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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보개지맥 2구간(작전도로~지장산~중리) .... 2015.02.01

by 마루금 2015. 2. 16.

산행날씨 :  11.9℃ ~ 0.5℃,  맑음(시계가 흐렸던 날) 

산행코스 : 승리부대 우봉~승리부대 고개~숙향봉(473.2m)~대소라치~보개봉(752m)~복넘이(담터)고개~지장산(877.2m)~화인봉(806m)~동마넘이고개~중리

산행거리 : GPS거리 총 19.5Km (산행 14.5km / 접속 5Km)

산행시간 : 총 9시간 (산행 7시간 23분 / 접속 1시간 37분)

산행인원 : 자유팀 7명 ~


10:18 : 승리부대 정문

10:29 : 부대 우측 삼각점봉

10:39 : 임도

10:52 : 부대 북쪽 벙커봉

11:03 : 작전도로(승리부대 후문)

11:22 : 벙커봉

11:32 : 숙향봉 분기봉

11:45 : 숙향봉(472.3m)

12:07 : 583봉/ 헬기장 / 삼각점

12:33 : 금학산 임도

12:41 : 대소라치 / 축성

12:45~ 13:36  점심식사

13:56 : 보개산

14:50 : 676봉 / 삼각점

15:30 : 651봉 /  6사단 벙커봉

15:42   복넘이고개

16:41 : 지장산(877.2m)

17:08 : 화인봉(806m)

17:30 : 동마넘이

17:42 : 동마넘이

19:18   중리 버스정류장

보개지맥2.gpx
0.07MB

 

 

 

 

소요산역에서 7인의 자유인들이 모였다. 역사 근처 해장국집에 들러서 해장국으로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마치고 백마고지행 열차에 올랐다. 두런거리며 차창 밖 풍경을 흘려 보내다보니 어느새 철도중단점 백마고지역이다 여기서 다시 군내버스로 갈아타고 동송읍에 도착, 승리부대 앞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승리부대 앞에 도착, 위병소에 통과를 요청하니 절대 진입불가란다. 하는 수 없이 부대 우측편 봉우리로 올라서 지난 구간 날머리에 접속했다. 

 

승리부대 우봉 삼각점

 

승리부대 우측 임도에서 본 숙향봉

 

승리부대 북봉

 

지난 구간 날머리 

 

지난 구간의 날머리인 고개에서 묘지로 올라 이후부턴 빡센 급사면으로 변한다. 벙커봉을 하나 넘고, 한 번 더 빡세게 오르면 숙향봉 분기봉이다.  이곳 역시 벙커봉인데 벙커 지붕에 쇠파이프 굴뚝이 박혀있다. 분기봉에서 우틀 500여m 지점이 숙향봉이다.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정상에 도착하니 길쭉한 삼각점이 박혀있다, 조망은 별로다.

 

숙향봉 분기봉 

 

숙향봉 삼각점 

 

왜??  숙향봉(淑香蜂:이라고 했을까 ~

 

583봉 삼각점 

 

583봉 헬기장 

 

583봉 헬기장을 출발해서 고만고만한 평탄한 능선을 지나 금학산 임도를 만나고, 이 임도를 따라 금학산 허리를 돌아서 방호벽이 있는 대소라치까지도 평탄한 수준이다.

 

금학산 임도 

 

봄이 오시나보다. 버들강아지가 눈을 떴다.

 

대소라치 

 

저 앞은 보개봉 

 

대소라치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가졌다. 따끈따끈한 오뎅국물에다 말아먹는 밥맛이 기가막히게 좋다. 식사 후 사면을 올라서 보개산 정상에 도착, 금학산, 고대산, 지장산 조망이 훌륭하다. 

 

헬기장인 보개산 정상 

 

보개산(寶蓋山) 
옛 기록을 살펴보면 고대산에서 지장봉까지 이르는 긴 산괴를 통틀어 '보개산'이라 불렀다. 옛 보개산(寶蓋山)의 최고봉은 지금의 금학산(金鶴山,947m)이었으며, 연천군 동북쪽에서 웅장하고 준험한 자태를 자랑하며, 수많은 준봉들과 함께 솟아 있는 산이다.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동송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연천군에서는 연천읍의 옥산리, 동막리, 통현리, 고문리, 부곡리와 신서면의 대광리, 내산리, 도신리 지역이 이 산자락에 걸친 거대한 산군으로 연천지역 산 중에 조종(祖宗)이기도 하다. 보개산 산군의 둘레만 해도 약 72Km에 이르고, 남북 25km, 동서 14km의 규모에 달한다.

