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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정맥/낙동정맥~

낙동정맥 15구간(한티재 ~ 운주산 ~ 오룡고개......2013.8.18

by 마루금 2013. 8. 20.

산행날씨 : 22.6℃ ~ 37.8℃,  맑았지만 연무가 잔뜩 끼었던 날 ~

산행코스 : 한티재(31번 국도) ~ 불랫재 ~ 운주산(806.4m) ~ 618봉 ~ 이리재 ~ 봉좌산(626m) ~ 도덕산 임도 ~ 배티재(542봉) ~ 도덕산(702m) ~ 오룡고개

산행시간 : 10시간12분 (조식 + 휴식 1시간30분)

산행거리 : 도상 20Km(정맥 17km + 구간 외 3km)

산행인원 : 20명쯤 ~

 

<구간별>

03:30   한티터널
05:23   불랫재
05:40   삼각점(NO 5)
06:46   춤추는 소나무
07:09   상안국사갈림길(운주산 0.7Km)
07:24   돌탑봉(797봉 / 운주산 갈림길)
07:32   운주산(806.4m)

07:40~08:10. .....조식
08:24   식탁바위
09:05   돌탑봉(618봉)
09:34   이리재(2차선 포장로)
10:30   봉좌산 갈림길
10:41   봉좌산(626m)
10:55   낙동트레일 쉼터
11:38   도덕산 임도(쉼터)
12:27   배티재(542봉)
12:34   도덕산 갈림길
12:38   자연쉼터(마당바위)
12:47   도덕산(702m)
13:42   오룡고개(2차선 포장로)

 

한티재 소공원에서 지난번 내려왔던 등로를 올라 한티터널 위를 지나간다. 대략 20분여 지나자 오리지날 한티재가 나타난다. 새벽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535봉을 지나고, 기계면 남계리와 죽장면 도일리를 잇는 작은 고갯길을 지나고, 490봉으로 힘겹게 오른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지만 잠시잠간 쉬는 동안에 새벽바람이 땀을 건조시켜준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이 안가는 날씨가 뿌옇다. 아주 낮은 칡덩굴 터널을 뚫고 거의 기다시피 지나가는 곳도 나타나고, 철조망 같은 가시덩굴 산딸기 밭도 합세해서 진로를 방해한다. 지긋지긋한 가시덤불이다. 

 

이윽고 괜찮은 길이 나타난다. 비포장로 불랫재에 도착, 나무테크 계단을 내려서니 마치 올레길을 보는 것 같다. '낙동정맥 Trail' 안내도와 이정표가 설치돼 있다. 낙동정맥 주변 마을과 마을을 이어서 만들어 놓은 길인데 이런 곳을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는 건 지 약간 의심스럽다. 쓸데 없는 예산낭비가 아닐런지 ?

 

불랫재 ~
재를 오르는 길목에 있었던 작은 마을 절터골에 신라시대 절이 있어 부처님이 오신다는 뜻으로 '佛來'라고 하는 설, 이 재를 넘어가면 도적이나 범과 같은 야수의 피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여 '不來'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설, 두 가지 내용이 존재한다.

 

310봉 삼각점을 지나간다. 'No 5'라는 표기뿐 별 다른 표식은 없다. 약간 내리막에 있어 용도가 조금 아리송, 이 삼각점을 지나자마자 묘지가 나타나고,  이어서 멋진 산길이 펼쳐진다. 잠시후 상도일 갈림길 고개를 지난다.

 

421.2봉에 삼각점이 있다. 기계438로 표시돼 있고,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 남계리 산47 소재다. 직진하는 길과 왼쪽 봉우리로 살짝 틀어서 가는 길로 나뉘는데 정맥은 왼쪽길이다. 이어 묘지를 만나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무희송이 나타난다. 마치 춤추는듯 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국사 갈림길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은 안국사, 직진은 정맥길, 표지띠가 잔뜩 붙은 곳으로 용도 폐기된 헬기장이다. 잠시 후 또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좌측은 상안국사, 우측이 정맥길, 이정표에 운주산까지 0.7Km 떨어진 것으로 표시돼 있다.

