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공유/뫼이름들~

별과 벼랑골

by 마루금 2007. 1. 12.

 

 

별과  벼랑골  

 

곧베루'와 '꽃벼루'

산이 많고, 골이 깊어 들어올 때는 울지만 오래 살다 보면 정이 들고 아늑해서 웃고 산다는 고장이 있다. 연암 박지원이 그의 작품 <양반전>에도 산간벽지로 그린 정선이다. 그래서 정선 읍내 중심에서 하늘을보니 하늘의 넓이가 겨우 15평이라지 않는가. 일제 때 철도 부설로 언덕을 깎아 한두 평 더 넓어 보인다는 우스겟 소리도 있다.
 
"아질아질 성마령(星摩嶺) / 야속하다 관음베루 / 십년 간들 어이 가리."

 

이 곳 정선 고을에 부임해 오는 현감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산굽잇길을 돌다 보면 절로 한숨이 났다. 그 현감을 따라 오던 부인마저 이렇게 탄식을 했단다.

 

"아질아질 꽃베루 / 지루하다 성마령 / 지옥같은 이 정선을 / 누굴 따라 여기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이 곳에 들어와 선정을 베풀었다는 오(吳)현감의 부인이 꽃베루와 성마령을 넘으며, 지루함을 달래느라 불렀다는 이 노래가 정선아리랑의 하나로 남았으니 그 민요가 왜 구슬픈지를 알만도 하다. 오현감과 함께 가마를 타고, 꽃베루재를 넘던 부인이 너무나 지루해 탄식을 하자 그것을 보다 못한 현감이 나졸들에게 물었다.

 

"정선 읍내가 아직 멀었느냐?"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 것을 알지만 나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조금만 더 가시면 되옵니다."   그러나 한참을 더 가도 아직까지 깊은 산골자기. 
"저 산베루만 돌아들면 되겠지?"  산베루를 돌아들어도 계속 벼룻길. 현감은 아예 머리를 밖에 내놓지 않고 물었다.
"아직 산베루는 안 끝났나?"
"예, 산베루는 곧 끝나요"
 이젠 현감이 묻기도 전에 나졸들은 계속 외쳐댄다.
"곧 베루가 끝나요" /  "곧 베루가 끝나요"

 

이렇게 해서 '곧베루'란 땅이름이 나오고, 이것이 '꼿베루', '꽃벼루'(花峴)가 되어 지금의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한 지명을 이룬다. '베루'는 '벼랑'이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다. 이 곳에선 '산굽잇길', '산기슭길'의 뜻으로도 쓰인다. '곧베루'의 '곧'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는 뜻의 강원도 방언이기도 해서 곧베루는 '매우 긴 산굽잇길'의 뜻이 되기도 하니, 이 뜻을 잘 모르는 현감에게 일부러 이 말을 써서 변명할 소지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벼랑'의 사투리 무척 많아...
낭떠러지의 험한 언덕을 '벼랑'이라 한다. 물가의 위험스러운 벼랑을 '벼루'라 하고, 이런 곳에 난 길을 '벼룻길'이라 한다. '벼랑', '벼루'의 '별'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머리' 또는 '산'의 뜻인 '볃','받'이 된다. '벼랑', '벼루'의 사투리는 무척 많다.

베랑, 베랑체, 베렝이, 베레이, 베리, 베아리, 비랑, 비렝, 비렝이, 비렁이, 비량, 비낭, 빈냥, 비양, 비앙, 빈장, 베루, 벼락, 베락, 베락체, 베락창, 비락체, 비럭, 비룩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비슷한 말에 '비탈'이 있는데, 이것의 사투리는 비탁, 비알 등이다. '비탈'은 빗(斜)과 달(地)이 합쳐 이루어진 '빗달'이 변한 말인데, '빗'은 '볃'(받=山/頭)에서 나온 말로 보고 있다. 이 '빗'은 기울거나 어긋남을 뜻하기도 해서 '비뚜로',  '비키다',  '비스뜸하다',  '빗장', '비틀비틀' 등의 관련 낱말들이 나오게 했다. 접두사로서의 '빗'은 '빗근길'(경사진 길), '빗금'(비스듬히 그은 금), '빗꺾다'(엇비슷하게 꺾다), '빗나가다', '빗듣다'(틀리게 듣다),  '빗디디다'(잘못 디디다), '빗뜨다'(눈망울을 옆으로 굴려서 뜨다),  빗맞다'(잘못맞다), '빗보다'(틀리게 보다), '빗서다'(방향을 좀틀어서 서다) 등의 말을 이루게도 했다.

 

"고히 곧고 누니 빗도다"(鼻直眼橫: 비직안횡)  코가 곧고 눈이 삐뚤다. <금강경삼가해 권2/11>
"빗근 남갈 나라 나마시니"(干彼橫木 叉飛越考 :간피횡목,차비월고)
 늘어선 나무를 날아 넘었으니 <용비어천가 86장>
"나모 가날히 길혜 삣거시니"
 나무 그늘이 길에 비쳤으니 <백련소해 4>    

 

 

'벼랑'의 뜻은 옛 땅이름에도 많아..

'비스듬하다', '비탈', '벼랑' 등의 뜻을 가진 말은 산이 많은 이 나라의 땅이름에 두루 쓰일 수 있어서 많은 관련 지명들이 곳곳에 갈리게 했다.옛 땅이름 중에도 이러한 뜻이 들어간 것이 적지 않다. 고구려때의 평진현(平珍峴: 강원도 통천군 속현)은 '벼랑고개'의 뜻인 '별재'로 유추되고 있다. 역시 당시 지명인 비례홀(比例惚: 함남 덕원군)도 '벼랑골'의 뜻인 '비래골'이 원이름일 것으로 보고 있다. '비탈골'로 유추되는 '비달홀'(非達忽: 압록수 이북), '빗벌'롤 유추되는 '비화'(比火: 경북 경주 안강읍)현 등도있다.  충남 서천군 비인면의  옛 땅이름 비중(比衆)현 , 전에 충남 회덕군이었고 지금은 대전시 일부로들어간 우술(雨述= 후에 比豊)군도 각각 '빗골', '빗수리'(또는 '붇수리')로 유추된다. 전북 전주시의 옛이름은 '양지쪽 들'의 뜻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으나,  이것 역시  '언덕이 진 벌', '널리 퍼진 벌'의 뜻일가능성도 있다. 경북 성주군의 통일신라 때 이름은 벽진(碧珍)군으로, 이 역시  벼랑의 뜻인 '별'의 소리빌기로 보고 있다. '벽'에서 ㄱ을 뺀 '벼'에 '돌'(珍)의 ㄹ을 받침으로 붙여 '별'을 이두식으로 표기했을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도 '난은별(難隱別: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옹천(甕遷: 황해도 옹진)  등의 고구려 때 지명이 있다.


글/지명연구가    배우리

728x90
728x90

'정보*공유 > 뫼이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벼랑과 관련된 땅이름들~  (0) 2007.01.27
벼랑과 관련된 말  (0) 2007.01.14
전국의 '붇'관련 지명들  (0) 2007.01.06
'부리'의 뜻이 들어간 산이름들  (0) 2006.12.29
부리와 삼각산(三角山)  (0) 2006.12.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