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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고산 윤선도 유적지 .... 2005.08.02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五友歌 중에서 . . . 孤山 尹善道 세연정(洗然亭) 고산(孤山) 윤선도가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창작하고 읊었던 무대이다. 우라나라 정원 중 독보적인 가치가 있는 곳으로 고산의 기발한 착상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다. 3,000여평의 계원(溪苑)에 밑바닥 암반(岩盤)을 이용하여 보(洑)를 막아 600여 평의 계담과 250평의 인공연못을 만든 것으로 산중에 은둔하는 선비의 원림으로는 화려하고 규모가 크다. 동쪽 축대(築臺) 및 계담에서 터널식 수입구로 계류가 연못으로 흐르도록 하였다. 제방(堤防)에는 당시 심은 동.. 2005. 8. 11.
보길도 예송리 해변 .... 2005.08.02 (육상편) 해남(13번 도로) → 완도대교(77번 도로) → 완도 화흥포항 (여객선) 완도→보길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도, 노화도를 경유하는 소안페리호가 하루 9회 (06:40~ 17:40) 출항, 1시간~1시간 20분 소요, 차량 선적도 가능하다. 계절과 날씨, 승선 인원에 따라서 여객선의 출항시간이 변동되거나 결항할 수 있다. (현지교통) 보길버스(청별리~ 예송리행) 1일 5회 운행 보길택시 (061-553-8876 영업용) (061-553-6262, 6353 개인택시) 택시는 갤로퍼와 같은 지프형이며, 요금은 구간별 정액제. 예송리는 보길도 동남쪽의 바닷가 마을이다. 활처럼 휘어진 1.4km의 길이로 차돌과 콩돌이 섞인 해변, 상록수림의 배경으로 경치가매우 아름답다.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예송.. 2005. 8. 10.
보길도 가는 길 .... 2005.08.02 보성 녹차밭 구경을 끝내고, 갔던 길 18번 도로를 역으로 빽해서 2번 국도로 강진을 향했다. 강진에 도착해서 18번 도로와 55번 도로로 변경하여 완도 방향으로 꺾어 진행했다. 완도로 가는 도중에 좌측 편으로 보여야 할 해남의 두륜산이 구름에 가려서 산세를 가늠키가 어려웠다. 두륜산을 가본 지도 20년이 넘어 꽤나 오래되었다. 거미줄 같은 로터리에서 13번 도로를 따르고, 완도대교를 건넌다. 교량이 끝나면 우측 77번 도로로 변경하여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이 도로를 따르면 장보고 촬영지를 지나가게 되는데 구경 온 많은 관광객으로 교통이 혼잡하다. 이곳을 지나는 데만 한 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십여 분을 이어가면 어촌민속박물관을 지나 화흥포항에 도착한다. 여기서 보길도행 여객선으로 차량과 함께 뱃길을 이용.. 2005. 8. 10.
보성 녹차밭 ... 2005.08.02 보성 녹차밭 광양에서 2번 국도를 따라 순천~벌교를 지난 다음 보성에 도착해서 18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녹차밭이 나온다. 촬영지엔 관광을 온 차량들로 매우 붐벼 입구가 거의 막혀있어 경찰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더위에 수고하는 경찰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시한부 인생의 아내 정연(이영애 분)과 잘 안나가는 바람잡이 개그맨 용기(이정재 분)의, 웃고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 사랑 이야기, 영화 은 보성, 부산, 남이섬, 양수리 세트장 등에서 촬영되었다. 용기와 정연의 아들나무가 있는 곳과 그곳으로 가는 도중 끝없이 펼쳐지는 숲길은 과연 어딜까? 영화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영상을 자랑하는 이곳은 바로 ‘전남 보성의 녹차밭(대한다원)’. MBC 드라마 에서도 녹차밭이랑 해수욕장, 녹차탕.. 2005. 8. 10.
