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는 분명히 '용'의 옛말이면서도 땅이름에서는 이의 음역(音譯)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문헌을 보면 중국이나 만주에서는 '미르'를 '무두리'라고 불렀던 싶다.
용의 옛말은 '미르'
용두산(龍頭山), 용마산(龍馬山), 용문산(龍門山), 용화산(龍華山) 등 용(龍)자가 들어간 산이 적지 않게 보인다. 이러한 산들은 산세가 용의 형국이거나 용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더러는 영(嶺)의 오발음에서 나온 것도 있고, '물'의 연철인 '무르', 꼭대기의 뜻인 '모루'(마루)가 용의 옛말인 '미르'로 오역되어 '용'(龍)자가 취해진 것도 있다. 용은 미르, 미리로 불려왔지만, 한자말인 용을 익혀 써온 탓인지 옛 문헌에 '미르'가 많이 보이지 않고, 땅이름에 있어서도 이의 음역(音譯)이 별로없다.
'미르룡'(용) <訓蒙子會> 상20 , <石峰壬子文> 4
'미르진'(辰) <訓蒙子會> 상.1 辰字註
'我東方言評龍爲彌里' <이齊遺稿> 二五.24
우리의 동쪽 지방 말로는 용을 미리라 한다.
'龍-무두리' <同文> 하.40
'龍王-무두리한' <同文> 하.11
'muduri-龍'<滿和> P314
'訓門爲久 오래門詰龍爲豫 미리龍 若此之類 全是指鹿爲馬 不止喚鼠璞' <雅言覺非> 권1
門(길 문)자를 久(오랠 구)자의 뜻을 만들고(오래門), 또 龍(용 용)자를 豫(미리)자의 뜻으로 만들었다(미리龍). 이와 같은 부류는 사슴을 카리켜 말이라 하고, 쥐를 가지고, 옥덩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추화'(推火: 경남 밀양)라는 지명이 '용'과 관련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있다. 즉 추화고을 봉성사(奉聖寺) 근처에 있는 산이름이 견선(犬城)의 원래 이름일 수 있는데, 그 산이바로 '추화' 즉 '밀부리'(밀벌, 밀불)일 것이고, 이것은 용산(龍山), 용봉(龍峰/ 미르부리)의 뜻일 것이라는 점이다.
방종현(方種鉉 1905~1952)님은 <한글>지 제 8권7호(1939)에 낸 사견이제(私見二題)라는 글에서, 용은만주, 몽고, 인도어와 같은 기원일지도 모르니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용은 물(水,泉,州,澤)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하고, '물', '미리', '매' 등이다, 물의 뜻을 가진 같은 어원의 것으로 본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보면, 통일신라 때의 밀성(密城), 고려 때의 밀주(密州), 지금의 밀양(密陽)의 밀(密)이 용의 뜻인 '미르'를 살려쓴 음이 될 것이다. 옛 땅이름에서도 '미르'가 음역된 것을 많이 볼 수가 없다.
'龍堰宮, 舊址在府北四里. 春陽臺 在觀風殿北, 俗稱上密德' <동국여지승람> 권51.평양-고적
용언궁은 북쪽으로 4리 떨어진 옛터에 있다. 춘양대가 관풍전 북쪽에 있는데, 속칭 '상밀덕'이라고 한다.
고 양주동님은 평양의 을밀대(乙密臺)가 '웃미르덕'(上龍堰)으로, '웃'을 '을'(乙)로, '미르'(龍)를 밀(密)로 취해서 '을밀'(乙密)로 되었다고 하였다. 한자 을(乙)의 옛음은 '욷'(웃)이었다.
