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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광한루원(廣寒樓苑) .... 2007.07.28

by 마루금 2007. 8. 1.

 

 

삼신산 (三神山)

삼신산은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에 의해 만들어진 섬으로 왼쪽섬을 영주산, 가운데섬을 봉래산, 오른쪽섬(오작교 옆)을 방장산이라 일컫고, 섬과 섬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영주산에영주각이,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날이 갈듯 서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삼신산은 한라산, 금강산, 지리산을 일컫는다.

 

 

 

 

 

비석군(碑石群)

이곳 비석은 과거에 남원과 인연을 맺은 부사(府使), 관찰사(觀察使), 어사(御使)들의 사적비(事蹟碑), 선정비(善政碑) 등이다. 예전에는 남원시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으나 도시화 과정에서 비석의 소실과 훼손을 방지하고자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비석들의 제작 연대가 조선 중기에서부터 후기까지 다양하여 남원고을의 역사와 비석 제작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부사 성안의(成安義) 선정비

성안의는 명종 16년(1561)~ 인조 7년(1629)때 사람으로 자는 정보(精甫)요, 호는 부용당(芙容黨)으로 조선시대의 문신(文臣)이다. 선조 24년(1591)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예조좌랑(禮曺佐郞, 정6품), 지평(持平), 영해(寧海), 남원부사를 거쳐 광주목사등을 지냈다. 사후 인조 26년(1648)에 이조판서, 양관대재학(홍문관, 예문관의 정2품)으로  증직되었다. 이 비석은 성안의(成安義)가 선조 40년(1607)에 남원부사로 부임해 광해군 3년(1611) 2월까지 4년여 동안 베푼 선정(善政)을 기리기위해 3년(1611) 8월에 세웠다.

 

 

광한루(廣寒樓) 

이 건물은 조선 세종 때 명정승인 황희가 처음 세워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은 것으로 원래 이름은 광통루(廣通樓)였다. 후에 정인지가 그 수려한 경치에 감탄해 전설상의 달나라 궁궐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닮았다고 하여 광한루라 고쳐 불렀다. 건물 북쪽 중앙에 층계가 붙어있는데 이것은 점점 기우는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고종 때 만든 것이다. 건물 앞에 연못을 만들고, 그 위를 가로질러 오작교라는 반월형 교각의 다리를 놓았다. 연못을 노니는 오색잉어는 건물을 에워싼 아름드리 나무와 더불어 찿는 이들에게 풍성한 볼거리와 기쁨을 더해준다.

 

 

 

 

 

광한루

누각 위의 옛 정든이는 어디로 가고 / 복사꽃과 흐르는 물만 사람들을 애닯게 하네
오작교 위에 비친 무심한 저 달빛은 / 인간에게 비추기로 그 몇백년 이던가

 

 

광한루

남녘 천리 길을 홀로이 내려와 광한루에 올라보니
호방한 정도 가득하고 마음도 애달프구나
서쪽으로 옥경물 바라보니 어느 쪽이 옥경인고
강호에 날으는 갈매기만 벗을 삼누나

 

........ 창랑 장택상

 

 

 

 

오작교

이 호수는 지리산 천 갈래의 계곡물이 모여 강이 된 요천(蓼川)수를 유입시켜 만든 연못으로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며,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를 놓아 성춘향(成春香)과 이몽룡(李夢龍)의 사랑이 얽혀 내려오고 있다. 이 오작교를 1년에 한번이상 밟으면 부부간에 금실이 좋아지고, 자녀가 복(福)을 받는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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