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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령이름들~

배티 / 이티 (경기 안성/ 충북 진천)

by 마루금 2008. 11. 24.

 

 

 

'배티'

 

'배티'를 '이티'(梨峙)라고도 부른다. 경기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도계상에 있는 고개다. 313번 지방도가 여기를 지나며 해발 370m의 높이로 금북정맥에 걸쳐있다. 행정지명으로 동남쪽은 충북 진천  백곡면 양백리, 서북쪽은 경기도 안성 금광면 상중리가 된다. 배티를 사이에 두고 경기 안성쪽으로 고찰 '석남사'라는 불교성지가 있고, 충북 진천쪽은 천주교의 '배티성지'가 있다.   

 

동네 어귀에 돌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梨峙)'라 불렸고, 다시 순 우리말로 '배티'라고도 불렸다 한다. 또 다른 일설로 조선시대 무신년(戊申年)에 신천영(申天永)이 반역의 뜻을 품고 역도(逆徒)를 규합하여 여기에 주둔할 때였다. 과거에 북병사(北兵使)를 지냈던 이순곤(李順坤)이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당시 80세의 노령 이었지만 의분을 참지 못하여 사방에서 의병을 모아 한 바탕 싸움을 벌였다.  신천영이 이끄는 반역군은 80세 농인인 이순곤 공의 의병에게 견디지 못하고 패전의 고배를 마시고 도주하다 잡히고 말았다. 이 때부터 신천영이가 패한 고개라 하여 패티(敗峙) 라 하다가 배티로 변했다는 내용도 있다.


배티성지

 

1830년부터 본격적으로 배티 인근에 카톨릭 교우촌이 형성되어 왔고 최양업 신부가 이 지역을 근거로 전국을 다니며 사목 활동을 해 왔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 50여 명의 순교자를 냈는데, 그 가운데 29명은 교회 역사에 기록돼 있고, 나머지는 배티 일대에 이름없는 묘소들로 남아있다. 천주교회에서는 매년 연례행사로 전국의 교도들이 이 곳까지 순례행군을 하는 대행사가 실시되며, 앞으로 성역화(聖域化) 시킬 것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배티는 이미 옛날이 배티가 아닌 전국의 명소(名所)로 등장했다.


안능(安陵)마을

 

진천에서 다른 곳에 같은 이름의 배티가 또 있다. 문백면 평산리의 안능(安陵)마을도 배티(梨峙)라 부르는데, 윗마을을 윗배티(또는 안능), 아랫마을을 아래배티(또는 덕하(德下))라 한다. 안능(安陵)이란 세종조(世宗朝)에 좌의정(左議政) 을 지낸 충간공(忠簡公) 남지(南智)의 묘소가 이 곳에 있으며, 그의 8대손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이 세운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이로 연유하여 안능이란 동명이 생기게 되었다고 전한다. 숙종조(肅宗朝)에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남구만은 유명한 시조를 남기기도 했다.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해들아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남구만이 진천읍 신정리 소강정 마을앞 강가에 소강정(小江亭)을 짓고, 풍월(風月)을 노래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세전(世傳)에 의하면 남지(南智)의 묘소는 중국의 감여가(堪輿家… 풍수에 관한 학문을 공부한 사람) 두사충(杜師忠)이란 사람이 이 지형을 가리켜 병풍에 옥대(玉帶… 옥으로 만든 품대(品帶) 띠)를 걸어놓은 형국이라 칭찬하였다.  그 후 감여가들은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이라 하여 용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형국이라 하며 극찬하였는가 하면 어떤 짖궂은 감여가는 고사괘지형(枯蛇掛枝形)이라 하여 마른나무에 뱀을 걸어놓은 형국이라고 꼬집은 사람도 있다. 어쨌든 남지(南智)의 묘지가 명소(名所)라고 전해 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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