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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뫼이름들~

태조 왕건과 이성계에 관련 된 '山'

by 마루금 2006. 12. 17.

 

 

왕건과 태조산

산이름 중에는 임금과 관련이 있어 그 군호(君號)가 들어간 것이 더러 보인다. 충남 천안의 태조산(太祖山)은 고려 태조 왕건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천안시 안서동과 유량동 사이에있는 이 산을 풍수지리상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 5마리의 용이 여의주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의 명당길지라고 전해져 왔다. 왕건은 "이곳에 3천호의 읍을 이루고, 보루를 쌓아 군사를 조련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윤계방(尹繼芳)의 말에 따라 친히 이 산에 올라 산세를 살펴보고, 군대 10만명을 주둔시켜 훈련을 쌓은뒤 후백제를 쳐서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산을 왕자산(王子山)이라고도 하는 것은 산 모양이 마치 임금 왕(王)자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천안시와 천원군 목천면 사이에도 태조봉(太祖峰: 406m)이 있다. 유려왕산(留麗王山)이라고 하는데, 역시 고려 태조가 머물렀던 산이라고 전해진다. 이산 북쪽의 '조라지고개'는 고려 태조가 국태민안을 빌고, 이 곳에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하여 '돌아오지'가 '도라지'로 되고 다시 '조라지'로 변했다고 한다. 태조봉의 남쪽 가까이 독립기념관이 자리한 흑성산(黑城算)이 있고, 북쪽 2Km지점에는 고려 태조가 유숙했다는 유왕골(留王洞: 목천면 송전리)이 있다. 강원도 원성군 문막면 북동쪽 3Km지점의 건등산(建登山)은 왕건이 이 곳에서 후백제 견훤과의 싸움에 승리했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산의 건너쪽에 견훤성(甄萱城)이 있다. 천원 성거읍과 목천면 사이에 있는 성거산(聖居山: 579m)은 고려 태조가 한때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이성계와 관련된 지명들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지명도 적지 않다. 펑북 의주 백마산성(白馬山城) 근처의 태조봉(太祖峰)은 이태조가 위화도 회군을 할 때 송도로 되돌아오면서 최영장군과의 조기 대립을 꺼려 머물렀던 산이라고 전한다. 전북 진안-임실의 고덕산(高德山:623m)은 성수산(聖壽山)이라고도 하는데, 이태조가 입산수도 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산을 경계로 두 개의 성수면이 양 군에 나뉘어 있어 혼돈을 주고 있다.

 

남원군 설봉면의 혈암(血岩)은 이태조가 왜구를 섬멸할 때 흘린 피로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란다. 이태조가 고려 말의 명신 배극렴(裵克廉)의 은둔지인 지금의 충북 괴산 불정면 삼방리를 찿아 그의 출사(出師)를 청했으나 결국 뜻을 못이루었는데, 세 차례나 그 곳을 방문했다해서 삼방(三訪)이란 지명이 나왔고, 그 북쪽에는 임금이 왔었다는 뜻의 어래산(御來山)이란 지명도 나왔다.

 

함남 흥남시에 본궁(本宮)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은 조선 태조가 오래 머물렀던 곳이다. 원래 태조는 함흥시 귀주동 경흥전에 있었으나 마음에 안들어 본궁의 어느 고가(古家)를 얻어 옮겨서 그 지명을 얻게 되었다.

 

전주시의 전동(殿洞)은 이태조를 봉안한 경기전(慶基殿)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경기도 구리시와 미금시의 경계에 있는 왕숙천(王宿川)은 이태조가 함흥행 중에 머물고 갔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의정부(議政府)란 지명도 이태조와 관계가 있다. 태조가 왕자들의 골육상잔에 환멸을 느껴 함흥으로 내려가 있을 때, 그 아들 태종이 귀경을 간청하였으나 듣지 않다가 박순, 무학 등의 노력으로 마음을 풀어 이 곳(당시 양주군 양주면)에 오게 되었다. 당시 조정의 대신들은 한때 이태조가 있는 이 곳까지와서 정무를 논의하고 결재를 받아갔으므로  조선시대 최고의 관청인 의정부의 이름을 따서 지명처럼쓰게 된 것이라 한다. 이태조는 지금의 남양주군 진접면에 풍양궁을 짓고 살다가 승하, 그 곳에 내각리(內閣里), '대궐터'같은 지명을 이루게 했다. 진접면의 '여덜바미'(八夜里)는 태조가 한성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여덟 밤을자고 갔다는 전설이 붙어 있다.

 

조선 초기의 도읍터 후보지였던 충남 논산 두마면 두계리(계룡산 밑) 일대엔 신도(新都/新都安), 대궐터, 제자봉(帝字峰), 동문거리, 서문거리, 종로터 등의 지명을 남겨 놓고 있다.

 

 

왕이 지난 곳마다 새 지명 생겨   

평북 묘향산에는 단군굴(檀君窟)이 있는데 단군이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강원도의 태지산(泰지山/德高山: 1261m, 평창-횡성)은 삼한시대에 진한의 태지왕이 피난했던 곳이라한다. 대동강의 지류인 비류강(沸流江/卒本川)은 고구려 초 비류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인다. 비류강근처의 궁터(宮基)는 송양왕궁(松讓王宮)의 유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禪雲寺) 뒷산의 좌변굴(左邊窟/眞興窟)은 신라 진흥왕이 난을 피해노숙한 굴이라고 전해진다. 좌변(左邊)은 진흥왕의 호이다.

 

부산 영도구 동상동 절영도 남단의 태종대(太宗臺)는 삼국을 통일한 태종 무열왕이 궁인과 시녀들을 거느리고, 휴식을 취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천 가에도 태종대가 있는데, 이 곳은 조선의 태종이 그의 스승 원천석(元天錫)을 만나려고 이레 동안을 머물렀다는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경기도 광주군의 원적산(園寂山)을 다른 이름으로는 공민봉(恭愍峰)이라고 한다. 1361년(공민왕10년)에 흉건적이 침입할 때 왕이 이 산으로 피난하여 개경쪽을 바라보며, 봉화를 올렸던 곳이라 전한다.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우왕고개(왕고개/王峴)는 고구려의 우왕이 한때 자리잡고, 자주 넘나들던  곳이라한다.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충남 공주 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파천하였을 때 군량이 떨어져 곤란 중에, 노숙(盧璹)이란 사람이 곡식을 바쳐 화를 면하여 노숙이 사는 지금의 우성면 동곡리의 한 마을을 조왕(助王)골이라 했다고 한다.  


글/지명연구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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