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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해원정사(칠곡) .... 2014.12.07

by 마루금 2014. 12. 9.

 

 

가산산행을 마치고 하산길에 들렀다.  고찰은 아니지만 가산산성 진남문 안쪽에 있어 최고의 위치를 자랑한다. 짧은 역사에 비해 규모는 적지 않은 편이며, 특히 사찰 맨 안쪽에 관찰사 이세재 불망비가 있어 눈길을 끈다. 

 

 

 

해원정사(解圓精舍) ~

꿈속에 보살님이 나타나 비석이 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고 하여 이곳에 절을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조계종 사찰이다.  1965년 곽용득이 용성사로 창건하였다가 1981년에 해원정사로 이름을 바꿨다. 칠곡군에는 1983년 12월 창건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1999년 3월29일에 요사채가 증축되었다. 가산산성의 외성 안에 있다. 대지 면적은 3,618㎡, 건축 면적은 407.42㎡  대웅전, 나한전, 산신각 등 여럿의 전각들이 있다.

 

 

 

 

 

 

 

 

 

 

▼ 금송 ~

세계 3대 정원수 중 하나로 꼽는다. 일본이 원산지이며, 솔잎 모양이 두텁고 매우 아름답다. 세계 3대 정원수 : 금송, 히말라야시다. 아로우카리아(몽키퍼즐트리)

 

 

 

 

 

 

 

 

 

 

산신각 ~

 

비각 ~

 

이세재 불망비 ~

산신각 옆에 조선 후기 관찰사 이세재의 선정비가 있다.  비각과 비신, 비좌 등을 갖추고 있는데,  비석 높이는 162㎝, 비신 높이 105㎝, 너비 45㎝, 두께 14㎝이다. 가산산성 외성을 축조하여 국방을 튼튼히 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708년 5월에 남북창(南北倉)과 천주사(天住寺)에서 이 비석을 세우고, 비각은 그 후에 세웠다. 마을 주민들이 불망비를 세웠는데, 내륙 지방에서 관찰사 이세재처럼 실존했던 인물이 마을의 수호신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생전에 공덕을 많이 쌓고 군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후세까지 전설로 남아 신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비석 앞면의 내용은 이렇다. ‘관찰사이상국세재풍공지엄영세불망비(觀察使李相國世載豐功至嚴永世不忘碑)’라 음각되어 있고, 좌우에 비명으로 '國家柱□ 功高保障 □外干城 澤冾殘氓 卒伍隊整 於□不忘 軍需庫盈 勒石留名'라 음각되어 있다.  그 옆에는 ‘갑술오월 일 남북창 천주사 입(甲戌五月 日 南北倉 天住寺 立)’이라는 연대와 건립의 주체를 새겨 놓았다.  

 

 

관찰사 이세재(李世載) ~

이세재(1648~1706)의 자는 지숙(持叔), 본관은 용인(龍仁),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이하악(李河岳)의 아들이다. 1669년 사마시에 합격, 1694년 알성문과(謁聖文科) 을과에 급제하였다. 대간직(臺諫職)과 동래부사를 역임하고, 1698년(숙종 20) 11월 20일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1700년 가산산성 외성을 완성하였다.  당시 그는 임기가 만료된 뒤에도 성을 쌓기 위해 계속 있다가,  1701년 2월 8일 예조참의로 전임되었다. 그 후 한성우윤이 되었고, 이어 대사간과 도승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형조참판(刑曹參判)으로 재직 중 1706년에 갑자기 사망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1708년 10월 이세재의 공덕을 기리는 불망비와 비각을 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이세재를 대감이라 불렀는데, 이는 이세재가 동래부사로 있을 때 간사한 왜인들의 버릇을 고쳐 왜인들이 100년 이래의 두려운 부사라고 찬탄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이세재 불망비를 이세재 대감비라고도 부르며,  옛날부터 이 비석에 절을 하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랬던 탓인지 옛날에는 누구라도 말을 타고는 이 비석 앞을 그냥 지날 수 없어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2008년 음력 정월 보름 오후에 마을 사람들은 해원정사 주지스님의 주재로 이세재 불망비 앞에서 이세재를 기리는 제사와 동제를 함께 지냈다. 사실 1970년대 중반까지 남창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열하룻날 마을 굿을 하여, 동제를 지낼 제관을 선출했다고 한다. 이때는 오래전부터 해온 대로 마을 굿을 주재하는 사람이 대나무가지를 들고 마을을 돌다가 그 대가 멈추는 집의 주인을 제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제관으로 뽑히면 동제가 끝날 때까지 부정한 일을 보지 않는 등 금기가

많이 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해원정사 스님들이 제를 주관하여 간단하게 지내고 있다.

 

 

해원정사 주지스님에 따르면 2008년 여름에 관찰사 이세재의 8세 후손 50여 명이 해원정사를 찾아왔다고 한다. 인터넷을 보고 찾아왔다면서 점심도 먹고, 절도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세재 대감이 경상도관찰사만 한 게 아니고, 평안도관찰사도 하고 여러 군데 했대요. 일찍 20살에 급제를 했는데 52세인 나이에 일찍 죽었다고 합디다. 함평인가 거기 원 제실이 있다네.  그래 정월 보름에 다시 온다 카더라고 ....."

 

 

2000년 6월 23일 ~ 25일까지 3일간, 왜관읍의 낙동강을 중심으로 ‘낙동강세계평화제전’이 열렸는데, 첫 날인 6월 23일 오후 7시 20분부터 식전행사로 ‘이세재 산성행렬’이 있었다. 이 행사는 이세재 장군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할 당시 수십 명의 군졸들과 함께 한 산성행렬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이날 식전 행렬에는 400여 명의 주민과 군인,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 용사 24명이 왜관 삼부쇼핑 앞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왜관 낙동강 고수부지까지 행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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