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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채미정(구미) .... 2016.03.01

by 마루금 2016. 3. 22.

 

 

금오산 하산을 마치고 들렀다. 채미정이 위치한 금오산은 경관이 빼어나고 힘과 기상이 넘치는 바위산이다. ‘채미’는 고사리를 캔다는 뜻으로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형제 성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에 관한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채미정은 1768년(영조 44)에 창건되었으나,  1977년 구미시에서 건물을 보수, 영역 정화사업을 크게 시행하여 지금에 이른다.

 

 

길재의 회고가(懷古歌) ~

 

 

 

 

홍기문 ~

 

 

길재 ~

1353년 구미 출생, 관료로 있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개경으로 가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374년 생원시

1383년 사마감시

1386년 진사시에 합격한 후 성균박사를 지냈다. 고려의 쇠망을 짐작한 후 늙은 어머니의 봉양을 구실로 사직하여 낙향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으며 세속의 현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 연구에 매진했기 때문에 그를 본받고 가르침을 얻으려는 학자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등이 그의 학맥을 이은 유림이다.

1419년(세종 1) 67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길재는 금산의 성곡서원, 선산의 금오서원, 인동의 오산서원에 향사되었다. 왕권이 교체되는 난세에도 고려에 절의를 지키고 학문에만 정진한 야은 길재는 사후, 오히려 조선에서 충절(忠節)이라는 시호를 받으면서 충신이 되었다. 또한 후학들에 의해 학통을 잇게 하는 중심인물로 위상을 지니게 된다. 채미정은 충절을 지키며 오직 학문에 정진한 야은의 올곧은 선비로서의 향기가 묻어나는 명승이다.

 

 

구인재 ~

 

 

 

▼ 채미정 ~

벽체가 없고 16개의 기둥만 있는 정자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한식 건물로 한가운데 1칸을 방으로 만들고 ‘ㅁ’ 자로 우물마루를 두른 건물이다. 정자의 정중앙에 자리한 방은 온돌로 되어 있어 추운 계절에도 사용할 수 있다. 방문은 들문의 형식으로 사방에 2짝씩 달려 있는데 모든 문을 들어 올리면 방이 없는 무실형 정자의 모습으로 변한다. 채미정의 경역은 정문인 흥기문(興起門)을 시작으로 석축 상단에 가로로 쌓은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다

 

 

 

경모각 ~

 

▼ 경모각(敬慕閣) ~

숙종의 어필 오언시(五言詩)가 걸려 있다.

 

 

비각 ~

 

 

▼ 금오산을 바라보며 ~

불교를 신라에 처음 전파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이곳을 지나다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한옥과 잘 어우러진 산수유 ~

 

봄이 오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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