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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흥정산(평창) .... 2023.06.25

by 마루금 2023. 6. 25.

 

 

 

산행날씨 : 19.5℃ ~ 33.2℃,  맑음

산행코스 : 화명교~곧은골~삼각점봉(1063.6m)~흥정산(1280.3m)~화명교

산행거리 : GPS거리 5.85 km

산행시간 : 4시간 17분

산행인원 : 자유팀 6명

흥정산(평창).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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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에 위치한 오지의 산을 다녀왔다. 산행은 화명교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진행, 곧은골로 들어가서 삼각점봉과 흥정산을 거쳐 원점산행으로 마쳤다. 산죽밭 외엔 별다른 특징 없는 육산이며, 숲이 울창해서 조망이 없다. 대신 산행을 마치고 나면 봉평의 명소인 흥정계곡에 뛰어들어 산행에 찌든 더위를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다. 교통편은 지인의 차량을 이용했다.  

 

 

 

화명교 (산행 출발점)

 

화명교 임도에 설치된 백두대간 트레일 안내판

 

 

화명교 아래로 흐르는 흥정천

 

화명교 옆 공터에 주차

 

아스팔트길을 따라서 곧은골 입구로 이동

 

삼거리에서 곧은골로 진입

 

마지막 가옥인 펜션 마당을 통과

 

펜션 맨 오른쪽의 숲길로 진입 

 

 

처음엔 등로가 뚜렷하다가 골짜기로 들어갈수록 희미해진다.

 

계류를 수 차례 좌우로 넘나들면서 길을 찾아나간다.  

 

 

Y계곡 합수점 우측 계곡의 초입에서 우측 능선으로 붙었다.

 

합수점에서 비탈진 능선을 오르고 있는 일행들 ~

 

가파르지만 산죽밭을 따라 등로가 뚜렷하게 나있는 편

 

능선 오르막에서 잠시 멈춰 당겨본 태기산 풍력발전기

 

급비탈 능선을 올라서고 나서 1015 고지의 능선에 합류

 

1015 고지 이후부터는 경사가 다소 누그러지면서 걸음걸이가 한결 수월해진다.

 

 

삼각점봉(1063.6m)

 

옛 참호였던 구뎅이가 자주 나타난다.

 

 

함박꽃

 

 

 

 

▼ 흥정산(興亭山/ 1,276.5m)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에서 가장 큰 산으로 여름철 피서지로 이름난 흥정계곡 발원지에 숨은 듯 솟아 있는 산이다. 봉평면 소재지에서 6번 국도(구도로)를 따라 둔내 쪽으로 3km쯤 가다 무이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 물줄기를 거슬러 6km 이상 올라야 산기슭에 닿을 정도로 오지에 위치해 있다. 산 아래의 행정구역이 흥정리(興亭里)인데, 마을과 계곡 이름이 흥정산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흥정(興亭)은 정자를 많이 세운다는 뜻인데, 그 이름 때문인지 유난히도 흥정계곡에는 펜션이 많다. 

 

 

 

 

 

흥정산의 이등삼각점(봉평 21)

 

하산로

 

 

 

돌뿌리가 많아서 발디딤에 조심해야 하는 하산길

 

 

 

 

 

 

 

 

 

하산길 능선 날머리

 

 

원점 도착으로 산행 끝

 

 

 

흥정계곡
봉평면 시가지에서 6번 국도를 따라 5km 정도 올라가다 보면 우측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맑은 물의 계곡이 나타나는데, 이곳부터가 흥정계곡이다. 흥정산에서 발원한 흥정계곡은 5km에 이르는 구간에 걸쳐 사계절 맑은 물만으로도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감동받을 수 있으며, 냉수성 어류인 송어, 산천어 등 다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맑은 계곡을 배경으로 자리한 허브나라 등 흥정계곡을 찾는 방문객이 연간 5만을 달하는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인 봉평지역에서 율곡선생의 사당인 봉산서재와 양사언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팔석정 등과 함께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봉평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가산 이효석선생의 생가가 있고, 그가 자라난 고장으로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과거의 세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더욱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해진다. 조선 중종 때부터 선조 때까지 문관이며, 명필가로 이름을 떨쳤던 봉래 양사언(1517~1584)이 이곳 흥정산 아래의 흥정천변 풍치에 매료되어 계류변 기암마다에 글씨를 음각해 놓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양사언이 강릉부사로 부임하러 가던 때에는 지금의 영동고속도로가 아닌 그 북쪽의 6번 국도가 넘는 태기산 아래 양구두미재를 넘어야 했었다. 양구두미재를 내려서서 30리 거리가 봉평이다. 옛날 양사언이 봉평에 이르렀을 때 이곳 흥정천의 비경에 도취되어 8일간이나 머물면서 청류를 즐겼다. 그는 고성부사로 옮겨 갈 때에도 이곳을 다시 찾아 8개의 기암에다 글씨를 음각해 놓았다. 지금의 봉평마을 앞에는 양사언이 8일간 머물렀다는 뜻으로 천변 노송군락 아래에 정자를 짓고, 일명 팔일정(八日亭)이라 부르는 팔석정(八石亭) 터가 남아있다. 팔석정터 부근 바위에는 양사언이 쓴 석대투간(石臺投竿), 봉래(逢萊), 영주(瀛州), 석지청련(石池靑蓮), 석구도약(石臼搗藥), 석평위기(石平圍基), 석실한수(石室閑睡), 방장(方丈) 등의 글씨들이 보이는데, 풍화되어 뚜렷하지 않은 글씨도 있다.

 

 

 

참가 : 천둥, 새벽, 한마음, 우리산, 아누리, 마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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