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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미륵산(원주)................2017.06.05

by 마루금 2017. 6. 6.

산행날씨 :14.2 ~ 28.2℃  맑음 

산행코스 : 주포1리회관~337.9봉~얹힌바위(삼각점)~치마바위봉~신선봉~장군봉~미륵봉~미륵산(헬기장)~미륵봉~미륵불~황산사(3층석탑)~절안골~주포1리회관 

행거리 : 8.61km  

산행시간 : 4시간 5분(느긋하게)

산행인원 : 홀산으로 ~

미륵산(원주).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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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차를 이용해서 홀산으로 다녀왔다. 전날 빡센 산행에 피곤이 덜 풀린 상태라 산행거리가 비교적 짧은 미륵산을 선택했다. 주포1리회관에 주차를 해두고 황산골에서 출발, 정상을 찍고나서 황산사 능선으로 하산하여 절골 도로를 따라 주차지 원점으로 회귀했다.

 

주포1리회관 ~

황산골에서 올려다본 치마바위봉 ~

황산골에서 ~

올라붙어야 할 들머리가 뚜렷하지가 않다. 마침 근처 주민을 만나게 되어 등로를 물어보니 입구 찿기가 어려울 거라 한다. 아무곳이나 뚫고 들어가라해서 밭을 가로질러 솦으로 진입, 묵묘(경주김씨)를 지나 사면으로 붙어 주등로에 접속했다.

 

경주김씨 묵묘 ~

337.9봉 주능선에 접속 ~

어제의 산행에 대한 피로가 남아서그런지 460.7봉이 되게 높게 느껴진다. 337.9봉을 지나 안부로 잠시 내려섰다가 가파른 능선으로 느리게 올랐다. 460.7봉 정상에서 얹힌바위와 삼각점을 만났다.  

 

얹힌바위 ~

460.7봉 삼각점 ~

얹힌바위 능선의 멋진 노송들 ~ 

460.7봉을 지난 안부에서 헬기장 방향이 하늘을 가르키고 있다 ~

밧줄이 나타나면서 암릉이 시작된다 ~

지나온 능선 ~

우회로를 버리고 암릉으로 직상 ~

바위를 지탱하고 있는듯한 나무막대 ~

치마바위 ~

치마바위 위에서 바라본 백운산과 십자봉 ~

치마바위 상단, 아랫쪽은 아찔한 절벽이다 ~

거쳐온 능선 ~

월악산 줌인 ~ 

보련산과 국망산 조망 ~

용문산 조망  ~

남근 ~

우회로가 있으나 암릉으로 직등했다 ~

신선봉 ~

신선봉에서 바라본 장군봉 ~

미륵산 ~

장군봉 정상 ~

미륵산(689m) ~

원주 남쪽에서 충주와 맞닿은 귀래면에 있는 산이다. 미륵불상을 조각해놓아서 미륵산, 신라말 경순왕이 왔다고 하여 대왕산(大王山)이라고도 한다. 미륵산은 백운산의 지맥으로 독립된 산이다. 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부드러운 숲길 능선과 아기자기한 암릉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산행의 정취와 묘미를 더욱 느끼게 한다. 미륵봉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백운산과 치악산맥이 보이고, 동으로 백운산 십자봉, 남서쪽 멀리 남한강 물줄기가 보인다. 잘 어우러진 기암과 노송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지도상에 미륵산이라 표시된 북봉 ~

미륵산 정상에서 황산사 능선으로 하산하기 위해 미륵봉으로 빽했다 ~

▼ 미륵산 마애불상 ~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머물면서 새겼다는 설도 있고 덕주공주가 아버지인 경순왕의 상을 새겼다고도 하며, 어느 석공이 큰 홍수가 났을 때 배를 타고 와서 조각을 하다가 물이 빠져 미쳐 다 완성하지 못 하였다고도 한다. 상부가 뚜렷하게 조각이 되어 있는데 비해서 하부로 올수록 조각이 흐릿한 것은 물이 일찍 빠져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미륵불상은 미륵봉에 정 남향판으로 상봉에서부터 20여m의 높은 암벽에 음각과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머리부분은 머리에서부터 양쪽 볼이 음각으로 완전하게 조각이 되었고 눈은 음, 양각으로 눈언저리를 파서 눈알이 솟아오르게 해서 보통 불상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 콧날은 양쪽 볼을 나타내느라고 파서 자연적으로 오뚝하게 세워져 있으며 입 부분도 입술을 완전히 음, 양각을 곁들여서 잘 나타냈고 귀 부분도 잘 나타나 있어서 두부는 완전하다. 네모진 얼굴에 눈, 코, 입, 귀 등을 크고 토속적으로 묘사하였다. 낮은 육계에 소발머리, 통견(通肩)의 방법 등을 얕게 음각한 점, 머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은 네모진 체구, 치졸한 팔이나 손의 형태 등은 토속적이며, 도식화된 면과 더불어 고려 석불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미륵불상은 대체로 고려초기 경순왕이 머물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 미륵코 ~ 
미륵불의 코를 말한다. 바위에 인형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코가 튀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미륵산 미륵불상의 코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속설에 미륵산 암벽에 새겨진 미륵불상의 코를 만지면 누구든지 소원 소원성취가 되고 특히 자손없는 사람이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에 코를 만져보려고 멀리서도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 새겨진 그것을 아무도 만져 볼 수 없었다고 한다.

 

▼ 황산사(黃山寺) 터 ~ 
황산골에서 미륵산 가는 중턱에 있다. 미륵사터로 불리기도 한다. 전해지는 말로는 신라 경애왕(924-926년 사이) 때 창건된 것이라고 하며 조선 연산군대에 이르러 폐사되었다고 한다. 신라말 경순왕의 공주가 이 절에 와서 부왕의 모습을 조각하게 하고, 경순왕이 이곳에 직접 와서 본 이후로 이 산을 대왕산이라고 했다고 하며, 귀래라는 이름도 그 때 생겼다고 한다. 따라서 황산사는 신라왕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있는 석탑 당은 모두 고려대의 것인데 부도 2기는 조선시대의 것이라 한다. 지금은 등산로 입구에 조악한 조립식 건물에 한 보살이 거처하고 있다. 다만 절터의 규모나 부도, 탑재석 등으로 미루어 보아 그 규모가 작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최근에 동경(銅鏡)이나 작은 불상이 사지에서 발견되는 점 등으로 보아 소규모의 사찰은 아니었다고 보여진다. 

 

▼ 황산사 삼층석탑 ~글씨가 새겨진 조그만 탑은 세 층만 남아 있으나, 본래 8층탑이 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탑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 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층석탑은 경내에 흩어진 탑재석들을 모아 다시 세운 것이다. 기단은 없어지고 3층의 탑신부만 있으며 고려 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황산사 부도 ~

황산사 계곡을 거의 빠져나오면 만나는 경순왕 경천묘 ~

▼ 새터 ~

황산사 입구에서 새터재가 보인다.

절골 북쪽 골짜기에 있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서 새터라 불린다.

 

절골 하산길 ~

▼ 절골 도로에서 올려다본 미륵산 ~

그 많던 바위가 모두 어디 갔을까?  아랫쪽에서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속살은 온통 바위인데  숲이 울창하게 가리고 있어 육산으로만 보인다. 

 

사찰같지 않은 칠성암 ~

미륵산 농원 ~

황룡사 입구 ~

귀래면 ~

귀래는 귀한 분이 오셨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신라말 경순왕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 때문이다. 약400년 전에는 귀래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하며, 조선 고종때에는 용암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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