이 너무 좋아서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운 글입니다. 자물쇠로 잠겨두기에도 아까운 글임에 틀림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원저자인 공용현 님께서 산을 좋아하는 모든 산악인들을 위해 기꺼이 이 글을 기증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홀로 산과 하나가 되어 . . . .                                              글/ 공용현

등산의 뜻이  자연과의 교감과 영육의 단련에 있다고 한다면,  여럿이 몰려갈 때보다  혼자 오를 때 한층 더 깊게 그 본래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룹산행을 하다가 나중에 단독산행파로 나서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인 만큼 한결 위험하고 까다로운 것이 또한 단독산행이기도 하다. 

 

산을 다니다 보면 무리와 동떨어져서 홀로 산행을 즐기는 단독산행(單獨山行)의 매니아들이 더러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말하는 단독산행이란 집 뒷산을 오르는 새벽의 조기산행이나 건강, 스트레스의 해소를 위해 별다른 생각없이 도시 근교의 산을 산보삼아 걷는 산행, 혹은 산에는 가고싶지만 동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산행을 하게되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 적어도 산에서 홀로 하룻밤 이상을 지내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산행이다. 이렇게 자신의 산행방식에 대해 뚜렷한 신념을 지닌 등산가들은 그 자유스러움과 순수함을 들어 단독산행이야말로 산생활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가장 멋진등산 방식이라고 예찬한다. 그러나 공동산행의 방식에 익숙한 대부분의 등산가들에게 있어서 단독산행이란 간혹 그것이 낭만적이고 유유자적하게 보일지라도 뭔가 유별나고 부자연스럽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공동산행을 통해서 통상 얻게되는 유쾌하고 건강한 산생활의 이점이 거기에서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홀로 무거운 베낭을 지고  묵묵히 산을 오르다가 계곡 어느 후미진 구석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는 사람에겐 삼삼오오 짝을지어 주고받는 대화의 즐거움도 없고, 일시적이나마 산이라는 환경이 빚어내는 톡특한 공동체적 삶을 통해서 다져지는 서로간의 친밀한 유대감도 있을리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부산한 움직임이 전혀 없는 불꺼진 텐트는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을씨년스럽고, 돌맹이 사이에 몇 가지 음식을 늘어 놓고  혼자 식사하는 모습은 유유자적은 커녕 쓸쓸하고 청승맞기조차하다. 더구나 동료가 있었더라면 능히 대처할 수 있었던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여  부상을 입거나 조난을 당하는 소식을 접할 때면 단독산행이란 무모하고 괴팍한 사람들의 산행 방식이라고 비난할 만도 하고, 적어도 파트너가 있는 두 사람의 산행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주위의 일상적인 시선과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독산행의 예찬자들은 불현듯 홀로 산을 찿아가 자유분방하게 산에서의 삶을 즐기다가 다른 사람과 나눌수 없는 혼자만의 기쁨을 안고 다시 도시의 삶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여기에는 마치 임어당(林語堂)이 다도(茶道)의 품격을 논할 때, 최고의 경지라고 극찬한 이속(離俗)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는 혼자 차를 마시는 것을 '이속'으로, 둘이서 마시는 것을 '한가'(閑暇), 셋 넷 혹은 그 이상을 '유쾌', '저속', '잡다'로 일컬으며 사람이 많을수록 흥취가 손상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이 누리는 혼자만의 즐거움, 공동산행을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지극한 기쁨이란 무엇일까? 홀로 산길을 걸으며 만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산이 지니고 있는 그 무엇이 본성적으로 소외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으로 하여금 홀로 그 품으로 찿아들게 하는가? 산행을마친 후 어떤 감정을 지니고 아랫세상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가져다주는 은혜로움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뚜렷한 해답과 정의가 없는 것같다. 이들은 공동산행의 번잡함과 소란스러움 그리고 여럿과 더불은 산생활에서 필연적으로 따르기마련인 규칙과 속박감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단독산행을 통해 맛보았던 체험이나 내용은 각자에 따라 서로 다르게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단독산행은 개인적인 산행이다. 따라서 공유할 수 없는 고유한 각자의 삶만큼 그가 산에서 본 조망(眺望)도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어찌보면 단독산행의 동기, 목적, 순수체험 등은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유사성만 있을 뿐 애당초 몇마디 말로써 그 본질을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다만 단독산행 신봉자들의 개별적인 경우를 듣고 음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일반론이 있다 할지라도 그 대부분은 개인적인 체험의 반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삶과 의식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떠난다.                              글/ 공 용 현

