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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변산 (남여치~대소마을~내소사)........ 2016.01.03

by 마루금 2016. 1. 3.

산행날씨 : 2.5 ~ 12.7℃  맑음 

산행코스 : 남여치 ~ 낙조대 ~ 분초대 ~ 북재 ~ 431.3봉 ~ 427.9봉 ~ 430.4봉 ~ 대소마을 ~ 노랫재 ~ 재백이고개 ~ 관음봉3거리 ~ 내소사  

산행거리 : GPS거리 10.56km   

산행시간 : 4시간 45분

산행인원 : 산악회따라 자유팀으로 ~ 

 

 

이번 산행의 목적은 대소마을 둘러보기다.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라 할 수 있는 곳, 아직도 차량통행이 원활치 못한 곳이다. 진입로가 나 있지만 일반 승용차로는 접근이 불가능, 4륜 구동차로도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접근이 어렵다.

 

남여치 ~

산행시작은 남여치에서 우측 능선으로 붙어 올랐다. 204.3봉을 넘고, 안부에서 임도를 잠간 만났다가 헤어지며, 167.6봉을 넘고,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에서 전봇대를 만나는데 아마 월명암으로 공급되는 송전선로인 것 같다. 숨을 몰아쉬며 긴 오르막을 가파르게 오르고나면 낙조대에 도착한다. 진행방향 뒤로는 쌍선봉이 조망된다.  

 

임도로 내려서기 전 ~

전봇대가 연속 나타남 ~

숲사이로 조망되는 쌍선봉 ~

▼ 낙조대  ~

월명암 뒤 산정상에  20여m 높이의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여기가 바로 낙조대다. 변산 낙조대는 강화 석모도, 태안 안면도와 함께 서해안 3대 낙조 명승지로 꼽힌다.

 

낙조대에서 바라본 외변산 해안 줌인 ~

낙조대에서 우틀, 급경사 내리막으로 진행한다.

 

낙조대~분초대 능선

능선에서 바라본 관음봉 & 새봉능선 ~

분초대 정상 ~

▼ 북재 ~

운산마을을 넘나드는 재, 北쪽에 있는 재란 뜻이 아니고, 악기를 뜻하는 북(鼓)자를 써 북재(鼓峙)라 함.

 

운산마을 ~ 

▼ 431.3봉 삼거리 ~

직진은 망포대 가는 길, 좌틀하면 대소마을로 이어진다. 두리뭉실한 분기봉이라 독도에 유의해야하는 지점이다.

 

427.9봉 ~

관음봉(좌), 가야할 430.4봉(우) ~

지나온 능선과 망포대(좌) ~

신선대 능선 & 대소마을 골짝 ~

▼ 430.4봉 ~

모처럼 전망이 트인 곳에서 점심식사를 마쳤다. 뒤로는 망포대 능선이 좌우로  쫘~악 펼쳐진다.

 

조망은 없지만 비교적 능선이 평탄하다 ~  

이끼바위도 넘어가고 ~

▼ 능선 진행 중 묘를 만나면 우측 아래 쪽 묘를 따라 내려서면 대소마을에 도착한다. 우리는 묘를 지나 335.9봉 직전까지 진행했다가 빽하여 희미한 사면을 따라 내려섰다. 

 

능선 진행 중 만나는 묘~

대소마을 하산길에서 만나는 먹음직스런 홍시 ~

대소마을이다 .... 왠 포크레인이 ???

밭가운데 농기계가 보였다. 이제 이곳에도 현대화의 물결이 슬슬 스며드나보다. 1997.11.20에 발행된 (부안(扶安)=연합(聯合)) 朴喜昌기자의 기사를 옮겨본다. 산림청은 농기계를 구입하고서도 마을 진입로가 없어 애를 태우던 농민후계자 趙俸寬씨(23. 전북(全北)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대소마을)를 위해 20일 헬리콥터를 동원, 농기계를 공수했다. 산림청은 이날 오후 3시께 익산(益山)항공관리소의 헬리콥터를 동원해 진서면 석포리 석포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트랙터, 콤바인 등 6종의 농기계를 3㎞ 떨어진 趙씨의 대소마을까지 실어다 주었다.  대소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두메산골로  현재 趙씨와 4가구 7명의 주민이  9.3㏊의 농경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나  주민들이 다닐 수 있는 오솔 길만 나 있다.  작년에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고향인 이 곳에 정착한 趙씨는 "먼저 산림청의 호의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그동안 농기계가 없어 불편이 많았으나 내년부터는 걱정을 않아도 되겠다"며 "이웃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끝)

