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산길따라~

왕산~필봉산~강구산(산청)......2020.05.17

by 마루금 2020. 5. 17.
날씨 16.6 ~ 25.6℃,  맑음
코스 덕양전~구형왕릉~류의태약수터~망경대~소왕산~왕산(925.6m)~필봉산(858.2m)~강구산(684.8m)~동의보감촌
거리 11km 
시간 5시간 32분
인원 산악회따라
교통 산악회 버스 27인승
특징 왕산은 육산이며, 필봉산은 바윗길이 약간 있슴, 강구산은 등로가 불확실한 오지 구간임

 

경남 산청군에 소재한 왕산과 필봉산, 강구산을 연계해서 다녀왔다. 가락국과 고려의 멸망으로 망국의 한을 달랜 슬픈 역사의 현장을 담고 있는 산으로서 주변에 관련된 볼거리들이 많다. 산 정상부에서는 지리산 천왕봉과 주변의 명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으며, 왕산과 한 줄기로 이어진 필봉산은 붓끝을 닮은 독특한 암봉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 하산 후에는 동의보감촌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이번 코스의 장점으로 산행시간이 길지 않고, 산길도 좋은 데다가 고속도로 나들목이 가깝다. 

왕산~필봉산~강구산.gpx
0.11MB

덕양전 돌아보기 → 클릭

 

산행 전에 덕양전을 먼저 돌아봤다 ~

덕양전을 빠져나와서 주차장으로 가던 길에 만나는 쌍정정 ~

왕림사 입구 ~

덕양전에서 등산안내도가 있는 주차장까지 약 1km 거리다 ~

가락국 유적비를 품고 있는 비각 ~

▼ 김유신 사대비 ~

김유신이 화살을 쐈다는 장소에 세워진 사대비라 한다. 비석에 新羅 太大角干 純忠壯烈 興武王 金庾信 射臺碑(신라 대태각간 순충장렬 흥무왕 김유신 사대비)라 적혀있다. 김유신이 여기서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이를 기리고자 단을 쌓고, 비석을 세웠다 한다.

 

이곳에서 돌무덤이 보이는 오른쪽의 구형왕릉으로 진입 ~

구형왕릉 ~
가야 10대 임금 구형왕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이다. 1971년 2월 9일 사적 제214호에 지정되었다. 구형왕을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했는데, 김유신의 할아버지다. 521년 왕이 되어 11년간 가야를 다스리다가 국운이 다한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주고, 그 죄책감으로 돌무덤에 묻어달라는 유언으로 세워졌다 한다. 7단으로 돌을 쌓아 올린 피라미드 형태로 초라해 보이는 돌무덤이지만 1500여 년 가까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우리나라 유일의 적석총으로 산청 9경 중 하나다.

 

무덤을 둘러싸고 왕릉이라는 설과 석탑이라는 2가지 설이 있다. 왕릉이라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 산음현 산천조'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룡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 문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에는 "무덤의 서쪽에 왕산사라는 절이 있어 절에 전해오는 왕산사기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을 석탑이라고 보는 이유는 이와 같은 형태의 묘가 안동과 의성지방에 분포되어 있다는데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돌무덤 중앙에 '가락국양왕릉'이라 쓴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것이다. 조선 정조 17년(1793)에는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재실과 홍예교 ~

구형왕릉 앞 갈림길 이정표에서 약수터 방향으로 진입,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임도에 합류 ~

임도 끝지점 정자터에서 류의태 약수터 방향의 산길로 진입 ~ 

왕산사 부도탑 ~

왕산사지의 수정궁터 ~

류의태 약수터 ~

류의태 약수터 ~
신의로 불린 허준의 스승 류의태가 왕산의 약초로 탕액을 만들 때 이 샘의 물을 썼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약수는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있고, 36가지로 분류되는 물 종류 중 최상급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류의태와 허준이 만나 적이 없다고 한다. 동의보감촌 한 해설자 왈, "류의태와 허준의 출생 시기가 100년이나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느냐"고 믿기 어렵다 했다.  

 

망경대(望京臺) ~
고려 공민왕 때 예의판서를 지낸 두문동 72인의 한 사람인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가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반대해 은둔해 살면서 망국의 설움을 달랬던 충절이 서려 있는 곳이라 한다.

 

망바위 ~

망바위에서 바라본 필봉산 ~

동의보감촌 ~

소왕산(가짜왕산) ~

소왕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

뒤돌아본 망바위 ~

▼ 왕산(王山/ 925.6m) ~
산청군 금서면에 위치하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임금 왕(王) 자를 사용한 산으로 가야국의 역사가 물씬 깃들어 있는 산이다. 가락국 최후의 왕인 구형왕과 관련된 유적과 동의보감에 나오는 류의태 약수터가 있다. 정상의 조망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지리산 동부능선과 써리봉능선, 천왕봉, 중봉이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다.

 

왕산 정상의 2등삼각점 ~

왕산에서 바라본 필봉산 ~

필봉산 줌인 ~

여우고개 ~

필봉산(筆峰山/ 858.2m) ~
왕산과 형제처럼 가깝게 붙어있는 산이다. 보는 이에 따라 붓끝과 흡사해 문필봉(文筆峰)이라고도 하며, 멀리서 보면  여인의 가슴과 흡사해 유두봉(乳頭峰)이라고도 불린다. 필봉산 정상의 조망은 왕산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더 없는 훌륭한 눈요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이다.

 

문필봉에서 바라본 왕산 ~

삼각점은 사라지고 안내판뿐이다 ~

필봉산과 강구산 안부 삼거리에서 강구산으로 진입했다 ~

강구산 진입 후 지독하게 후회했다. 등로가 분명치 않았으며, 산초나무가 많아 가시에 침을 잔뜩 맞아가면서 등로를 뚫고 나갔다. 그야말로 온통 밀림지대 덤불이었다. 강구산 정상은 특징이라고는 찿아볼 수 없는 봉우리였고, 정상 표시도 없었다. 그나마 흔적이라고 남은 게 선답자가 매달아논 리본뿐이었다.   

 

강구산(684.8m) 정상 ~

정상을 조금 지나서 만나는 연안이씨묘 ~

강구산 하산 중 능선이 애매하게 분기되는 지점이 많아서 독도에 애를 먹었다. 그나마 홀로 진행한 게 다행이리라 !!! 오지의 밀림을 빠져나와서 임도를 만났다. 

 

이후 임도길 진행은 룰루랄라 ~ 

기존 등로를 만나 합류 ~

 

동의보감촌을 경유, 주차장 도착으로 산행을 마쳤다.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