단독산행의 묘미는 완전히 떠남에서 비롯되는 해방감과 자유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또한 홀로 자연 속에 함몰되었다가  마주치게 되는 산을 통해  회복된 영혼을 지니고 되돌아 내려와야하는 삶에의 귀환도 있다. 이것은 현실의 삶과 서로 연결되어 계속적으로 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순환의 시작은 도시로부터의 완전한 떠남이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가 산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삶에서 맺어진 관계들, 즉 사람, 직장, 모든 규범 등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며, 즉 현실의 삶과 일상의 의식에서 완전히 떠난다는 것이다. 혼자가 되는 순간 언제나 처음은 쓸쓸하다. 베낭을 메고 홀로 집을 나설 때마다 흔히 이런 감상적인 분위기에 휩싸이고, 때론 팽팽한 긴장감으로 풀어내리는 허망함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허전함과 이완감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해방과 자유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혼자가 됨으로서 비로소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그야말로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세속에 찌든 상황에서 탈피하여 길을 걷게 될 것이고, 그 어떤 것을 만나게 되면, 그 만남은 전적으로  새로운 만남이 될 것이다. 세속의 철저한 이별 후에 새로운 만남이 시작 되는 것이다.

 

출발점은 등산로의 입구가 아니라 바로 집 앞이다. 홀로 산을 찿아가는 자는 자기집 대문을 나설 때부터 산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며, 산얹저리에 도착 했을 때 그 산행은 이미 중반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홀로 길을 떠난다. 해방된 마음으로... 어느 산으로 갈까..? 탈 것은 어느 것으로... 자가용, 아니면 대중교통을...?  버스를 탈까, 기차를 탈까..? 지금 곧 출발할까, 아니면 천천히...어떻게 결정하던지 자신의 자유다. 혼자 떠나니 기다릴 사람도 있을리 없고, 약속 따위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기 이를 데가 없다. 어느 정도의 정해진 산행계획도 있겠지만 그것은 발걸음을 구속할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가던 도중에 갑자기 계획을 바꾼다해서 대단한 사건이 될 것도 아니고, 그저 발길 가는대로 따르면 되는 것이다. 설악산을 가기로 마음먹었다가도 돌연 지리산으로 계획을 되돌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산행이란 어찌보면 우리의 인생과도 같은 것이다. 올랐다가 내려가기도 하고 쉬운 길도 지나고 힘든 길도 지나며 자신과 싸우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한다. 험하고 고된 여정을 끝내면 자신의 이웃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순환과정이 있다. 진정한 등산가라면 이러한 떠남과 되돌아옴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며, 더구나 홀로 산을 찿는 이는 누구보다도 이 과정을 잘 터득하고 있을 것이다.

 

단독산행은 시작부터 수많은 가변성을 지니고 유연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비록 며칠간의 휴가를 쪼개어서 원하는 산을 오르고자 하더라도 시간이나 계획에 쫓겨 너무 자신을 체찍질 하면 안된다. 우리가 가려는 산은 그 산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산이다.

                                                                                                                                                        

 

침묵 속에서 자연의 언어를 찿는다 . . .                                                글 /  공 용 현

 

단독산행을 즐기는 사람은 가능한한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을 택한다. 그것은 본성적으로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홀로 즐기는 산과의 집적적 만남을 주변의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산은 기묘하게도 여러 사람 앞에서는 좀처럼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가끔 산악회의 동료들과 어울려 산을 가거나 또는 혼자 갔더라도 인파가 붐비는 등산로를 따라 산을 던 경우, 산에서의 즐거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산과 올바로 마주친 적이 거의 없다고 생각되어진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주위의 사람들의 말소리, 발자국소리 등..... 어디 그 속에서 아침 햇살이 펼쳐지는 숲속의 그윽한 풍경이 보이고 나뭇잎 흔들리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리겠는가? 산은 주위의 인적이 사라졌을 때 슬며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속세의 혼탁함으로 뒤덮였던 눈과 귀를 열어놓는 것이다.