광양(전남)을 지나며 .... 2005.08.02 1일 밤 남해읍에서 삼겹살로 저녁 식사 후 읍내를 몇 바퀴를 돌아 숙박처를 구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하동에서 숙박 하기로 정하고, 19먼 국도를 따라 남해대교로 향한다. 대교를 건너기 전 대교민박이 보여 들러보지만 역시 방이 없단다.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를 완전히 빠져 나왔다. 하동,구례방면으로 가던 중에 길가 모퉁이의 모텔이 보였다. 여기서 하룻밤을 지냈다. 이튼날 아침 식사를 라면으로 서두르고, 모텔을 뒤로하며, 보길도를 향해 출발했다. 하동 도착 직전에 신도로가 나타나서 광양까지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 한다. 섬진강 하구를 지나서 광양땅의 거대한 공업단지 한가운데를 파고 든다. 섬진강 하구.. 광양땅의 공업지대.. 포스코 정문을 지나며.. 포스코 맞은편의 거대한 호수.. 2005. 8. 10.
남해 금산 보리암 .... 2005.08.01 보리암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태조 이성계로부터 비단산(錦山)이라는 지금의 이름을 하사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갖 기이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은 금산 38경 중의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낙산사 홍연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신도들이 연일 줄지어 찾고 있으며, 영험 있는 기도처로.. 2005. 8. 9.
남해 상주해수욕장 .... 2005.08.01 남해(상주해수욕장) 반월형을 그리며 2km에 이르는 백사장의 모래는 매우 부드러워 마치 주단 위를 걷는 것같은 감미로운 감촉을 느끼게 해 준다. 백사장을 감싸고있는 송림은 잔잔한 파도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상주의 자랑거리다. 바닥의 기복이 적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어린이들의 물놀이에도 안성맞춤이며, 가까운 곳에 다른 오염원이 없기 때문에 물이 맑고 깨끗하다. 부채꼴 모양의 해안 백사장과 눈앞에 펼쳐진 작은 섬들은 바다를 호수 모양으로 감싸고 있어 아늑하다. 구름에 쌓인 금산을 배경으로 잔잔한 파도를 일으킨다. 2005. 8. 9.
남해 몽돌해변 .... 2005.08.01 천하마을 몽돌해변 3번 국도로 삼천포대교를 지나 미조에서 다시 19번 국도로 변경, 상주방면으로 향한다. 해안가 몇 굽이를 돌고돌아 어느 고개에 올라서면 내려다 보이는 몽돌해변 풍광으로 잠시 넋을 잃는다. 오목한 해안, 어촌마을, 그리고 우측으로 해송과 바위의 조화를 이룬 낙타봉, 조용하고 아름다운 경치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인다. 몽돌해변 뒤쪽으로 송정해수욕장이 늘어서 비경이 한결 돋보인다. 천하마을은 상주면과 미조면의 경계지역의 마을로 20가구 정도되는 작은마을이다. 수령 수백년 된 느티나무로 한결 여유로움을 더해주는 마을이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마을 끝에 자리한 몽돌해변은 매력적이다. 川下마을은 내 아래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이 있다. 미조면민의 식수원인 수원지 계곡에서.. 2005. 8. 9.
남해로 가는 길 .... 2005.08.01 사천시를 지나며 진주에서 3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사천에 들어서서 계속 내려가다보면 좌측편으로 범상치 않은 산세의 산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산이 바로 와룡산이다. 높이만을 따지고보면 거봉은 아니지만 웅장한 산세와 암반, 절벽으로 이루어진 모습은 명산으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갗추고 있다. 와룡산은 한국의 많은 산악인들이 배출된 곳으로 해외등반을 위하여 체력을 단련하거나 암벽등반 훈련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상사바위, 세섬바위 등은 깍아지른 절벽으로 특히 상사바위는 바로 밑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아찔한 높이다, 경남지역과 전남지역의 클라이머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사천시를 지나면서 바라보는 와룡산의 모습 삼천포 대교 사천시에서 남해로 연결된 연육교가 있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 2005. 8. 9.
진주성(촉석문) .... 2005.08.01 진주성(晋州城) 사적 제118호 진주성관리사무소 055-749-2480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하여 삼국시대부터 조성한 성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고려말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종광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직후에는 성의 중앙에 남북으로 내성을 쌓았다. 선조 25년(1592년) 10월 왜군 2만여 명이 침략해오자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3800여 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 합쳐 물리쳤으니 이것이 임진왜란 3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이듬해 6월에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해 옴에 7만 민, 관, 군이 이에 맞서 싸우다 모두 순국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972년 촉석문을 복원하였고, 1975년에는 .. 200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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