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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 ~

by 마루금 2015. 8. 14.

 

(1989년 5월) 

뉴욕에 있는동안 웨스트포인트를 다녀왔다.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시 소재의 육군사관학교인데 뉴욕시에서 약 80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사관학교 방문이 자유로워 영내 안까지 개인 차량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정문 통과 때만 한 번 검문을 하는데 신분증도 필요 없이 인상만 한 번 훓어보고 마는 정도, 우리로서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내로 들어서자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 막사가 띄엄띄엄 배치돼 있었고, 전체를 둘러보는데 산을 넘어가야 할 정도였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USMA) ~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사관학교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다. 자신이 선택해서 입학할 수 있다.  그 중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를 최고의 명문으로 꼽는다. 웨스트포인트는 미국 육군장교 양성기관으로서,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시에 위치해 있어 그렇게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의 사관학교를 모델로 하였으며,  1802년 7월 4일에 5명의 교관과 10명의 생도로 창립되었다.  17세~22세의 독신 미국 시민 중에서 선발된 사관생도에게 4년간의 소정 교육과 엄격한 훈련을 실시한 후,  졸업과 동시에 이학사(Bachelor of Science) 학위를 수여하며,  육군 소위로 임관돼 5년간 장교로 복무하게 된다. 졸업생으로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조지 S. 패튼 장군,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 로버트 리 장군과 같은 저명한 정치가나 고위 장성이 많다.

 

리 장군 동상 앞에서 육사생도와 함께 ~

 

로버트 에드워드 리 (Robert Edward Lee, 1807년 1월 19일 ~ 1870년 10월 2일) ~

미국 남북전쟁 (1861~1865) 당시 남군 사령관으로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준 남부의 영웅이다.  로버트 에드워드 리(Robert Edward Lee, 1807년 1월 19일 ~1870년 10월 2일, 버지니아 주 렉싱턴 출생) 장군은 1829년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고, 공병 장교가 되었다.  미국 ~멕시코 전쟁에도 참전했으며, 남북 전쟁 초기에는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의 군사 고문으로 일했고, 1862년 조셉 존스턴이 부상으로 더 이상 군대를 지휘할 수 없게 되자 북버지니아군 사령관으로 취임하여 후반 3년을 북군의 포토맥군을 상대로 싸웠다. 1865년 4월 9일 애포매톡스 코트하우스에서 율리시스 그랜트에게 항복한 후,  렉싱턴 대학교 총장을 지내면서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재건 계획을 도왔다. 1870년 10월 12일에 숨을 거두었다.

 

리 장군 동상 ~

 

리장군 동상 뒷쪽의 허드슨 강을 배경으로 ~

 

방문날자를 잘 잡게되어 마침 졸업식 리허설에 참석했다. 지역색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미국도 존재해 있다. 졸업식 행사에 열병식이 포함되는데, 각 주별로 소대를 구성해서 시합을 벌이는 것, 모두 51개 소대였다.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당시 한인 생도가 10명, 그 중 여성이 3명, 여성 생도 중 1명은 소대장이라 했다. 미국 최고의 명문 웨스트포인트에서도 한인의 우수성을 입증해준 결과라 생각한다. 웨스트포인트는 여성의 사관학교 입학을 1976년부터 허용했다.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리허설 ~

 

 

당시 박물관에는 입장해보지 못했다. 박물관 입구의 문 위 벽면에 휴전선이 그려진 우리나라 지도와 간단한 문구의 기록이 있었다. 한국전쟁에 관련된 것으로 1951~1953년까지 미국이 참전해서 크게 승리했다는 기록인데, 유일하게 승리한 전쟁으로 평가하여 긍지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짜장면 스토리 ~

웨스트포인트 정문 근처에 도착했을 때가 정오쯤이였다. 때마침 유리창에 한글로 짜장면이란 글씨가 적힌 중국음식점이 보여 그리로 들어갔다. 주인이 당연 한국말을 할 수 있을줄 알고 짜장면을 시켰다.  그런데 한국말 불통 중국인이었다. 짜장면이란 글씨가 하도 신기해서 어떻게 적었냐고 물었더니 10년 전에 한인 여성을 사귀게 되어 그 때 짜장면을 알게 되었고, 그 때 적어준 걸 붙였다는 것이다. 본래 짜장면이란 게 중국음식이 아닌데, 맛은 우라나라 것과 비슷했다. 중국집  주인이 알고 있는 한국말 단어는 두 개뿐, '감사합니다'와 '천만에요', 그런데 '천만에요'란 말은 발음이 요상했다. 잘못 되었다고 아무리 정정해주어도 '존만에요'였다.

 

 

EN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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