 

보개산의 산군을 크게 둘로 구분하는데, 고대산에서 환희봉으로 이어지는 중심 주능선을 축으로 연천군에 해당하는 서쪽 산줄기를 내보개(內寶盖),동쪽지역의 철원군, 포천군 산자락을 외보개(外寶盖)라 하였으며, 연천군이 산 전체의 70%를 관할하고 있다.외보개의 최고봉은 철원군 동송읍 금학산(金鶴山, 947m)이고, 내보개의 최고봉은 내산리에 있는 환희봉(歡喜峰,877.2m)으로 일명 지장봉 또는 지장산을 말한다. 금학산은 장중하고 기품있는 골격으로 남성미를, 환희봉은 수려하게 빼어난 풍광으로 여성미를 뽐내고 있다.

 

옛 기록에 보개산 안에는 28개의 장엄한 봉우리와 36곳의 절경지가 있었고, 골짜기마다 불당이 들어서 등을 켜면, 마치 밤하늘의 별빛만큼이나 사찰의 등불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구한말의 항일의병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불교문화재가 대부분 멸실 파손되어, 지금은 단 한 곳의 옛 절도 남아있지 못한 형편이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보개산은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해서 탐승객과 학인, 스님들이 즐겨 찾던 명소였다.

 

통상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보개산은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을 경계하는 해발 877.2m의 환희봉을 말하는데, 현재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대부분 지장봉으로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산의 역사적 이름은 단연 보개산 환희봉이라 할 수 있으며,이를 입증해주는 기록이 <대동지지><대동여지지><미수기언><광무3년연천읍지><여지도서><신증동국여지승람><동람도><동여비고><동여도><팔도총도><해동지도><경기37,38관도><천하지도><여지도><해동도><동판수진일용방><동국지도><첩역지도><천하여지도책-경도도><팔도지도><팔도전도><해좌승람><경기고지도첩><조선전도><여도><청천집><심원사지><산경표><보개산천기도문><숙종실록><인조실록>등에서 전해지고 있다.

 

목은 이색이 쓴 보개산이란 한시와 보개산 지장사 중수기,심원사 대종불사기,보개산 석대기,지행부록 보개산기에서도 보개산이란 이름으로 사용되었다.보개산의 다른 이름으로는 영주산,지장산,산내산,법화산,보가산, 석대산 등이 전해지고 있다.보개산의 의미는 보배로 가득 뒤덮인 산이란 뜻인데,불보살의 보배스러운 가피와 영험이 가득한 산이란 의미가 함축된 것이다. 이 이름이 생성된 유래를 암시해 주는 내용이 이만부가 지은 지행부록 보개산기에 자세히 전해진다. 보개산은 동주(東州:철원의 옛이름)의 남쪽 4Km 되는 곳에 있으며, 그 동북쪽이 산수가 가장 울창하다. 이 곳은 예전에는 맥국의 영토였는데, 동주에 이르면 40Km나 펼쳐친 평야가 넓게 열려있어 옛적에 궁예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나라를 세웠는데, 보개산이 이 평야의 남쪽을 가로막고 있다. 산은 웅장한 형세로 하늘 높이 치솟아 힘차게 달리고, 바위로 된 보배 같은 산봉우리들이 마치 가마 뚜껑을 덮어씌운 듯하다.

 

보개산에서 본 금학산 

 

가운데 숙향봉

 

고대산 

 

보개산 이정표 

 

보개산을 떠난 후, 좌측도 벼랑, 우측도 벼랑, 꽤나 길게 날등으로 이어진다. 살짝 얹힌 눈과 낙옆 밑 얼음이 복병인데 실족하는 순간엔 영락없는 천당행이라 신경이 바짝 쓰였다.  

 

 

676봉 삼각점 

 

아직도 고대산은 저멀리 

 

오르락 내리락, 몇 굽이 봉우리를 넘나들다보니 담터고개다. 위장이 양호한 벙커와 이정표가 있고, 지장산쪽 능선은 계단이 설치돼 있다. 