'駒城縣一云滅烏, 高麗初 改龍駒縣' <동국여지승람> 권10.용인-연혁
구성현은 '멸오'라고도 하는데, 고려 초에 용구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구성은 용인 땅인데, 위 기록으로 보아 용구, 용인 등의 '용'은 '미르'(滅烏)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경기 안성 대덕면에는 '미르개'라는 마을이 있는데, 진현리(辰峴里)라고도 하는 것으로 보아 '미르개'의 '미르'는 '용'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같은 군 양성면에는 '미리내'라는 마을이 있는데 냇물이 용처럼 산골짜기를 휘어돈다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곳은 원래 한자 지명으로는 용의 뜻임을 알기 어려운 미산리(美山里), 미리천(美里川)으로 되어 있다.
전국에는 용(龍)자가 들어간 지명이 무척 많다.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읍/면 이상의 행정 지명에서 동물 이름이 들어간 것 중에는 '용'자가 들어간 것이 가장 많다.
1)용(龍): 경북 안동 와룡면 등 27개
2)봉(鳳): 전남 여천 쌍봉면 등 15개
3)마(馬): 전북 익산 금마면 등 13개
4)웅(熊): 전남 보성 웅치면 등 8개
5)구(龜): 경북 구미시 등 7개
6)학(鶴): 경북 영동 학산면 등 5개
7)우(牛): 충남 당진 우갈면 등 4개
8)조(鳥): 충남 연기 조치원 등 4개
그 밖에 호(虎), 인(麟), 오(烏) 등이 각각 2개 였다. '용'자 지명은 특히 북한에 많은데, 함북 경원군 용덕면에는 8개 동명, 평북 조산군 풍면에는 5개 동명 모두가 '용'자를 쓰고 있다. 용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상상의 동물로 알려져 왔다. 뿔 달린 머리, 비늘로 덮인 뱀 모양의 몸통,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4개의 다리, 내, 강, 호수, 바다 등지에 살며, 춘분 때 하늘로 올라 추분 때 땅으로 내려 오는데, 자유로이 공중을 날아 구름과 비를 몰아 풍운 조화를 부린다고 전해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가 되며, 유럽, 인도 등에서도 신비적이고 민속적인 신앙/숭배의 대상이 된다. 또 불교에서는 사천왕(四天王)의 하나이다. 범과 더불어 동남풍을 가리켜 가운을 이끄는 상서러운 동물로도 생각해 오고 있다.
우리의 낱말 중에도 '거룩한', '높음', '어짊'의 뜻으로 '용'을 취한 것이 많다. 특히 천자(天子)에 관한것에 이 글자를 많이 취하고 있다. 용안(龍顔: 얼굴), 용루(龍淚: 눈물), 용포(龍袍: 의복), 용궐(龍闕:궁궐), 용상(龍床: 의자), 용거(龍車: 수레), 용가(龍駕: 수레), 용주(龍舟: 배) 등이 그 예이다. 임금의 덕을 용덕(龍德)이라 하고, 지위를 용위(龍位), 은혜나 덕을 용광(龍光)이라고 한다.
천자의 위광을 빌어 자기 몸을 도사리는 악행을 할 때, 곤룡(袞龍)의 소매에 숨는다고 하며, 입신출세의 관문을 용이 되어 오른다 해서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용 가는데 구름간다', '용 못 된 이무기', '용이 만난 듯'과 같은 속담도 있다. 미천한 집안에서 큰 인물이 나면 '개천에 용 났다'고도 한다. 용은 이처럼 성수(聖獸)로 알려지고, 길상(吉詳)의 상징으로 신성시되어 국가적인 여러 설화를 만들어냈다. 용은 봉황과 더불어 민간 신앙의 하나인 풍수 사상을 나타낸다고 여겨져 지형이 용의 형국인 곳은 평안과 부귀영화가 깃든다 해서, 성(城)자리, 묘자리로 써서 복을 빌었다. 고려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천안의 왕자산에 주둔할 때 이 곳의 땅모양이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이라는 윤계방(尹繼芳)의 말을 듣고 성을 쌓아 천안도독부를 두어 군사 훈련을 해서 후삼국을 통일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글/지명 연구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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