 

이곳에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안국사(安國寺)'라는 절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으로 모두 소실되고 없으며, 현재는 암자만 하나 딸랑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안국사'는 인비리 마을에 있으며, '하안국사'라고 부르고, 이곳의 안국사를 '상 안국사'라 부른다.

 

707봉 톨탑봉에 도착하면 운주산"에 거의 다 온 것이다. 돌탑봉에서 직진하면 운주산을 밟지 못하므로 우틀해서 운주산으로 간다. 남쪽 능선을 따라 2분쯤 진행하면 운주산 갈림길(이정표에 운주산 0.2Km)이 또 나타난다. 깨끗한 헬기장을 지나면 운주산 정상이다.  

 

운주산 정상 ~

운주산(雲柱山, 827m) ~

멀리서 보면 항상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 같이 보인다하여 운주산이라고 한다. 산세가 험준하여 임진왜란때는 김백암장군이 이 곳에 성을 쌓아 항전하였고,1910년에는 산남의진(山南義陣) 항일의병 활동의 근거지로 알려져 산 아래에 있던 안국사가 일제에 의한 방화로 불타 없어졌다.  운주산 중턱에 박쥐구멍이라 불리는 굴이 있는데 한꺼번에 100여명이 들어갈 수 있어서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는 주민들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정상에 정상석이 4개다. 삼각점(기계325)이 있고, 제천단이 있고, 헬기장이 있다. 위치는 경북 영천시 자양면 도일리 산78-2  또는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남계리,  

 

운주산 삼거리를 지나면 묘가 나타난다. 잡풀이 자라 엉망이지만 영장공 정시심장군의 묘소이다. 숙종2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과 전주영장을 역임하였고, 본관은 오천으로 정시심(鄭時諶) 혹은 정시담으로 읽기도 한다.  정시심은 1661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충무위 대호군(조선시대 종3품 무관)에 이르렀으며,  전주영장(전주 일대의 최고군사령관)을 역임했다. 묘소를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운주산으로 정한 일화가 있는데 정시심은 생전에 아주 친하게 지낸 최씨 성을 가진 친구이자 풍수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정시심은 최씨 친구에게 '자네는 산에도 많이 다니니, 이 지역에서 제일 좋은 묘터는 자네가 하고 그 다음으로 좋은 명당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하자 최씨 친구가 웃으며, '제일 좋은 명당을 하나 봐 둔 곳이 있기는 한데 내가 묻히기엔 좀 어려워 자네에게 추천함세'라고 화답하고  그 곳으로 정시심을 직접 데리고 가서 보여주었다. 명당터를 직접 본 정시심은 친구에게 '이 좋은 자리를 자네가 하지 왜 나한테 주느냐'고 묻자 최씨 친구가 '이 곳은 그냥 시신을 묻어서는 명당이 될 수 없고 송진을 바닥에 깔고 시신을 묻어야만 명당이 되니,, 나 역시 이 자리가 욕심은 있으나 사는게 가난하니 어려워. 이 자리의 주인은 바로 자네라네'라고 대답하였다.  이 후 정시심이 별세하자 아들 정석달을 비롯한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의논하여 풍수인 최씨 친구의 말대로  기계, 청송지역에서 송진을 가져오는 자에게  송진량만큼의 소금을 주리라고 소문을 내여 송진 1가마니를 모아 넣고 묘를 썼다고 전해온다. 묘지 양쪽에 석상까지 세운 명망있는 장군의 묘소이다.

 

식탁바위 ~

618봉 직전에서 잠시 트이는 곳 ~

잠간 앞이 트이는 전망대를 지나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정맥길 리본은 없고, 포항시 겅계산행과 연관된 리본뿐이다. 능선이 좌우로 나뉘어 꺾어지는 곳으로 방향이 애매해서 독도에 약간의 시간을 보냈다. 정맥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길로 판단하고서 진행, 다행히 알바는 면했다. 알바 주의지점이다.

