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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청량산(인천 송도)......... 2011.7.3

by 마루금 2011. 7. 3.

장마철 폭우로 얼룩졌던 날 ~

짧은 산행이라도 해볼 목적으로 행여 비가 그치길 바랬으나 시간만 흐를뿐 그렁게도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오후 3시를 넘겨서야 한 가닥 희망이 ~~  우악스럽던 폭우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짧은 산행이라도 하기 위해 잽싸게 집을 나섰다. 등산장비점에 들러 평소 생각해 두었던 장비 몇 가지를 구입하고는 송도로 갔다. 운무에 범벅이 된 청량산으로 ~  

 

거실에서 바라본 만월산 운치 ~

청량산 들머리 ~

청량산 슬랩 ~

타이타닉 전망대 ~

청량산 정상 ~

꿈길 같은 산책로 ~

흥륜사 ~

흥륜사 ~

고려 우 왕 2년(서기1376년)에 공민왕의 왕사로 계시던 나옹화상(懶翁 和尙)께서 개창,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고 산자수명(山紫水明)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산 이름도 청량산(淸凉山)으로 불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이러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 절은 1592년 임진란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34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다가 다시 건축하게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동기가 있다고 전해진다. 서기1938년10월 인천 금곡동에 살던 하진명(河鎭明)거사와 부인 이인봉(李仁鳳)여사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다. 이들 부부는 자식을 얻기 위해 명산대찰을 다니면서 정성을 드렸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근심하고 있던 차에, 어느 날밤 꿈에 9척이 넘는 큰 키의 스님 한 분이 나타나서 "그대  부부가 후손이 없어 애태우는 모습이 가엾게 보여 내가 좋은 길을 일러 주려고 왔노라. 이 밤이 새거든 솔섬이란 곳을 찾아가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거룩한 고승이 공부를 하시던 좋은 절터가 하나가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짓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덕을 베풀도록 하라! 그러면 반드시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리라" 하고서는 홀연히 사라졌다.

 

선명한 계시를 받은 하공내외는 꿈속에서 스님이 가르쳐준대로 이튼 날 솔섬을 찾아가니 서쪽으로 해가 넘어간 뒤인데도 유난히 밝은 햇살이 비치는 곳이 있어 가보니 바로 그 자리가 꿈에 계시 받은 곳이었다. 그 순간 너무도 희유하고 감격하여  “저희 부부를 가련하게 보신 부처님께서 이러한 터를 점지해 주셨으니 너무나 고맙습니다.“ 하고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면서 몸소 터를 닦고 사찰을 세우고 부처님을 모신 뒤 절 이름을 부부의 이름 한자씩을 따서 인명사(仁明寺)라 하였다.

 

그 후 이들 부부는 꿈속에서 그 고승이 계시한 약속대로 60세에 드디어 귀한 아들을 얻게 되었다. 하공내외는 은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꿈에 본 고승의 모습을 그대로 조성하여 대웅전 뒤 거북 바위에 모시고 보니 그 형상이 다름 아닌 부처님이었다. 그제서야 “이는 필시 부처님이 나옹화상으로 화현하시어 우리 부부로 하여금 이 절을 세우도록 하였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 하공은 부처님의 영험과 불법의 깊은 진리에 감화되어 출가하여 사문이 되어 이 절에서 수행정진하다가 열반에 들었다.

 

1966년 법륜(法輪)화상이 주지로 취임하여 오늘날에 이르는 40년 동안 대웅전을 비롯한 현재의 모든 건물을 새로 짓고, 108계단을 놓고, 진입로를 확장 포장하는 등 수많은 불사를 이룩하여 오늘의 대사찰로 크게 중흥시킨 뒤 절 이름을 일어날 흥(興) 수레바퀴 륜(輪) 흥륜사로 개칭하였다. 이 뜻은 곧 부처님 진리의 수레바퀴가 온 인류 중생들과 하늘땅에 가득하고, 영겁에 길이 흥륜 하라는 뜻이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

운무 속을 해메다 왔다. 송도신도시와 인천대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정상에서 흥륜사로 내려섰다가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산행을 마감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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