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과 관련된 말

 

벼랑이 별(星)도 되고 보리(麥)도 되고... 

'벼랑'이나 '비탈'의 뜻은 한자식 땅이름에서 여러 글자로 나타난다.

 

 

천(遷) 

조선시대 정약용의 <아언각비>나 노사신 등의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벼루'를 천(遷)자로 취했음을 알려 준다.

   
"水出兩狹中 基兩厓迫水之路 ...遷方言別吾 (수출양협중 기양애박수지로 ...천방언별오)

"천(遷: 벼로, 벼랑, 빙애)이란 물이 양쪽 산골에서 나와 그 양쪽 언덕에 임박하는 길을 말하는데 ...천(遷)을 방언으로는 '벼로'(別吾)라고 한다.<아언각비 권2>   

 

"渡迷遷 ...石路索紆七八里 新羅方言 多以水崖石路稱遷 (도미천 ...석로색우칠팔리 신라방언 다이수애석로칭천)
"도미천은 7~8리나 얽힌 돌길이며, 신라 방언으로 물가의 언덕으로 돌이 많은 길을 천(遷)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 여주목 산천조> 

은성천과 문경천이 합치는  경북 문경 마성면 신현리의 물가 벼랑을  '팃재이(톳재이)배리'라 하는데, 한자로는 토천(兎遷) 또는 곶갑(串岬)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은 전설을 전해 주고 있다.

 

"고려 태조가 신라를 치러 가는데, 벼랑길에 막혀 어찌할 줄을 모르는 중에 산토끼가 벼랑위를 지나는 것을 보고 그 토끼를 따라 길을 찿았다. 토끼가 알려준 벼랑이니 토천(兎遷)이 된다."

'톳재이'는 '토끼'란 뜻의 사투리인데 이 전설은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이 책에서는 이 밖에도 견천(犬遷: 경남 합천군), 와천(瓦遷: 평북 창성군), 동천(銅遷: 함남 갑산군) 등의 천(遷)자 지명을 보여 주고 있다.

 

 

애(崖)

애는 물가 낭떠리지나 산지 언덕을 뜻한다. 이 지명은 특히 북한에 많아 황해도 황주군의 애촌(崖村), 평남 중화군의 애곡(崖谷), 함남 북청군의 구중애(九重崖 = 구즌비래), 단천군의 사애둔지(沙崖屯地) 등을 볼 수 있다. 전 한국지리교육회장  이영택(李泳澤)님은 애(崖)자 지명이 대개 물가 벼랑에 붙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별(別)/ 성(星)

'별'은 그대로 '벼랑'의 옛말이어서 '낭떠러지'의 뜻이 들어간 지명들에 별(別), 성(星)자가 더러 취해져 있다. 전남 승주군 별량면의 별량(別良)은 '벼랑'의 취음인데 이 곳은 고려 때 별량부곡(別良部谷)이었다. 평북 강계군 임관면 고개동의 별한(別汗)도'벼랑'을 표기한 것이다. 특히 산이 많은 북한에는 산양별(山羊別: 함남 장진), 적별(赤別: 함남 장진), 사양별(斜陽別: 풍산), 별하(別河: 평북 강계) 등별(別)자 지명들이 많은데 이들 마을은 각각 장진강, 허천강, 부천강 등의 강가에 있다. 평북 만포시에는 별오(別吾), 희천군에는 하별(河別), 강계군에는 적별간(積別干), 함남 학성군에는 청별안(靑別崖) 등의 지명이 있다.

 

'벼루'를 '별우'(別隅)로 취한 지명들도 북한에 많다. 강원도 금성군의 별우(別隅), 이천군의 갈별우(葛別隅), 평남 덕천군의 두별우(頭別隅), 함남 장진군의 독별우(獨別隅), 고별우(高別隅), 내별우(內別隅), 신흥군의 소별우(小別隅) 등이 그 예이다. '별'(벼랑)과 '별'(星)은 음이 같아서 성산(星山), 성곡(星谷), 성암(星岩) 같은 지명들도 나왔는데 이러한 지명들은 특히 전라/충청 지방에 많다.

 

 

연(硯)

물가의 낭떠러지도 벼루이고, 먹을 갈아 쓰는 도구도 벼루여서 벼랑의 뜻이 '연'자로 취해지기도 했다. '벼루말'로 불리던 곳이 연촌(硯村)으로 바뀐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비(飛)

비탈, 비레, 비랑 등의 '비'음을 취하는데 날비(飛)자, 비길비(比)자, 비파비(琵)자 등 여러 한자가 씌었지만, 이 중 가장 많이 쓰인 것이 날비(飛)자 이다. 그러나 비(飛)자 지명 중에는 대구시와 안양시의' 날비'(飛山)처럼 '높고 넓음'의 뜻을 가진 것도 있다. 이 밖에도 맥(麥), 사(斜), 비(榧), 화(禾) 등의 한자들이 지명에서 더러 '벼랑'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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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지명연구가   배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