 

618봉 돌탑 ~

621봉을 지나면서 급경사 하산길이다. 포대간 고속도로 위 안부로 내려섰다. 2차선 포장로 '이래재'에 도착한 것, 오룡고개 날머리에 버스 주차가 곤란하다고 후미랑 합류해서 천천히 내려오라는 연락이 캠프로부터 날아온다. 그래서 이곳 이래재에서 머물러 골바람이나 쐬면서 푹 쉬었다. 30분 지나서야 2진이 나타난다. 이때부터 기온이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 햇볕이 뜨겁다.

 

이래재 ~

포항시 기계면과 영천 임고면 경계의 294 고지다. 포항시 기계면 끝 마을인 상이(上伊)마을은 이동(伊洞)의 윗마을이고, 하이(下伊)는 아랫마을이다. 원래는 파평 윤씨(尹氏) 집성촌으로 윤동(尹洞)이라 불렀으나 차츰 타 성씨가 이주해와 인자(人字)를 더하여 이동(伊洞)이라 고쳐서 상이(上伊)와 하이(下伊)마을로 나뉘어 부른다.  이리재를 넘어 영천 첫 마을은 행정구역 상  '수성2리'인데,  마을사람들은 '원기리'라고 부른다.  이리재를 경계로 영천쪽 첫 마을인 원기리는 큰 산 사이의 평평한 구릉지에 부락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 뒷편에는 운주산이 앞에는 천장산이 우뚝 솟아 있다.

 

이리재에서 신나게 쉬다가 오른다. 419봉과 514봉을 지나서 615봉인 봉좌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리재를 약 300고지라 보면 봉좌산 갈림길까지 300고지 넘게 올라가는 상당한 비탈이다.

 

봉좌산 삼거리는 삼시봉(三市 경계봉)이다. 영천시, 포항시, 경주시가 서로 만나 경계를 이루는 자리다. 여기까지 영천시와 포항시 경계를 따라 왔지만 이후부터는 포항시와 헤어져서 영천시와 경주시 경계를 따르게 된다. 봉좌산으로 가기 위해서 삼거리에서 좌틀하면 필각정을 지나고, 전망대를 지나서 포항시 기계면과 경주시 안강읍의 시계를 따르게 된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봉좌산 ~

봉좌산 가는 길목 ~

봉좌산 ~
정맥길에서 60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다. 정맥에서 살짝 비켜나있는 봉우리다. 정상을 들렀다가는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한다. 봉좌산(鳳座山) 산봉우리의 암봉이 포항시 기계면에서 바라볼 대 마치 봉황이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봉좌산에서 계속 뻗어간 산줄기는 어래산(572m)으로 이어지고, 이후 서두방재를 거쳐 기계천에서 그 여맥을 다한다. 길이 11.6km의 이 산줄기를 '낙동봉좌단맥'이라 부른다.

 

봉좌산 정상에서 우리나라 육지의 동쪽 끝 호미곶이 보일 건대 오늘은 틀렸다. 연무가 잔뜩 낀 날씨로 뿌옇게 가려서 조망이 불가능, 포항시 너머 동해바다와 하늘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도덕산과 천장산 ~

운장산 ~

포대(포항 대구간)고속도로 ~

봉좌산 삼거리를 지나면 정자 쉼터를 만난다. 블랫재에서 본 것과 같이 임도를 이용하여 트레일을 이어 놓은 것이다.
 

525봉과 446봉을 지나서 내려서면 임도에서 쉼터를 만난다. 도덕산 임도'라 부른다. 이곳에서 탈출이 가능하다. 임도를 따라 오룡고개까지 연결 가능한 곳이다. 정맥길은 잠시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 숲 능선으로 이어진다.

 

도덕산 임도에서 뒤돌아본 정자 쉼터 ~

정맥길은 여기서 좌측 숲으로 ~

천장산 ~

도덕산 방향 ~

545봉에 도착, 천장산 갈림길이다. 여기서 우틀하여 뒤로 가면 천장산을 지나 박박봉으로 이어지다가 자호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3.1km의 단맥이다. 영천시 임고면과 고경면 경계의 산줄기가 된다. 545봉을 지나자마자 570.7봉(배티재)에서 식별이 어려운 삼각점을 만난다.

