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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강화 교동도의 산(선월산~고양이산~밤머리산 편),,,...2020.02.23

by 마루금 2020. 2. 24.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


산행날씨 : -3.8 ~ 6.6℃,  맑음  

산행코스 : 

★화개산 구간: 대륭시장 주차장~연산군유배지~화개산(259.5m)~봉수대~화개사~교동향교~읍내리 마을비

★남산, 빈장산, 수정산 구간: 읍내리 비~교동읍성~남산(65m)~빈장산(102.5m)~동산1리~수정산(100m)~난정저수지

★선월산, 고양이산, 밤머리산 구간: 난정저수지~선월산(73m)~고양이산~밤머리산(89m)~오미 마을~기재 마을

    (기재 마을에서 소형트럭을 히치하여 대륭시장까지 이동)

산행거리 : GPS 거리 22.57km

산행시간 : 6시간 47분

산행인원 : 자유팀 5명

 

 

 

 

수정산 산행을 마치고나서 난정저수지 뚝방길을 따라 1.2km쯤 떨어진 선윌산으로 이동 

 

 

휴전선 철책과 나란히 이어지는 자전거도로 

 

선월산 정상의 팔각정 

 

선월산(문필봉) 정상석 

 

 

교동도 벌판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산

 

 

밤머리산(栗頭山/ 율두산) 

 

 

교동도는 상고시대에 화개산(259.5m), 밤머리산(89m), 수정산(100m)을 중심으로 3개의 섬으로 분리돼 있었다고 전한다. 바다와 한강이 만나는 지역으로서 항시 조수가 흘렀으며, 후에 해조류의 영향과 고려 때부터 도민들의 간척공사로 하나의 섬으로 형성되어 교동평야가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거쳐온 봉우리들 ~

 

밤머리산으로 가는 길 

 

밤머리산에서 공동묘지를 들머리로 잡았다. 능선 도착 때까지 발길 닿는 곳이 곧 등로다 .

 

능선에 올라서면 등로 상태가 좋아진다. 아마도 마을 주민들이 오르내리는 것 같다.  

 

태풍에 자빠진 나무가 종종 나타나 길을 막고있어 진행에 방해가 되고있다.

 

밤머리산(율두산) 정상에 있는 폐초소 

 

폐초소 안에서 내다본 북녘땅 

 

 

밤머리산 하산을 마치고서 더 이상의 산행을 접었다. 마지막 목적지였던 봉재산까지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오미마을을 지나 기재마을에서 소형트럭을 히치, 대룡시장까지 태워다 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륭시장에 도착해서 시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음식점에 들러서 추어탕으로 요기를 마친 후 교동도를 떠나 귀가길에 올랐다.

 

 

대룡시장
조선시대 읍이었던 지금의 읍내리에 시장이 형성되어 해방 때까지 존속되어 왔었다. 그러나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주요시설이 대룡리로 옮겨지고, 한국동란을 겪으면서 연백지방의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대룡리에 피난민연락소가 생기면서 각리에 있던 피난민들이 전시상황을 알기위해 대룡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차츰 먹을거리를 비롯한 장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히게 되자 포장을 둘러치고 장사를 시작하던 피난민들이 정착을 하면서 점포 규모도 커지고, 업종도 다양해져 지금의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한때 소(牛)시장까지 섰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종전 이곳에 들렀을 때는 시장을 둘러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매스콤을 통해 대륭시장이 여러 차례 소개가 되고, 더불어 교동대교(喬桐大橋)까지 개통돼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명소로 자리매김 한 것 같다. 어쨌거나 이전보다는 시장이 활발해보여 보기에도 좋고, 우중충하던 분위기도 사라졌다. 

 

예전의 대륭시장 탐방기 : https://san2000.tistory.com/15959330

 

교동도의 원래 이름은 대운도(戴雲島)였다. 고림(高林) 또는 달을신(達乙新) 이라고도 불렀으나,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 16년(775년)에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고종 32년(1895년)에는 읍을 폐하고, 강화와 합군하였다가 다음해 7월에 다시 읍으로 정하고, 군수를 두었다. 그때 당시 교동 동서남북면 4개 면과 송가면을 합쳐 5개면이었다가 한일합방(1911년) 후에 송가면은 송남면으로 개칭하고, 본도는 4개면 13개로 구획되어졌다. 합군(1914년) 이후, 송남면은 삼산면에 부속되었고, 교동은 화개면과 수정면, 2개면이 되었다. 1934년 이후 화개면과 수정면을 합면하여 지금의 교동면이 되었다.

 

 

참가자: 천둥, 한마음, 한돌, 산돌, 마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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