 

 

자연의 언어는 인간의 침묵 속에서 솟아 오르는 법 ~

 

우리가 자연의 품 속으로 몰입해 들어갈 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산의 정경이 보이고 산의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다. 지리산 한신 계곡을 오르다 들었던 얼음장 밑을 흐르는 이른 봄의 개울물 소리, 그 끊어질 듯 이어지는 생명의 노래소리, 소백산 비로봉 아래서 보았던 한여름밤의 화려한 별무리들. 흐르는 유성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오랫동안 경탄과 황홀감 속에 서 있었던가~ 낙조를 머금고 황금빛으로 흔들리는 천황산의 가을 억새밭은 어떠했던가 ~ 덕유평전의 새벽, 밤새 텐트를 뒤흔들었던 늦가을 바람이 자고난 후, 얼마나 안온한 기분으로 구수 밥 냄새를 풍기며 쉭쉭거리는 버너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던 것인가~ 백운동 계곡의 안개 속으로 자욱히 퍼져나가던 커피내음, 이끼낀 돌들의 촉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소리, 소리, 소리들 ~

 

 

이성과 의지는 가장 깊은 활동을 시작한다.

 

단독산행의 축복은 이렇듯 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조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산의 피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 감각이 이따금 기능을 멈추는 동안 이성과 의지가 내면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나의 지난 생활은 어떠했는가 ~ 가족들, 친구들을 사랑하고 잘 대해 주었던가~ 그 날 왜 조금만 더 참지 못하고 그다지도 심하게 다투었던가~ 이제 내려가면 무엇을 어떻게할까, 내 삶의 에 충실할 수 있을까~ 등등으로...

 

 

단독산행자는 작은 언덕도 한없이 높인다 ~

 단독산행에 있어서 산의 정상이 산행의 최종 목표치가 아니다. '가장 드높은 것은 가장 깊은 것으로부터 그 높은 것에 이르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니체(Nietzsche)의 말처럼, 홀로 산을 오르는 자는 자신을 실존의 가장 깊은 심연에 내던짐으로서 작은 언덕이라도 한없이 높게 만드는 자이다. 산을 내려올 때 마다 언제나 새로와지는 육체와 정신, 이것 때문에 단독산행의 예찬자들은 끊임없이 홀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닐까 ~

 

세속의 찌꺼기로 채워졌던 영혼의 잔을 깨끗이 씻어주었던 산행을 끝내고, 집 앞 대문을 밀고 들어 설 때마다 언제나 등 뒤엔 또다시 산의 부름소리가 들리고 내 텅빈 잔이 가득 채워져 옴을 느낀다.

                                                                                                                                                        ~ END

 

 

저자 < 공 용 현 >

한국등산학교 동창회보 '산학'의 과거 편집인을 지냈으며, 한국등산학교 총동창회 9,10대 회장을 역임했다.

90년4월 .... 한국등산학교 동창회, 초판 발간 <바윗길 - 인수와 선인의 암벽루트들>   
89년11월... 월간 사람과 산 <암벽등반의 본질 - 올라가는 것은 자유가 있다>
90년3월 .... 월간 山  신춘특집 <단독산행>
94년4월 .... 월간 사람과 산 <긴급동의/한국산악계개혁을촉구한다>
95년8월 .... 산학회보22호 <프리클라이밍의 두 얼굴>
96년5월 .... 산학회보30호 <왜 산을 오르는가? - 등반행위의 본질에 대한 斷想 >

 

728x90
728x90

'정보*공유 > 산행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피니즘의 효시  (0) 2010.06.19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0) 2007.11.22
단독산행 이렇게 한다.  (0) 2007.03.22
3월은 날씨 변화가 심한 달이다.  (0) 2007.03.01
해빙기 산행 이렇게 한다.  (0) 2007.02.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