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발길따라~

만경대(동해) .... 2022.09.17

by 마루금 2022. 9. 17.

 

 

만경대는 조선시대 후기에 건축된 누각이라 한다. 해파랑길 33코스를 진행하던 도중에 들렀다. 해파랑길 트랙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와볼지 기약할 수 없는 곳이라 잠시 다녀올 수가 있어서 돌아보고 나왔다.

 

 

 

진천강 수변을 따라가다가  해양레포츠 건물에서 옆쪽 숲으로 진입, 잠시 후 공단야구장으로 연결되는 도로와  함께 건축 중인 건물 공사장이 나타났다. 공사장 건너에 안전로프가 설치된 산책로가 보여서 공사장을 통과, 능선길로 붙었다.

 

 

공사장을 통과해서 건너 산책로에 진입 

 

 

만경대 부근의 체력단련장

 

만경대(1613년 창건)

 

 

만경대 해설문 전면의 기록

"만경대(萬景臺) : 여기 구미산 53번지 성산봉에 우뚝선 만경대는 조선조 광해군 때 삼척 김훈께서 창건한 정자이다. 공의 자는 원충, 호는 신당이며. 관은 통훈대부사복사첨정이요. 실직군왕위옹의 17세 손이며, 부군이신 오산랑필공은 1510년(중종5년) 삼포왜란 때 공을 세운 어른으로 선무원후공신어모장군경상도진영병마동첨제사통우후와 동래부사를 지내셨다. 신당공 훈은 성품이 영매하야 청렴하고, 곧은 지조로 관에 계시다가 1613년(광해군 5년)에 향리에 돌아와 동회리(신당촌)에 사시면서 만경대를 창건하고, 풍광을 즐기면서 갈매기를 벗 삼아 낚시로 세월을 보내셨다. 동은 망망대해요, 북은 송라해변 백사창송10리허, 서는 장엄한 두타산의 경관이 뒷들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지고, 천길 벼랑 아래 전천강은 유유히 동해로 흐르니 실로 만경대는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어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사 허록은 이곳을 관상하여 만항(경?)이라 하였고, 1796년(정조20) 부사 유한준은 시를 읊어 현판으로 남겼다. 1802년(고종9) 정자를 중건하니 해석 이돈상은 정자 후면에 만경대 현판을 걸었고, 공판 김원식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한성부윤 이남식은 해상망구 현판을 걸었다. 1924년 갑자에 다시 정자를 중건하니 명? 홍정형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당대 명필 옥람 한익동은 정자 후면에 만경대 현판을 걸고 만경대는 삼척김씨부사공파 송정종중에서 관리보존하는 이고장 유서깊은 유적이다." 고 소개했다. 

 

 

 

척주동산(陟州桐山) 비

 

만경대 해설문(전면)

 

만경대 해설문(후면)

 

만경대 해설문 후면에 척주팔경(陟州八景)이 기록돼 있는데 척주는 삼척의 옛 별호라고 한다. 적주팔경은 삼척 지역의 빼어난 절경 여덟 곳을 일컫는데 삼척 죽서루(竹西樓), 동해 능파대 (凌波臺), 삼척지경 회강정 (廻江亭), 삼척 진동루 (鎭東樓), 동해 취병산 (翠屛山), 동해 무릉계 (武陵溪), 동해 만경대 (萬景臺), 삼척 연근당 (燕謹堂)이다.

 

1924년 정자 중건 때 당대의 명필이었던 옥람 한익동선생이 44세 되던 해에 쓴 현판

 

1786년(정조 10)에 유한준(兪漢準/1732~1811) 선생이 만경대에서 본 경치를 시로 읊어 썼다는 현판

 

해상명구 : 1872년 고종 9년에 정자를 중건할 때 한성부윤 이남식(李南軾)이 현판

 

홍정형 선생의 만경대중건기

 

 

 

 

 

 

2021년 동해시의 전국 한시 백일장 장원의 글

 

현재 만경대 누각에서 바라본 풍경은 이렇다. 쌍용양회 등 각종 건설로 옛 묵객들이 남겨논 풍월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만경대 입구에서 호해정이 인접한 거리에 있으므로 동시에 다녀올 수 있다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