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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소래산 .............2011.9.10

by 마루금 2011. 9. 10.

 

산행코스 : 만의골 ~정상 ~헬기장 ~청룡약수터 ~마애불 ~청룡약수 ~소산서원 ~계란마을약수터 ~만의골 

산행거리 : 도상 4.1Km
산행시간 : 1시간30분(휴식15분)
산행은 나홀로 ~


주말산행이다. 오후 늦게 집을 나와 승용차로 만의골로 갔다. 추석 전이라 교통체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덜 막혀서 빨리 도착했다. 소래터널 위로 올라서 정상으로 갔다가 시흥늠내길을 따라 만의골로 다시 되돌아오는 원점산행을 진행했다.    

 

만의골은 막다른 길이다. 차를 몰고 만의골로 들어가면 반드시 들어간 길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도로 끝에는 군부대가 있다. 거마산, 성주산, 소래산이 이 지역을 둘러 쌓고 있어서 외부에는 전혀 노출되지 않는 천연적 요새지다. 옛날 이곳 부대의 대장 이름이 만호라서 만호골로 불리다가 만의골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만호의 가옥이 있어 만의골로 불렸다는 설이 있으나 근거가 확실치 않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소래터널 위 ~

만의골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서울외곽순환도로의 소래터널 위로 올라서게 된다. 터널 위 사거리 갈림길에서 좌측길은 거마산과 성주산으로 이어지고, 우측길은 소래산으로 이어진다.

 

서울외곽순환도로 ~

인천 앞바다 ~

소래산에 정상석이 3개나 설치돼 있다. 과연 이 산에 정상석이 3개씩이나 필요한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낭비가 아닐런지 ~ 예전 아무 것도 없을 때가 오히려 그립지만 큰 것 하나 있을 때만 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지금은 오석으로 두 개나 더 생겼다.  

 

시흥시 신천동 ~

내원사 능선길 ~

예전에 보지 못했던 돌탑인데, 언제 생겨난 건지 ??

나무테크 전망대도, 계단도 생겨나고 ~

소래산도 그새 많이 변했다.

 

헬기장 ~

청룡약수터 ~

소래산의 명물은 역시 병풍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입상이다. 한 때 바윗꾼들의 암장이기도 하였으나 88올림픽 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후 암장이 폐쇄되었다. 불상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옛 것으로 보기에는 의심이 갈 정도로 선각이 너무 뚜렸하고 깨끗한 편이다.

 

 

하제명, 하중호 묘 ~

 

소산서원(蘇山書院) ~

하연이 세상을 떠난뒤 1455년 재실로 소산재를 지었으나 소실되었다. 그 후 1963년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소산재를 중건하였고, 1995년에 현재의 건물을 세우면서 소산서원이라 불렀다. 현재 후손들과 유림들이 전통방식의 제례의식을 지키려는 노력과 함께 시설을 개발하여 효를 근본으로 하는 예절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소산서원 뒤편에는 사당인 문효사(文孝祠)가 있다.

 

하연의 묘 ~

조선전기의 문신이다. 1396년(태조5년) 문과에 급제, 대사헌, 좌찬성, 좌의정, 영의정 등을 지냈으며, 황희, 허조와 더불어 명정승으로 일컫는다. 하연의 아들 하우명은 아버지 묘소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고향에서 노모를 모시며 살았는데, 직접 음식을 하여 상을 올렸고, 돌아가신 후에도 제수를 직접 준비했다. 후에 그의 효행을 상신하여 '효자정려비'와 비각을 세웠으며, 이를 '하우명효자정각'이라 부른다, 

 

계란마을 ~

세종 제위시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묘가 있는 마을이다. 지관이 명당인지를 확인키 위해 계란을 갖다 놓았더니 다음날 새벽에 병아리 울음소리가 들려 이곳이 명당임을 알고 묘를 썼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 다른 유래로 하연의 아들 하우명의 묘 부근에 절과 마을이 있어 '절안골'이라 부르다가 점차 음이 변하여 '저란마을'에서 '계란마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능골을 빠져나오면 만의골 도로와 만난다. 이것으로 숲길 산행은 끝이나고 만의골 주차지점까지 도로를 따라 걷게 된다. 행정구역상 도시, 풍경은 한적한 시골길, 만의골에서 바라보는 소래산은 후덕한 어머니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산행은 짧았지만 오랜 역사가 숨쉬고 있는 그 길, 선조들이 밟았던 옛길을 따라 걷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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