 

담터고개 

 

 

담터고개 계단  

 

 

담터고개 계단을 오른 후, 지장산 능선에 붙으니 온통 기암 천지다. 길쭉한 놈, 옆으로 누운 놈, 구멍 뚫린 놈,  천태만상이다. 

 

지장산 

 

 

지장산 정상 

 

지장산이 어지럽다.

없어야 할 것들이 있다. 고롱이, 미롱이 이런게 이곳에 왜 필요한지 ?? 복잡하기만 하다. 정상석이 두 개씩이나 된다. 연천 것은 지장봉, 포천 것은 지장산, 산이름 조차도 일관성이 없다.

 

 

 

 

보개산의 다른 이름들 

 

환희봉(歡喜峰) 
옛 기록 중에서 '보개산 석대기'가 비교적 보개산의 풍광을 잘 설명한 편이다. "송도(松都·개성)에서 동쪽으로 48Km 되는 곳에 명산이 하나 있으니 보개라. 높고 험한 준봉들이 열을 지어 솟아 있고, 산림은 깊숙하고 그윽한데, 산 중앙에 하나의 기이하고 빼어난 봉우리가 높고 우뚝하게 솟아 있으니 바로 환희봉(歡喜峰)이다. 그 봉우리 아래 1.2Km쯤에 암자가 있는데, 그 이름이 석대다."라 했다. 내보개산의 최고봉인 환희봉과 관련된 옛 기록은 미수 허목의 '고양산수기'에도 나타난다. '내가 일찍이 보개산 환희령에 올랐을 적에도 석대(石臺)에 민지의 고적이 있었다'가 그 것이다. 이처럼 환희봉은 민지가 석대에서 지장진신의 체현을 감동적으로 목격하고는 환희심이 절로 일어나 불사를 일으켰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이름인데, 현재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화인봉으로 기록되어 일제 때에 생겨난 엉뚱한 산이름으로 여지껏 사용하였던 것이다.

 

영주산(靈珠山) 
'영주산'이란 이름은 이 산 안에 있었던 가장 큰 사찰의 기록인 '심원사지'에서 전해지고 있다. 본래 이름은 영주산(靈珠山)이었으나, 1396년(조선 태조6년) 무학왕사
가 심원사주지로 주석하면서 산이름을 보개산으로 개칭했다고 <실록>에 전해지고 있다. '영주산'이란 이름은 '영주사'라는 사찰이름에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심원사의 옛이름이 '영주사'였을 것으로 본다.

 

지장산(地藏山) 
지장봉(地藏峰), 또는 지장산이란 이름이 생성된 유래는 고려 충렬왕 33년(1307년)에 '민지'가 쓴 '보개산 석대기'에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옛적에 풍악도인으로 숭앙받던 문일장노는 세상에서 견성득도(見性得道)한 사람이라 칭송하였는데, 내가 일찍이 중국 강소성의 여산 경복사에 있을 때 장노가 여러 문도와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나라에 3산이 있는데 이 3산에 머무르면 영구히 삼악도(三惡途, 악인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인 지옥, 아귀, 축생도를 말함)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 3산은 보개산, 풍악산, 오대산이다 !’ 나는 그 말을 진실로 믿었다. 그리하여 두세 도반과 더불어 여러 명산을 두루 편렵하고 답사한 끝에 이 보개산 심원사에 들어와 환희봉을 바라보니,봉우리 아래로 상서로운 빛이 마치 촛불을 하늘에 켜 놓은 것 같이 서기가 하늘에 가득하고 다사로운 바람이 훈훈이 일어나더니 불보살 형상의 구름이 화려하게 피어오르고 종소리는 은은하게 구름 밖으로 울러퍼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마음에 가득 희열을 느껴서 급히 그 곳으로 가서 보니 지장석상이 화현(化現)하여 영응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나는 신령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여 성재(聖齋)를 베풀려고 샘물로 쌀을 씻고, 마지(부처님에게 올리는 밥)를 올리려할 때 지장석상이 큰 형체로 변하며 자비롭고 밝은 빛을 산하 대지에 두루 비치는 찬연한 광경을 뚜렷이 보았다.나는 놀라서 불식불언(不食不言)하며 입정삼매(入定三昧)의 경지에 들어 삼일을 지냈다.이러한 일로 미루어보건대 보개산 전체는 지장진신(地藏眞身)이 항상 머물며 설법하는 곳이다.''민지'의 이 '보개산 석대기'가 영험한 이야기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지장보살(地藏)이 현신한 기도처'라는 의미로 지장산이라고 불려지게 된 것이다. 지장신앙의 영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깊었으면 훗날 실제로 지장사라는 사찰까지 보개산 자락에 들어설 정도였을까? 환희봉을 지장봉이란 이름으로 바뀐 것은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지지자료><근세조선지형도>에서 최초로 보이는데, 이를 국립지리원이 지형도에 검증 없이 옮겨 기록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더욱 혼동을 주게 되었다.

