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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천년고찰 천황사(진안) .... 2011.10.02

by 마루금 2011. 10. 7.

 

 

전라북도 진안군 구봉산 기슭 수암마을에 천황사가 터를 잡고 있다. 천년을 넘긴 고찰로 대웅전과 전나무가 볼꺼리다. 구봉산 하산길에 잠시 들렀다.

 

 

 

천황사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있다. 소재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이며, 사찰 진입로에 수암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정류장에서 사찰까지의 접속거리가 600여미터 밖에 되지않아 근처를 지날 때 부담없이 들렀다가 나올 수 있는 곳이다. 

 

 

수암마을 다리에서 계류를 좌측에 끼고 사찰 진입로를 따르다보면 어느새 울창한 숲길이 전개된다. 하늘을 찌를듯한 메타쇄콰이어가 가로수를 이룬 상당히 운치 있는 길을 걷게 된다. 곧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나무를 만나고, 약수터를 지나면 사찰이다.

 

 

 

천황사 전나무 ~

소재지는 전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산169-4번지, 천연기념물 495호, 지정일은 2008.06.16 이다. 수령 800년, 높이 80m, 둘레 6.1m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전나무 중에서 스펙이 가장 좋다. 나무가 크고 모양과 수세가 매우 좋은 편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산 중턱 남암(南庵) 앞에 사찰의 번성을 기원하며 식재한 나무라 전한다.  

 

 

전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로서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나무에서 젖(우유)이 나온다고 해서 젖나무로도 불리며, 뿌리는 얕고 키가 커서 바람에 잘 쓰러지므로 무리지어 숲을 이루며 산다. 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위의 지형 조건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천황사 전나무가 자라는 곳은 움푹 팬 계곡의 가운데로, 태풍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천황사 부도 ~

천황사를 예전에는 南庵寺(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南岩寺라 적혀있다)라 불렀다. 본래 부도 2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하나를 다른 곳에다 옮겼는지 이번에는 하나만 볼 수 있었다. 둘 다 탑형(塔形)으로 하나는 애설선사(愛雪禪師)의 것이었다.

 

 

 

 

 

 

 

 

천황사 ~

신라 헌강왕(憲康王) 원년인 875년에 무염선사(無染國師)가 창건하였고, 고려 문종19년인 1065년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중창한 천년을 넘긴 고찰이다.


무염(800~888) ~

무열왕의 8대손으로 어려서부터 해동신동(海東神童)의 소리를 들었고, 9세에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에서 스님이 된 후 당나라에 가서 구법(求法)을 하고 귀국하여 경문왕(景文王)과 헌강왕(憲康王) 시대에 국사를 지냈다. 문하에 순우(詢又), 원장(圓藏), 대도(大道) 등 수천 명이 있어 후에 성주산파(聖住山派)를 이룬 고승이다.

 

대각국사 의천(1055~1102) ~

고려 문종의 네째 아들로 태어나 영통사(靈通寺)의 난원국사(爛圓國師)를 스승으로 하고 출가하여 송에 유학하였고, 선종(宣宗) 때 귀국하여 천대종(天大宗)의 중흥조 (中興祖)가 된, 고려 불교가 낳은 뛰어난 고승대덕 중의 하나이다.

 

 

 

천황사는 학조대사(學祖大師), 애설선사(愛雪禪師) 등을 거쳐 고종10년인 1874년에 혜명대사(慧明大師)가 중수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이 사찰의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2칸으로 맛배지붕을 하고있다. 그리고 명부전과 설선당이 마주보고 있으며, 설설당 뒤에는 요사채가 있다. 부근에 당우터로 보이는 뚜렸한 흔적이 있고, 대웅전의 규모로 보아서 옛날에는 상당히 큰절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대웅전 내부 ~

 

 

 

 

 

 

천년 고찰 천황사를 둘러보고서 밖으로 나서는 마음은 다소 씁쓸했다. 훌륭한 역사를 지니고 오랜 세월을 버텨 온 천황사의 퇴락한 모습에 그저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불행하게도 천년 고찰로서의 그 품위와 역활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단청은 퇴색되었고, 대웅전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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