 

정자 ~

마을로 들어서자  묶어논 견공만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주인은 마실을 나갔는지 우리 일행을 빼곤 아무도 없다. 차나 나누며 마을 근황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보려했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

부안 출신으로 자연생태활동가로 활동하며,  현재 '부안21'을 이끌고 있는 사진작가 허철희님께서 2003년도에 작성한 글의 일부를 옮겨보았다.

청학동으로 간 신선대 사람들 ~
6.25전쟁 후 변산의 신선대에는 일심교 신도들이 모여들어 18가구 80여명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었다. 일심교는 '유불선 동서학 합일 갱정유도'를 내세우며 세계의 모든 종교가 유교로 뭉쳐질 것을 믿는 강대성이 세운 신종교이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생활관습을 그대로 좆아 사서삼경을 읽고, 상투, 댕기머리에 흰옷을 고집하며, 신학문, 현대문명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1970년대 중반 무렵 지리산으로 이주해 갔다. 지금의 그 유명한 "지리산 청학동"이 바로 그 곳이다.

 

 

 

 

   위의 사진은 그 당시 신선대 마을 입구에서 찍은 사진으로 "뿌리깊은나무"에서 퍼왔다.   ..... 사진/ 김수익

 

이런 넓다란 분지가 있다는 자체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이 사방을 에워싸  오직 등짐만으로 고개를 넘어야 했던 곳, 정말 생활이 불편한 곳이었다는데 지금은 4륜 구동차로 강심장이면 넘을 수 있는 정도의 도로가 생겼다.  

 

노랫재로 이동 중 ~

대소마을 뒷산 335.9봉(가운데 뾰족봉) ~

대소마을로 내려서기 전에 마을 동쪽에 있는 335.9봉 정상을 넘어가려 했으나 .... 자일을 차에 두고와 하는 수 없이 335.9봉 찍기는 포기했다. 능선따라 정상으로 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일명 아차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지형도에는 없는 산이름이다. 

 

335.9봉 줌인 ~

노랫재를 지난 후 273.4봉에서 만난 이동통신 중계기 ~

신선대 & 망포대 능선 ~ 

대소마을 뒤산인 33.5.9봉 ~

노랫재와 재백이고개 사이의 능선을 지나며 만나는 초록색 암벽 ~

직소계곡 ~

관음봉 ~

내소사 부근 석포리 일대 ~

관음암을 바라보며 걷는 길 ~

 

 

 

산이 날 애워싸고 .....    

                                                                                      글 : 박목월

                                

 

산이 날 애워싸고  /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 아들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애워싸고  /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 처럼 살아라 한다/그믐달 처럼 살아라 한다

 

 

 

산 속에 오붓이 둘러싸인 대소마을 ~

대소마을 뒷산인 335.9봉 ~

재백이고개 직전의 이동통신 중계기 ~

멀리 대소마을의 비닐하우스가 조망됨 ~

봉래계곡 ~

변산을 대표하는 계곡이다. 신선대 신선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망포대, 분초대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해발 150여m에 위치한 산곡의 분지마을 대소(大蕭)에서 만나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탕 등의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며 굽이굽이 흘러 서해로 빠진다. 이 계곡의 빼어난 曲 아홉을 ‘봉래구곡(蓬萊九曲)’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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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봉 ~

줌인 ~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 방향으로 Go ~

내소사 하산길 ~

내소사 하산길에서 본 관음봉 ~

내소사 ~

내소사 진입로 ~

변산(邊山) ~

<동국여지승람>에 변산을 영주산(瀛洲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능가산(楞伽山)이라는 문헌 기록도 보이는데 이는 불교의 영향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예로 내소사 일주문에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라 적혀있다. 또한 변산을 봉래산(蓬萊山)이라 하여 고창의 방장산(方丈山), 고부의 두승산(斗升山)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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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일주문 ~

산행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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