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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추억따라~

1983년 4월3일.....

by 마루금 2007. 4. 3.

 

 

1983년 4월3일...내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북한산 인수봉에서 대조난사고가 있었다. 7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조난에서 구조되는 산악사고였다. 벼랑에 매달린 채 매정한 날씨와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져간 7명의 악우들... 미처 젊음의 꽃도 다 피우지도 못하고, 그 고귀한 넋을 인수봉에 바쳐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바로 그날, 나 역시 일행들과 함께 인수봉을 올랐었다. 자칫 조난으로 이어졌을뻔도 했지만, 운이 좋았던지 그날의 사고에서 벗어났다. 그런 연유가 있어 매년 이맘 때면 으례히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숙연한 마음을 갖는다. 세월이 꽤 흘렀다지만 여전히 그때의 생생함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 일행은 겨우내 둔해졌던 바위의 감각을 되찿기 위해 그 해 2월부터 틈만 나면 불암산에서 연습등반을 가졌다. 그러는 사이 벗꽃과 개나리가 피고, 이어 진달래까지 꽃망울을 터트릴 만큼 날씨가 따뜻해져 갔다. 바위 감각이 적당히 몸에 베어들자, 4월 첫 주에 인수봉 등반을 하기로 일행들과 약속을 했다. 

 

인수등반 바로 전날인 토요일 기상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일요일에는 눈이나 비가 없다고 했고, 흐리며 구름만 끼는 날씨가 되겠다는 예보였다. 영상 10도를 웃도는 날씨로 추위의 걱정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어서 등반계획에 무리가 없었다.

 

인수봉을 오를 일행은 4명(나, 동생, 표상길, 이종주)이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오전 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후배인 상길, 종주가 그날따라 늦잠으로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그 두 후배에게 약속도 지킬줄 모르는 xx들이라고 호되게 꾸짖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등반시간이 지연된 결과를 가져와서 끔직한 조난사고로부터 오히려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인수 대슬랩 아래에 도착했을 때는 상단부의 여러 코스에 이미 많은 악우들이 올라 붙어 있었다. 그들은  전날 야영을 들었다가 아침 일찍 등반을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팀들이 조난을 당하거나 인수봉의 희생자가 될 줄은 아무도 예측을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씨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조난사고가 발생하리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인수봉에 도착했던 시간은 점심식사를 하기에 약간 애매한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등반을 하느냐, 아니면 등반을 마치고 식사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을 맟추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하늘이 열리며, 간혹 해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 후로 날씨가 더 좋아질 것을 예상하고, 바위부터 얼른 끝내기로 결정했다. 등반시간을 2시간으로 잡아 2시쯤에는 식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등반을 하기 위해 취나드B 코스로 이동했다. 그날따라 위에서 낙석과 낙빙이 자주 떨어졌는데 하마터면 낙석으로 불귀의 객이 될 뻔했다. 주먹만 한 돌덩어리가 튕겨 나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데 간신히 피했다.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후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잽싸게 시선을 위로 올려 피할 준비를 했다. 

 

취나드B를 시작, 두 번째 피치(요즘은 자일이 길어서 한 피치로 끊는다)까지 4명이 모두 올랐다. 이어 세 번째 피치로 선등자가 출발할 즈음 가벼운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눈으로 바위가 젖어들었고, 그 때문에 두어 번의 선등자 추락이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엄청난 가스가 인수봉 아래쪽으로부터 위로 몰려왔다. 순식간에 10m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시야를 가렸고, 폭설과 강풍이 횡으로 휘몰아쳐댔다. 기온도 영하권으로 급강하했다. 가스가 몰려온 후 대략 10분여 사이에 발생한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기상급변이 일어났다.

 

악천후로 우리는 더 이상의 등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자리에서 하강을 결정하고 자일을 두 번 꺾어 내려오는데, 그 사이 물 먹은 자일이 얼어  회수하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하강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지체되었더라면 얼어붙은 자일로 어떤 곤란을 겪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강을 완료했을 때는 발목까지 빠질 정도의 눈이 쌓였다. 장비정리를 마치고, 눈을 피하기 위해 수덕암 바로 위의 암굴(지금은 수덕암의 기도처로 바뀌었음)로 이동했다. 엄습해 오는 추위에 덧옷을 껴입고, 밥과 따뜻한 라면 국물로 점심 요기를 마친 후 하산을 서둘렀다.

 

도선사 주차장을 지날 즈음 눈에서 진눈깨비로 변했고, 우이동 시내에서는 다시 촉촉한 봄비로 바뀌었다.  이른 하산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종로5가에서 필요한 등산장비를 몇 가지 구입하고 귀가했다. 그 날은 이상하게도 다른 날 보다도 더 피곤했기에 이른 시간에 잠을 청했다.

 

그 이틑날 기상하여 TV를 켰다. 인수봉에서 조난사고가 발생했다는 충격적인 뉴스 보도가 흘러나왔고, 그 순간 너무 아쉽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우리 일행은 등반을 포기해서 조난을 면했다. 하지만 주변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고,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산을 마다하고, 구조작업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었다. 밤새 추위에 떨며, 사투를 벌였을 악우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남의 일이 아니기에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날의 조난사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기상급변이 원인이었다. 영상10도를 웃돌며, 강수확률이 없겠다는 기상예보로 많은 클라이머들이 인수를 올랐다. 실제로 그날의 날씨는 오전에 흐렸다가 점심때 해가 잠깐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오후가 되면 날씨가 더 좋아질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랐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짧은 순간에 한겨울의 악천후로 돌변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그런 악천후 속에서 일어날 주변의 일들을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했고, 무감각하게 넘겨버렸다. 조난자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운 점으로 남았지만 인수봉에서의 그러한 체험은 훗날의 산행에 많은 보탬이 되었고, 산을 보는 관점과 시야를 더욱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비운의 그 날을 회상하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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