 

도덕산 갈림길에 도착, 여기서 도덕산까지 500미터 거리, 도덕산도 정맥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봉우리다. 더위와 싸우며 맥이 다 빠진 상태로 이곳까지 왔지만 단 500미터 앞의 도덕산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 일, 철탑을 지나서 도덕산을 오른다. 정맥길은 갈림길 이정표의 맞은편 하산길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맥 진행을 위해서는 도덕산에서 이곳으로 다시 되돌아나와야 한다.     

 

도덕산 직전에서 만나는 마당바위(자연쉼터) ~

도덕산(702m) ~

정상석이 3개씩이나 있고, 삼각점이 있다. 동경통지(東京通誌)에서 "신라 37대 선덕왕 원년(AD 780)에 당의 첨의사 백우경이 참소를 입어 자옥산하(紫玉山下)에 우거하면서, 현재 국보 제40호(안강읍 옥산리 1654)인 정혜사 13층 석탑이 있는 곳에 영월당과 만세암을 세웠는데, 선덕왕이 다녀갔다고 적고 있으며, 이때부터 두덕산(斗德山)이라고 칭하였으나,  그 후 불전탁자족(佛典卓子足)에 치화원년은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중건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조선중기에 오면서 동방오현의 한 분이신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선생이 1533년(중종 28년)에 서산오대(四山五臺)를 명명하면서 도덕산이라고 개명하여 부르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도덕산에서 직진으로도 등로가 표시돼 있다. 어떤 지도에는 도덕산에서 자옥산(570m)을 거쳐 성산저수지 옆을 지나 삼성산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낙동정맥으로 표시한 것도 있다. 그러나 하곡리에서 물을 만나게 되므로 이는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도덕산 도착 전에 만난 삼거리에서 오룡고개로 하산해본 결과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도덕산 갈림길에서 비탈로 내려갔다. 조심해야할 지점이다. 경사가 심한데다가 바닥에 잔돌이 깔려있어 미끄러운 곳이다. 하산 중에 우측으로 너덜지대도 보인다. 잔돌 구간이 끝나서 길이 좋아지면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직진길이 더 뚜렸하게 보이지만 미룡마을로 빠져 정맥길을 벗어나게 되므로 요주의 해야 할 지점이다. 정맥길은 리본 여러 장이 길을 잘 안내해 주고 있는 묘지 쪽으로 우틀이다. 묘지를 지나서 살짝 위로 오르다가 좌측으로 꺾이면서 아랫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게 내려서다보면 갑자기 길이 없어진다. 잡목이 앞을 가로막는 지점이 나오는데, 안내리본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좌측으로 좋은 길이 보이지만 잠시 후 없어지고만다. 잘못 진행하면 대형 알바가 되므로 요 주의 ~ 차분히 대처해야 하는 곳이다. 여기서는 길도 없는 잡목을 뚫고 나가야 하는데, 직진방향의 절개지같은 언덕 위로 올라서야 한다. 절개지같은 언덕을 직접 오르기는 곤란하므로 약간 우회해서 올라 능선으로 붙으면 된다. 칡덩굴, 산딸기, 갈대밭 덤불을 번갈아 희미한 선을 따라서 능선을 쭈욱 이어가다 보면 가끔씩 반가운 안내리본이 보인다. 팔과 얼굴까지 긁혀가면서 길같지 않은 이런 곳을 지나가지만 정맥길 표지인 안내리본을 만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안심하면서 앞으로 진행하게 된다. 묘지를 지나고, 임도를 잠시 만났다가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섰다가 다시 임도로 빠져나오면 오룡고개 아스팔트가 보인다. 오늘 이렇게 해서 날머리까지 한 차례도 알바 없이 정맥길 종주를 마쳤다. 아래 사진 속의 주인공과 나, 2명만이 정상적인 정맥길 진행에 성공했고, 나머지 분들은 이 구간에서 모두 알바를 하고말았다.

 

오룡고개 ~

갈구목 또는 미룡고개로 표기된 지도도 있다. 오룡리에 있어 오룡고개라 함이 옳을듯, 오룡리는 산 자락과 동리의 지형이 용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N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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