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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시명봉(치악산) ................ 2017.08.06

by 마루금 2017. 8. 6.

산행날씨 : 25.2 ~ 33.6℃  맑음

산행코스 : 치악재 ~ 명경사 ~ 1061.4봉 ~ 1101봉 ~ 시명봉(1196m) ~ 상원사 ~ 성남분소 ~ 높은다리주차장

행거리 : 12.24km  

산행시간 : 6시간 21분 (느긋하게.. )

산행인원 : 산악회따라 ~

시명봉(치악산).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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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푹푹 찐다 ~울창한 숲을 찿아서 시원한 계곡을 찿아서 간 곳이 원주 치악산 시명봉이다.치악재에서 출발, 역코스 백운지맥으로 시명봉에 올랐다가 상원사를 거쳐 상원골 성남분소로 하산,  총 3번의 알탕이 더위를 쏵 가시게 했다. 

 

가리파고개(일명 치악재) ~ 
금대리와 신림 사이에 있는 5번 국도의 고개다. 가리+파 → 가리파가 되었다. 가리는 물, 물가, 분기를 뜻하는 갈에서 파생된 것으로 물가 마을에 많이 붙는 지명인데 가리가 들어간 산 이름에는 산줄기가 갈린 목, 또는 고장을 가른 산에 주로 쓰인다. 파는 언덕, 고개를 뜻하므로 가리파는 산줄기가 갈린 고개나 언덕, 또는 고장이 갈라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원주와 신림을 가르는 고개라서 가리파가 된 것으로 보여진다.

 

치악재에서 차로를 따라 명경사로 Go ~

명경사 경내로 진입 ~

명경사에서 좌측 계곡의 숲길로 진입 ~

잘 다져진 비박터를 지나서 우측 사면으로 붙어 능선에 올랐다 ~

아늑한 힐링 숲을 따라서 Go ~   

회오리목 ~

힐링숲이 끝나면 본격적 오름길이다 ~

암릉을 우회하기도 하고 ~

직접 바위를 타고 오르기도 한다 ~

▼ 1061.4봉 ~

정상까지 제법 빡세게 올라야 한다.

정상에서 옆길로 살짝 새면 앞이 확 트이는 전망터가 나온다.

 

백운산 ~

수리봉 능선 ~

원주시 ~

지나온 능선 ~

한동안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

사초밭 ~

점점 가까워지는 시명봉 ~

V 형상의 기목 ~

시명봉(1,196m) ~

남대봉(1,181m)에서 분기한 백운지맥이 시명봉을 지나간다. 남대봉에서  1.2km 거리의 시명봉은 남대봉보다 더 높다. 시명봉을 남대봉으로 부르기도하지만 근거는 확실치 않다.

 

원주시 ~

수리봉 능선(좌), 비로봉(중앙 맨뒤), 남대봉, 상원사(우) ~

치악산 ~

단일산봉이 아니고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장장 27 ㎞나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치악산맥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요 봉우리는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1m), 시명봉(1,187m), 향로봉(1,043m), 매화산(1,085m) 등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다. 주봉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 남북 14km에 걸쳐 주능선 양쪽으로는 깊은 계곡들이 부채살처럼 퍼져 있다. 치악종주는 가리파재에서 시작, 남대봉과 향로봉을 경유해 주봉인 비로봉 이후 배너미재를 거쳐 천지봉과 매화산을 지나 전재까지 연결 도상거리 27km를 주파 하는 것이다.

 

줌인 ~

시명봉 수직 구간 ~

수직 구간을 마치면 평탄한 산죽밭이다 ~ 

암릉 우회 ~

응봉산, 감악산 조망 ~

물마시러 상원사 경내로 Go ~

상원사 ~ 
치악산 남대봉 아래에 있는 절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선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고려 말에 나옹이 중창하였고, 월봉(月峯), 위학(偉學), 정암(靜巖), 해봉(海峯), 삼공(三空), 축념(竺念)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이 이 절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도하게 하였다. 6 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화 되었던 것을 1968년 당시 주지 송문영법사와 의성보살에 의하여 복구되었다.

 

심검당 우측 외벽에 걸려있는 목판조각 ~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4년 6월 2일에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심우당(尋牛堂), 심검당(尋劍堂), 범종각(梵鐘閣), 산신각(山神閣)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정면 3간(8.4m) 측면 2간(5.3m)의 겉처마 팔작(八作)지붕에 다포(多包)집이다. 법당의 불상은 새로 봉안한 것이고, 석가래와 기둥 등은 모두 정연하며 두공부(枓?部)에 용두(龍頭)조각을 배치하여 주목을 끈다. 근년의 건축물로는 드물게 보이는 질서 있는 건축물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쌍탑이 있는데, 이러한 쌍탑이 등장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삼국통일 이후로서 왕성한 국력에 의하여 전국도처에 유행하게 되었다. 이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정형을 따른 2중기단 위에 3층옥개를 형성하였으며, 상부 상륜부는 둥글게 연꽃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대웅전의 좌측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火焰紋)을 보이는 불상광배와 연화대석(蓮華臺石)이 남아 있어 본래 석불이 있었음을 추정케 하나 현재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밖에도 절 뒤쪽 2백m 지점에는 높이 1m의 지극히 단조로우나 매우 오래된 부도가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

무착선사가 도를 닦는 중에 큰 뱀에게 잡아 먹히게 된 꿩을 구해주었더니 한밤중에 종이 울리지 않으면 무착선사가 죽게 되는 위급한 상황에서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 몸을 부딪쳐 종을 울리고 죽으므로 생명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산의 명칭도 적악산(赤岳山)이던 것을 꿩치(雉)자로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시명봉 ~

상원골 ~

높은다리 ~ 
윗성남 북쪽, 상원골 아래 높은다리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옛날에 다리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주막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 주막집은 봇짐장수나, 사냥꾼, 과객등이 쉬다가는 주막집으로 다리를 건너면 치악산의 산세가 너무 험하여 다음 마을까지 가는 길이 험하였다고 한다. 밤에는 더욱 재를 넘어갈 수 없어 오후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대가 구성되어 다음날이 되면 출발하였는데, 팔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먹고, 자고 쉬어서 산을 넘어 갔다하여 놀던 다리, 놀다가던 자리, 즉 노들다리,  노들자리가 되고 현재는 높은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높은다리주차장에서 산행끝 ~

시명봉(치악산).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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