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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초리골의 매력(파주) .... 2011.06.19

by 마루금 2011. 6. 20.

 

 

초리골 마을은 입구에서부터 새소리, 물소리, 단층 기와집, 그리고 산으로 둘러 싸인 말 그대로 전원 풍경이 살아 있는 곳이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삼봉산과 장군봉 등 3개의 등산코스가 있으며, 개울을 따라 700여m 남짓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이처럼 초리골 마을이 전원풍경을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92년 주민들에 의해 초리골 규약이 만들어졌다.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2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않고, 공장 등 혐오시설은 절대 들어오지 못하며, 전원주택, 별장 등 외지인의 건축행위를 제한 한다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1970년대 초 일본 나고야 지역 방문단이 초리골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감탄해 최고의 개발지역으로 꼽았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합심해서 규약을 만들었다. 초리골 규약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친환경 관광단지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마을 주민들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규약이 법적 효력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을 주민들의 의지가 담겨 있고, 파주시나 파주시내 중개업자들도 개발이나 투기 목적의 매매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연적인 풍경으로 고스란히 남겨질 수 있게 된 것이다.

 

 

 

< 초호쉼터 >

2010년 5월 28일 VJ특공대 방송으로 '초호쉼터'가 소개되었다. 숙박료에 음식 재료비까지 더하면 여행경비가 부담스럽지만 초호쉼터는 펜션 이용 고객들에게 음식을 무한으로 제공해 인기를 끌고 있다. 개울 근처 산 속에 숙박시설인 방갈로가 있고, 워크샵용 메인건물에는 식당과 여가시설 등이 있으며, 바깥에는 잔디구장의 축구장과 농장 등을 갗추고 있다.  건물 뒷편에서는 눈여겨 볼만한 조각물을 구경할 수 있고, 호반 카페에서 마셔보는 커피 한 잔의 은근한 매력도 느껴볼 수 있다. 밤에는 야외에서 숯불바베큐를 준비해 한 상 거하게 차려주고, 캠프파이어 장작불도 지펴준다.

 

 

 

 

 

 

 

 

 

 

 

< 초계탕 >

방송에도 여러번 소개되어 소문난 곳으로 무려 4대에 걸쳐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초계탕 전문음식점이다. 연못 안에다 건물을 지어 톡특한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다리를 건너서 건물로 진입한다.  

 

 

< 승잠원 >

'승'은 올라간다는 뜻, '잠'은 누에라는 뜻이다. 기와의 한옥 건축물로 지어져 꽤 품격있게 보이는 한정식 식당이다. 영화 타짜, 드라마 황금신부, 하이마트 CF 등의 촬영장으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사진: 2009.12.20

 

< 두루뫼 박물관 >
옛 생활사가 그대로 묻어나는 몇 안되는 전통박물관이다. 문화관광부 공인 박물관으로 원삼국 삼국시대의 토기와 고려, 조선시대 도자기, 그리고 근세에 이르는 목물과 옹기 등 각종 민속생활용구 3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민속문화재의 원형을 복원, 야외에 전시돼 있으며, 장독대와 옹달샘, 방앗간, 헛간, 대장간, 너와집, 원두막, 상여집 등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고향을 담아내고 있다.

사진: 2009.12.20

 

초리골의 무장공비 이야기
1968년 1월, 파주시 법원읍의 시골마을 4형제 가운데 두 형제가 나무하러 간다며 인근 삼봉산 2봉으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 돌아올 때가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형제를 위해 찾아나선 나머지 두 형제. 하지만 4형제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고조 불쌍하니까니 살려 두디만, 신고하면 너희 형제는 물론 모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갔어, 알것나?  조금있으면 통일이 곧 될 거이고 그러면 너희들은 영웅이 된다. 조금만 기다리라우." 공비들 말에 겁을 먹은 형제들은 고개만 끄덕인 채 산을 내려왔다.

 

4형제를 살려준 이들은 북한 특수부대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부대원들이다. 당시 조선군 정찰국장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은 31명의 정예부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4형제는 하산 후 곧바로 경찰서로 향해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다. 며칠 후 1월21일 청와대로 향하던 무장공비 31명이 새검정고개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경찰의 불신검문에 걸려 정체가 탄로 났다. 결국 북한 31명의 최정예부대는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2명은 북으로 되돌아갔으며, 28명은 사살, 김신조만 생포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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