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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구봉산~장군산~고락산~망마산(여수) / 2편......2020.11.21

by 마루금 2020. 11. 21.

1편에서 이어집니다.


고락산 들머리

지나온 장군산

여수MBC 진입로 (문수성당 좌측 도로)

여수 MBC 광장을 지나감

중턱의 바위조망터에서 바라본 구봉산

장군산(좌) & 구봉산(우)

고락산성 부속성

우물터

고락산성(鼓樂山城) ~
2010년 11월 19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44호로 지정이 되었다. 본성과 부속성이 있다. 본성은 동쪽 사면의 작은 봉우리(해발 200.9m)에 있으며, 부속성은 고락산 정상(337,4m)에 있다. 보루의 형태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본성은 고락산의 낮은 동쪽 봉우리를 빙 둘러 싸고 있으며, 성벽의 총 길이는 354m로 서쪽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산성내에서 2곳의 문터와 1곳의 우물터가 발견 되었다. 부속성은 고락산 정상 봉우리에 남쪽으로 약간 튀어나온 둥근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부속성에서 주위의 호랑산성, 검단단성, 왜성, 척산산성(자산산성)과 소라면을 비롯한 여자만과 돌산대교를 비롯한 남해안 등 본성에서 조망할 수 없는 해안지역과 내륙으로 연결되는 육로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부속성은 감시를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군 주둔지는 본성을 이용하는 등 본성과 부속성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은 문헌에는 나와 있지를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1942년 일본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고락산성의 기록이 남아 있고, 고대 산성의 한 유형인 산복식 산성의 유형에 속하며, 성벽 또한 할석형 면석으로 성벽을 축조하고, 빈틈을 작은 쐐기돌로 박아 넣는 백제시기 축성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산성 주변에서 출토되는 토기들의 형태나 문양으로 보아 적갈색연질토기와 경질토기 조각들로 모두 백제 시대의 토기로 고락산성의 축조 시기가 600년을 전후한 백제 시대 후기인 것으로 보여진다. 성곽의 외벽 위쪽부분 일부에서 후대에 보축한 흔적들이 보이는데 공반유물이 없어서 현재로서는 알수 없으며, 고려후기나 임진왜란 때 보수 되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호랑산(중앙) & 영취산(우)

고락산 정상의 중계탑

정상의 정자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고락산(鼓樂山/ 337.4m) ~ 
이 산에 대해 알려진 명칭유래는 없으나 고락이라는 명칭에 나타나듯이 고락산성과 관련된 북소리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산 중턱에 고락산성 터가 남아 있고, 산정에 부속성이 있다. 여수시청에서 직선거리로 3㎞ 정도 떨어져 있으며, 17번 국도가 주변에 접하여 있다.

 

망마경기장 방향으로 진행

고락산 정상부의 조망바위

구봉산(좌)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풍경

좌측의 가야할 능선과 망마경기장

거친 하산로

음수대 사거리

음수대에서 롯대첨단소재사택 방향으로 진입

동백나무 군락지

206.9봉

웅천생태터널 위

웅천터널을 통과하는 도로

고락산에서 거쳐온 능선

장군산(좌) & 구봉산(중앙)

망마산 정상의 팔각정

망마산(望馬山/ 141.7m) ~
이순신 장군이 망도 보고, 훈련도 시켰던 곳으로, 훈련하는 말을 바라볼 수 있어 붙여진 명칭이다. 병사들이 훈련을 할 때는 처음 홍의(紅衣)를 입고, 몇 바퀴 산정을 돌고난 후 청의(靑衣)로 갈아입고, 다시 한 차례 돌고 백의(白衣)로 갈아입었다고 전해진다. 산정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말채를 심으면서 '이 말채가 죽으면 나의 영혼이 죽은 줄 알라' 하였다던 동백나무가 있으며, 이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선소 경내의 동정은 물론 사방을 관망할 수 있었다.

 

망마산에서 대림산업아파트 방향으로 하산, 부영3단지 사거리까지 도로를 따라서 이동, 구봉산 들머리인 넘너리 버스정류장까지 택시(요금 6600원)를 이용, 이후 장시간 귀가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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