 

산내산(山內山)
산내산(山內山)은 말 그대로 '산 속의 산'이란 의미이니까 곧 보개산이 첩첩산중의 형세를 이루고 있는데서 온 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향명으로 전해지고 있는 산내산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지명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는데,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內山里)마을이 바로 그 현장이다. 이 곳은 본래 조선조 철원도호부의 외서면 지역으로, 험준한 보개산의 산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산리라고 불렸던 것인데, 조선 철종 10년(1859년)에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개칭되면서 이 면으로 편입된 곳이다.

 

법화산(法華山)
법화산(法華山)은 법화골(法華洞)에 있던 법화사가 있던 곳이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법화사는 연천 지역 의병이 병참기지 삼아 은신하면서 항일구국의 대의 아래 분전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구한말(1907년)에 보개산 골짜기에서 벌어진 의병 300여 명과 일본군 토벌대 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비록 의병이 처참하게 패전당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 거룩한 충의와 기개는 보개산의 산기운을 더욱 맑게 한다.

 

보가산 ~
보가산은 보가산성 등의 지명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보개산의 산이름을 정확하게 숙지하지 못한 기록자가 오기한 향명이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대산(石臺山)

월간 산 1984년 7월호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 산은 우선 그 이름에서 불교의 지장보살과 관련된 듯하여 종교적 냄새가 풍기고, 또 봉이라 하였으니 어느 산에 딸린 하나의 봉우리를 연상케 한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화전민터에 석대절이 있었으며, 본래 이 산은 석대산(石臺山)으로서 그 대표적인 봉우리를 석대봉이라 했다가 지장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심원사 
산내 최고 고찰 심원사는 보개산 내의 최대 고찰이며 이 산의 상징이었던 심원사는 역대 왕실(중궁전)의 지원을 받으며 원찰의 기능을 했던것으로 보여진다. 1376년(고려 우왕 3년)에 지은 <보개산 지장사중수기>와 <인조실록>에 관련 기록이 보인다.

 

 

가야할 화인봉 

 

지장산 하산길은 유격장이나 다름 없다. 설치된 밧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몇 번씩이나 붙잡고 내려선다. 밧줄이 끝나면 횡으로 돌다가 정상 턱 밑에서 작은 건축물을 만나는데 용도가 뭔지 모르겠다.  

 

 

 

화인봉 직전의 삼거리 

 

화인봉 직전의 암벽에서 삼거리를 만난다. 좌틀하면 중리계곡 하산길이고, 직진으로 암벽 위를 오르면 화인봉이다. 화인봉 오름길 암벽은 굵은 쇠줄이 설치돼 있고, 손잡이가 적당한 거리로 박혀있어 직벽이지만 오르기 쉽다.

 

화인봉 암벽

 

화인봉은 정비가 필요한 곳이다. 정상석은 받침대에서 떨어져 나가 나동그라져 있고, 지도가 그려진 등산로 안내판도 망가져서 흉물스럽게 바닥에 방치돼 있다.

 

 

화인봉 정상

 

화인봉을 떠나서 1키로쯤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동마너미 고개다. 직진은 삼형제봉, 좌틀은 하산길이다. 여기서 지맥을 마치고 하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동마너미 고개 

 

 

중리계곡 임도

 

중리 임도에 내려서서 버스정류장까지는 5키로쯤 더 걸어야 한다.  후미와 합류해서 걷다보니 랜턴을 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중리는 예전의 중리가 아니었다. 많이 변해 있었다. 하늘로 날아가는 도로가 새로 건설 중이고, 저수지 입구 마을도 없어졌다. 대신 별장같은 근사한 전원주택만이 그 자리를 슬슬 메우고 있었다.

 

언젠가 종자산을 올랐을 때만 해도 버스 막차 시간이 오후 4시였다. 지금은 밤 9시까지 운행한다고 한다. 중리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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