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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뫼이름들~

피아골 본래의 뜻은...

by 마루금 2007. 3. 7.

 

 

피아골의 본래 뜻은

피아골. 6.25 동란 전후에 공비들의 본거지이기도 했고, 영화 '피아골'의 주무대이기도 해서 우리 귀에 그 이름이 설지가 않다. 세간에선 이 곳이 임진왜란 때 많은 살상이 있었고, 한말(韓末)의 겪동기, 여순반란사건, 6.25 동란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이 곳에서 피를 많이 흘려 '피의 골짜기'란 뜻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아골은 피(血)와 관련지어 땅이름의 원뜻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피아골'에서 아는 '이'의 같은 소유격조사로 볼 수 있는데, '아'가 이런식으로 쓰이는 예는 다른 땅이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가락골 = 갈아골(갈+골): 갈(葛)의 골
다락골 = 달아골(달+골): 달(山)의 골
아사달 = 앗아달(앗+달): 앗(朝)의 달(地)
가마실 = 감아실(감+실): 감(神)의 실(村)

 

그렇다고 보면 피아골은 '피의 골(골짜기)'이며, 이 땅이름은 피와 골이 합쳐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6.25 동란 같은 때 피(血)를 본 곳이라 해도 '피아골'이라고 했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아'가 지금의 '~의' 뜻으로 쓰인 예는 조선시대 이후엔 별로 찿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말 습관대로라면 당연히 '피아골'이 아닌 '피의골'로 붙여졌을 것이고, 아니면 그것이 변해서 '피에골', '페골'이 됐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서 달리 '피아골'을 풀어본다면 '피밭골'이 원이름일 것이 확실해진다. 문제는 피밭골이 피아골로 되었다면 '피밭골'의 ㅂ자음이 어디로 달아났느냐 하는 것인데 우리의 통상적인 말 변화 과정을 생각해 보면 ㅂ이 모음화 했을 가능성을 짚어 볼 수 있다.

 

우리의 옛말 '이블다', '셔블', '글발', '사비', 치뷔' 등이 '이울다', '서울', '글월', '새우', '추위' 등으로 바뀌어 온 것을 보면 우리의 말 버릇에 ㅂ이 잘 빠져 나가는 현상을 이해할 만하다. '밤을 굽다'의 '굽다'를 '~어'.  '~으니'를 넣어 활용하면  '굽어', '굽으니'가 되어야 할 것인데도 '구워', '구우니' 식으로 ㅂ이 빠진 불규칙 활용이 되고 있다.

 

밉다 : 미워, 미우니
곱다 : 고와, 고우니
눕다 : 누워, 누우니
아깝다: 아까와, 아까우니

 

 

피아골은 '파왓골'일지도 모른다.

(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청색 처리 하였슴)

남부 지방에선 '밭'을 '왓'이라고 쓰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왓'은 제주도에서나 '밭'의 뜻으로 쓰고 있을 뿐, 전라도 지방에선 그렇게 쓰고 있지 않으니 '피아골'의 앞 형태를 '피왓골'로 본다면 그것은 '피밭골'의 전음일 가능성이 있다. '밭'의 옛말은 '받'으로 지금의 음과는 별 차이가 없다.

 

'받이러미 東西一업게 가랫도다' <두시언해 권4/2>
'밭리며 집을 이며' <여씨향악 4>
'서르 자바 콩바니' <두시언해 권15/5>
 
피받골(피밭골) > 피왇골 > 피앗골 > 피아골

 

결국 피아골은 '피받골'에서 출발한 이름이고, 이것은 피밭이 있는 골짜기란 뜻이 될 것이다. 이것의 한자 지명 직전(稷田)이 이 생각을 더욱 굳혀 주고 있다.


글/지명연구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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